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충(張獻忠)의 말로비가(末路悲歌)
글: 장위국(張偉國)1숭정14년(1641년) 장헌충은 양양(襄陽)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양왕(襄王) 주익명(朱翊銘)을 포로로 잡아 죽인 후, 그는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를 돌아다니며 3개성의 많은 부현(府縣)을 점령하고 기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장헌충은 강남지역에서 세력을 키우고자 하지 않고, 천부지국(天府之國) 사천(四川)으로 가서 패업을 이루고자 하여, 사천으로 들어갈 것을 결정한다. 숭정17년(1644년) 봄, 장헌충은 군대를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육로와 수로로 진격하며 사천으로 향한다. 사천의 명군은 실력이 약했고, 게다가 이때는 천하가 대란에 빠져 있어서, 장헌충의 부대는 무인지경으로 진격한다. 이월에는 만현(萬縣)을 점령하고, 육월에는 부릉(涪陵)을 점령한다...
2024. 11. 24.
장헌충(張獻忠)의 양자 4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초근일일(草根一一) 고대의 많은 제왕들은 양자를 거두기 좋아했다. 예를 들어, 이극용(李克用), 주원장(朱元璋)등이 그러했다. 명나라말기 농민정권인 대서정권(大西政權)의 장헌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4명의 양자를 거두었는데, 나중에 이 4명이 운명은 모두 달랐다. 첫째, 진왕(秦王), 의왕(義王) 손가망(孫可望)(?-1660년), 섬서 연장현 사람. 1630년(명 숭정3년), 손가망은 장헌충을 따라 반란에 가담한다. 용맹하고 잘 싸워서 평동장군(平東將軍)이 되고, 이정국(李定國), 유문수(劉文秀), 애능기(艾能奇)와 함께 장헌충의 양자가 된다. 1646년(순치3년), 청군이 대거 사천으로 쳐들어온다. 장헌충은 봉명산(鳳鳴山)에서 전사하고, 나머지 부대는 손가망과 이정국이 물려받아, 운남, 귀주지..
2021.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