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李自成)의 개봉공성전(開封圍城戰)
글: 양문찬(楊文燦)숭정14년(1641년) 정월, 이자성은 하남 낙양(洛陽)을 점령한 후, 개봉(開封)의 명나라 수비군의 방어가 비교적 약하다는 것을 알고, 즉시 행동에 들어간다. 그는 이것이 명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조정을 무너뜨릴 중요한 기회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이월, 이자성은 3만여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밤을 새워 행군하여, 3일만에 개봉성에 도착한다. 하루빨리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그는 부하들로 하여금 쟁기(犁), 호미(鋤), 도끼(斧)등의 도구를 가지고 성벽을 둘러싸고 터널을 파도록 지휘하여, 이를 통해 공격과 침투를 진행하고자 한다.개봉의 수비군지휘관은 명나라의 순무인 고명형(高名衡)이었다. 그는 틈군(闖軍, 이자성군)이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지휘하여 수비를 강화하..
2025. 3. 30.
이자성(李自成)의 세 명의 부인: 왜 2명은 바람이 났을까?
글: 유노사(劉老師) 명나라말기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이자성은 반드시 언급해야할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자성과 그의 대순(大順)정권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의 처첩에 대하여는 논의가 비교적 적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로 관방사료에 이들 여자들에 대한 기록이 적고, 그녀들에 대한 사적은 대다수가 , 등 비관방사료와 지방지에 나온다. 오늘 우리가 얘기할 것은 바로 이자성의 세 명의 처, 한씨(韓氏), 형씨(邢氏)와 고씨(高氏)이다. 1. 한금아(韓金兒): 비록 용모가 출중했지만, 부도(婦道)를 지키지 않아, 나중에 이자성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자성의 첫번째 부인 한금아에 대하여 관방사료에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극히 적다. 심지어 어떤 사료에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 , , 등 비관..
2023.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