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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착(寒浞): 16세에 상국이 되고, 20세에 왕위를 찬탈하고, 60년간 화하를 통치했으나, 역사에서 말소되다...

글: 소왕설역사(小王說歷史)​하(夏)나라의 역사에서 한착(寒浞)이라는 이름은 아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눈길을 끈다. 16살때, 한착은 상국으로 발탁된다; 겨우 4년이 지난 후에 그는 음모를 통해 왕위를 찬탈하여 화하를 통치하는 국왕이 된다. 그리고 정권을 60년간 장악한다. 그의 폭정, 음모, 도살은 역사서에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결국 그는 주류의 제왕명단에서 말소된다. 한착은 어떻게 집에서 쫓겨난 소년에서 야심만만한 찬탈자가 되었을까? 그근 왜 그렇게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최종적으로 역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 이들 문제는 무수한 역사애호가들의 흥미를 끄는 이슈이고 깊이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한착의 어린 시절: 쫓겨난 소년​한착의 어린 시절은 동탕과 폭력으..

보복사회(報復社會): 독재정권하의 저층호해(底層互害)

글: 추효(鄒梟)​최근 들어, 중국의 각지에서는 연이어 묻지마살인의 악성보복사회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주하이와 우시. 인터넷에서는 이런 현상으 "장헌충현상(張獻忠現象)"이라고 부른다. 최근 2년간 유사한 사건이 아주 많아졌고, 금년에 지금까지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중국당국은 한편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라고 선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연이어 발생하는 묻지마사건은 그런 선전에 재를 뿌리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감시통제가 가장 엄밀한 나라 심지어 아동장난감총까지 위법으로 보는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경제하락과 정치문제​중국의 최근 보복성 묻지마살인사건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일차적 반응은 분명 법률의 불공정,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무송(도두), 임충(총교두), 노지심(제할관)중 누구의 관직이 가장 높을까?

글: 두두역사미(兜兜歷史迷)​우리가 를 보게 되면, 양산박의 대부분 영웅호한은 북송의 관리를 지낸 바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송(武松), 임충(林冲)과 노지심(魯智深)은 양산에서 무공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다.​만일 무공으로 따진다면, 승부를 가리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세 사람이 맡았던 관직은 고하를 가릴 수 있다.​도두(都頭) 무송​만일 행자 무송을 얘기하자면, 부득이 그가 경양강에서 18사발의 독한 술을 마시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일을 얘기해야 한다.​그러나, 오늘 얘기할 것은 그런 재미있는 장면이 아니라, 무송이 이전에 맡았던 적이 있는 관직이다.​무송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다. 그는 형인 무대랑(武大郞)과 함께 자란다.​어렸을 때, 두 형제는 성격이 ..

승상(丞相)과 재상(宰相): 어떻게 다른가?

글: 두두역사미(兜兜歷史迷)​고대에 명칭이 아주 비슷한 관직이 있다. 하나는 승상(丞相)이고 다른 하나는 재상(宰相)이다.​사람들의 느낌으로 말하자면 이 두 개의 관직은 아주 유사하다. 이름이 비슷한 것뿐 아니라, 지위도 유사하고, 심지어 하는 일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승상과 재상은 하나의 직위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명칭인 것일까?​기실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재상과 승상은 한 사람이 가질 수도 있다.​중국의 상기(象棋, 우리나라의 장기)에 있는 말중에 "상(相)"이 있다. 여기의 "상(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승상과 재상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그들중 누가 권력이 더 큰가?​오래전에 승상이라는 관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관직이 아..

누르하치의 아들 16명의 서로 다른 삶...

글: 한래독사서(閑來讀史書)​누르하치는 후금정권의 건립자이고, 청왕조의 창업자이다. 그는 일생동안 16명의 아들을 두었다(기록상). 황팔자 홍타이시(皇太極)가 황제에 오른 외에 3명은 철모자왕(鐵帽子王)이 되었고, 4명은 선종(善終)하지 못했다.​황장자(皇長子) 추잉(褚英, 1580-1615)​원비(元妃) 퉁자씨(佟佳氏) 소생이며, 19살때, "홍바투루(洪巴圖魯)"의 칭호를 얻고, 패륵(貝勒)에 봉해진다. 나중에 다시 "아르하투투먼(阿爾哈圖土門)"에 봉해지고, 명을 받아 국정을 관장한다.​그는 일찌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즉위후, 나와 사이가 나쁜 동생들과 대신들을 주살해버리겠다." 그리하여 형제와 "개국오대신(開國五大臣)"으로부터 원한을 산다.​1613년 향을 사르고 대신과 형제를 저주했다고 ..

이암(李岩)의 신세내력과 대순(大順)의 멸망

글: 오유신(吳有信)​1944년 항일전쟁 7년째를 맞이하여, 각 정치세력 새롭게 판을 짜고 있을 때, 중국은 명나라멸망 300주년기념일을 맞이한다. 당시 중국의 내외정치환경은 이제 막 만청외족통치를 무너뜨린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로운 외적이 다시 문앞까지 쳐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국면이 명나라말기와 상당히 비슷했다. 숭정제(崇政帝)와 유사한 장개석(蔣介石), 그리고 이자성(李自成)과 비슷한 모택동(毛澤東), 그리고 오삼계(吳三桂)와 비슷한 왕정위(汪精衛), 그리고 만청(滿淸)과 비슷한 일본인까지.​선전을 잘 하던 공산당이 영도하는 좌파문인들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리하여, 교관화(喬冠華), 전백찬(翦伯贊)은 곽말약(郭沫若)을 찾아가서 상의를 한 다음 곽말약이 시사를 풍자하는 기념글을 쓰..

관도전투(官渡之戰)의 발생지: 정주 중모현(中牟縣)? 신향 원양현(原陽縣)?

글: 애역사(愛歷史)​한헌제 건안4년(199년), 여러 해동안의 전투를 거쳐 조조는 원술, 장수, 여포등 할거세력을 평정하여, 강역을 더욱 넓혔을 뿐아니라, 군사력도 크게 증강된다. 이미 하북의 원소와 맞서싸울만한 실력을 갖춘 것이다. 조조와 그의 모사들은 치열한 토론을 거쳐 업성(鄴城)을 기습할 계획을 세운다.​그러나, 조조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유비는 조조가 소홀한 틈을 타서, 허창에서 서주로 도망치고, 공개적으로 조조에 반기를 든다. 이와 동시에, 유비는 이 비밀계획을 원소에게 알린다.​조조의 기습계획을 들은 후, 원소는 매우 분노한다. 그는 유주에 할거하고 있던 공손찬을 섬멸시킨 후, 10만대군을 몰아 '청군측(淸君側)'의 명목을 내세워 조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다. 중원의 양대 할거세력간의 ..

위촉오 삼국의 화폐정책: 건위오수(犍爲五銖)와 대천오백(大泉五百)

글: 천료역사재(淺聊歷史齎)​서론​중국고대의 화폐주조는 매우 골치아픈 일이었다. 왜냐하면 전폐(錢幣)의 분량도 맞추어야 하고, 색깔도 아주 중요했다. 한무제(漢武帝) 이전에는 전폐의 상황이 거의 엉망진창이었다.​특히,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동전주조기술을 장악한 후에는 대량으로 열악한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한다. 이들 열악한 동전을 시중에 유통시킨 후, 양호한 동전은 자신이 가져온다. 그리고 양호한 동전을 이용하여 다시 열악한 동전을 주조한다.​예를 들어, 여기서 말하는 열악한 동전에 4전의 구리가 필요하다면, 양호한 동전에는 8전의 구리가 필요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후, 유비는 양호한 동전을 회수하여, 양호한 동전 1개로 열악한 동전 2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순환되면 백성들이 주머..

거란(契丹): 어떻게 일개 부락에서 제국으로 발전했는가?

글: 서북낭(西北狼)​거란은 중국역사상 최초로 "농경 + 유목"의 2원제국가를 건립한 민족이다. 2원제국가의 출현은 한민족이 제도적으로 유목민족에 대하여 가졌던 압도적우세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의 발명이다.​대하씨시대(大賀氏時代)​거란이 가장 먼저 한문 기록에 등장한 것은 6세기의 북위(北魏)시기이다. 당시의 거란은 단지 8개 부족으로 구성된 느슨한 부락연맹이었다. 8부족은 공동으로 규정했다. 대하씨(大賀氏)가족이 대대로 부락연맹의 군사지도자가 된다.​다만 구체적으로 대하씨가족내에서 누가 지도자에 오를 것이냐에 대하여는 부사자계(父死子繼) 혹은 형종제급(兄終弟及)의 승계원칙을 따르지 않고, 8부의 대인들이 후보자중에서 민주적 선거를..

도원결의(桃園結義): 정사로 본 유비, 관우, 장비......

글: 최애역사(最愛歷史)​"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나 정사(正史)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간의 정의(情誼)에 대한 묘사는 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서에는 몇 마디로 적었는데, 유비가 일찌기 평원상(平原相)으로 있을 때, 관우, 장비 두 사람과 "침즉동상(寢則同床), 은약형제(恩若兄弟)"(잠을 잘 때는 같은 침대에서 자고, 그 정은 형제와 같았다). 평소에 관우, 장비는 유비의 별부사마(別部司馬, 정식편제에 들어 있지 않은 하급무관을 가리킴)로 공손하게 유비의 곁에 서서 호위를 섰다. 그리고 유비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어려운 일들을 함께 겪는다.​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싸우는 수십년동안 유비, 관우, 장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