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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이자성)13

이자성은 왜 북경성을 점령한지 41일만에 패퇴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1644년, 대명숭정17년(대순영창원년) 정월초하루, 이자성은 서안에서 정식으로 건국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하고, 연호를 영창(永昌)이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성(自晟)으로 개명하고, 서안을 서경(西京)으로 개명한다. 1644년 일월, 이자성은 동정에 나선다. 삼월 십칠일 양로의 군대가 북경성 아래에 결집하고, 십구일 북경성을 함락시킨다. 숭정제 주유검은 매산(현재의 경산)에서 스르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렇게 명왕조는 멸망한다. 이자성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장병들에게 상을 하사했다. 명나라의 관리들에게서는 대거 재물을 긁어모안다. 그리고 우금성(牛金星)등과 등극대전을 준비하고, 신왕조의 통치질서를 건립한다. 나중에, 사월 이십이일 청군과 오삼계가 이자성의 .. 2020. 8. 22.
이자성(李自成)은 면전에서 들이받는 유종민(劉宗敏)을 왜 죽이지 않았을까? 글: 금일생활시각(今日生活視角) 유종민은 이자성 휘하여 최고용장이다.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이자성을 따라다녔으며, 이자성이 북경을 취하고, 대명왕조를 무너뜨리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유종민은 자주 이자성의 명령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여러번.. 2019. 5. 4.
이자성의 부인들은 왜 다른 남자와 도망갔을까?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역사와 문화의 조작현상은 아주 두드러진다. 여러 지방에서는 모두 '역사명인'을 빌어 역사를 위조하고 있다. 농민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이자성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은 중국역사 '7대 수수께끼'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데, 이는 아주 황당한 일이다. 이런 조작은 .. 2019. 4. 5.
이자성은 북경의 실패후 왜 남경으로 가지 않았는가? 글:천애간점(天涯看點) 1644년, 이자성은 산해관에서 패배한 후 북경에서 퇴각한다. 1년도 되지 않아, 이자성의 근거지인 섬서는 청군에 의해 남북에서 협공을 받는다. 이자성은 할 수 없이 대순군을 이끌고 대본영 서안에서 퇴각한다. 처음에 이자성의 생각은 하남을 거쳐 남경으로 가는 .. 2019.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