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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103

중화민국의 12개 직할시(直轄市) 글: 민초사운(民初思韻) "직할(直轄)"은 고대에 "직예(直隸)"라고 불렀다. '직예제'는 송(宋)나라때부터 시작되었다. 북송은 "로(路)"를 성급(省級)행정단위로 삼았다. 23로(路)를 설치하는 외에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부(府)가 있었다. 예를 들면 북경의 수도인 개봉부(開封府)이다. 1946년, 국민정부는 '헌법'에서 여러번 '직할시'를 언급한다. 그러나, 제11장의 '지방제도'에는 단지 '성(省)', '현(縣)'만 있고, 직할시와 지방(서장)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그리고 그후 공문서에서는 "원할시(院轄市)"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하여, 직할시는 직접 사용되지 않는다. 1921년 7월 북경정부가 반포한 에서 경도시(京都市)는 내무부가 직접 감독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직접 감독하는.. 2023. 7. 6.
대일항전시기 3차례의 위기순간 글: 양천석(楊天石) 첫번째 위기순간은 송호(淞滬)전투에서 패배하고 남경(南京)이 함락된 때였다. 국민당 고위층의 대다수가 주화파(主和派)였다. 송호항전은 1937년 8월 13일부터 시작한다. 국민정부는 75만의 군대를 모아서 3개월간 전투를 벌인다. 국민정부로서는 당시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한 것이다. 전국각지에서 군대를 상해로 보내 일본군과 혈전을 벌인다. 그러나 결정이 성급하게 이루어졌고, 지휘가 체계적이지 못하여 결국 패전하고 만다. 일본군은 군사상식을 뛰어넘어 혈전을 벌인 후, 전혀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남경으로 진격한다. 12월 13일 남경을 점령하여, 국민정부는 수도가 함락된다. 12월 15일, 국민정부는 고급간부회의를 소집한다. 회의에서는 주화파와 주전파가 격렬하게 논쟁을 .. 2023. 4. 19.
강청의 전남편 당납(唐納): 신비한 신분의 수수께끼 (1) 글: 하월명(賀越明) 2012년 8월 23일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꼬박 2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이 타도되면서, 나라를 떠난지 오래되고 이름없이 살아가던 그가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들이 화제로 올리는 인물이 되었다. 일찌기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 1970년대말부터 현재까지, 신문잡지에는 당납을 소개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수가 많아서 일일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이들 글 중에서 이전에 당납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몇몇 언론종사자들의 회고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포풍착영(捕風捉影)하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 수준이었고, 적지 않은 글들은 .. 2023. 3. 4.
"중공특과(中共特科)": 비밀조직의 진실한 이야기 글: 원천(源泉) 오늘 이야기나눌 것은 역사상의 "중공특과"이다. 이 조직은 중국공산당사에도 애매모호하게 기록한 신비스러운 조직이다. 공산당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소련이 아직 설립되기 전에, 볼세비키당은 건립초기 심각한 생존위기를 맞이한다. 내부의견이 분열되고, 반대당은 강력했으며, 여러 방면에서 짜르체제를 옹호하는 전통역량이 있었다. 이때 레닌의 주도하에 볼셰비키당에는 "체카"라는 특무조직을 두어, 암살과 테러활동을 벌이는데, 극히 잔혹하고 극단적인 수단으로 반대파와 경쟁상대를 제거한다. 최종적으로 공산세력이 집권당이 된다. 그리고 소련공산당을 그대로 복제한 중국공산당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대륙의 저명한 다큐멘터리작가 왕판(王凡)이 최근 출판한 에서 여러 당사자들이 직접 겪.. 2023. 2. 14.
남창폭동(南昌暴動): 참가한 지도자들의 서열은? 글: 고벌림(高伐林) 중국의 정치와 문화전통은 역대이래로 존비유서(尊卑有序), 즉 위계질서를 중시하며 강상(綱常)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한다. 봉건등급에 반대하고, 사람은 평등하다는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킨 중국공산당도 권력을 잡은 후에는 역시 존비유서를 따졌다. 여기에서 필자는 유방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천하를 차지한 후 논공행상을 벌이는데, 문신과 무신들이 서로 취한 상태에서 공을 다퉜다. 서로 소리치고, 검을 뽑아 탁자를 베고, 기둥을 쳤다. 유방은 그런 것이 꼴보기 싫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숙손통(叔孫通)이 유방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등급제도, 예악규장을 제정하여 신하들을 교욱하고 백성들을 따르게 한다. 다시 조회를 개최하자 신하들은 황공해 하면서 법도를 따랐다. 유방은 그제서야 .. 2023. 2. 9.
일본은 남경대학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글: 모유화설(毛有話說) 남경대학살은 2차대전때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범한 비인간적인 죄행이다. 1937년 12월 23일 남경이 함락되고, 일본군이 학살을 시작한 때로부터, 국제여론의 광범위한 주목과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예를 들어, 1938년 2월 11일 는 사론 에서 이렇게 썼다: 이번 남경등지에서의 살륙강간은 인류역사상 부끄럽고 슬픈 한페이지이다. 일본군벌의 본질은 무한한 침략이고 그 침략수단은 이런 간음살인방화약탈이다. 전세계 백인과 일반 유색인종은 모두 이는 인류공동의 대적이라고 인정한다. 하루빨리 전세계의 정신을 동원하여 공론의 권위로 일본의 선량한 인민들이 깨닫게 함으로써 잔혹한 군벌들이 제재받도록 해야 한다. 다만, 전시에 군부의 신문출판에 대한 검열등의 원인으로 일반일본국민들이 '남경.. 2023. 2. 6.
왕명(王明)중독사건: 중공당사 최대의 미스테리사건 글: 지식도학잡료(知識都學雜了) 1943년은 연안정풍운동(延安整風運動)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그때 중공당내에는 제3자의 "좌경착오노선"에 대한 비판투쟁이 진행중이었다. 바로 이때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 터진다. 즉 "왕명중독사건"이다. 이 사건은 점차 중공당사상의 최대 역사미스테리사건이 된다. 그리고 향후 수십년간, 중공당사를 추화(醜化)하고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엄청난 악영향을 끼지게 되는 사건이 된다. 1974년, 왕명은 죽기 전에 모스크바에서 이라는 회고록을 출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연안에서 중독된 사건을 언급하는데, 그는 그것이 모택동이 사람을 시켜 그에게 독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나오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왕명이 기록한 글은 속속 해외의 매체에서 전재되었다... 2023. 2. 6.
"홍기거(紅旗渠, 홍치취)"의 진상은...? 글: 주효휘(周曉輝) 연안에서 모택동을 참배한 후, 시진핑은 신임 정치국상위를 이끌고 다시 허난(河南), 안양(安陽) 린저우시(林州市, 옛 이름은 林縣)로 가서 또 다른 "홍색교육기지" 홍기거기념관(紅旗渠記念館)을 참관했다. 홍기거라는 이름에 대하여, 많은 중국인들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각종 '정신'을 창조하는데 뛰어나 정신병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중공은 일찌감치 1971년 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어 소위 '홍기거정신'을 대거 선전했다. 작년 중국당국이 내놓은 100부짜리 다큐멘터리 제36부에서도 역시 중공의 거짓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중국당국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홍기거는 1960년대, 현지인민들이 천수답의 열악한 생존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중공당국의 지지하에 태행산(太行山)의 산허리에 '인장입.. 2022. 10. 31.
최후의 국민당군대 글: 강녕지부(江寧知府) 2008년 7월 3일, 타이페이의 중정기념관(中正記念館)앞의 광장에 400여명이 집결했다. 그들은 백의(白衣)를 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었으며, 한편으로 타이완주민신분을 획득하기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 함께 처량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후부터 심야까지 계속된 집회에서 현장의 질서를 유지하던 타이페이시 경찰은 '진정서'를 '입법원장 왕진핑(王金平)의 비처장에게 전달했다. 결국, 타이완의 내정부문책임자는 심야에 선포했다: 그들의 자수하는데 동의하고, 자수할 때 임시신분증명을 발급할 것이며, 이를 통해 취업과 거주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아마, 여러분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들 타이완섬내에서 갈 곳이 없는 흑호(黑戶, 무호적자)들이 태국버마방면에.. 2022. 8. 9.
블라디보스톡의 중국인들은 어떻게 소멸되었는가? 글: 야우소풍(夜雨疏風) 2022년 7월 1일은 블라디보스톡 도시설립 160주년기념일이다(실제 할양시기는 1860년 11월이다). 즉, 우수리강 동쪽의 토지가 중국의 품을 벗어난지 160년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 토지위의 중국인들은 영토의 할양과 더불어 소실되지 않았다. 1938년까지 소련은 각종 수단으로 소멸시켰다. 1. 성황(盛況) 지금은 갈수록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블라드보스톡(중국명 海參崴)로 여행을 온다. 사람들은 이곳의 해산물을 맛보고, 성당의 앞에서 앞다투어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1세기이전에 이 번화한 상업거리를 건설했던 사람, 그리고 소유했던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들 중국인들이 얼마나 처량하고 피비린내나게 이 토지를 떠나야 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러시아는 18.. 2022.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