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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헌충)9

장헌충(張獻忠)의 말로비가(末路悲歌) 글: 장위국(張偉國)​1​숭정14년(1641년) 장헌충은 양양(襄陽)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양왕(襄王) 주익명(朱翊銘)을 포로로 잡아 죽인 후, 그는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를 돌아다니며 3개성의 많은 부현(府縣)을 점령하고 기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장헌충은 강남지역에서 세력을 키우고자 하지 않고, 천부지국(天府之國) 사천(四川)으로 가서 패업을 이루고자 하여, 사천으로 들어갈 것을 결정한다. 숭정17년(1644년) 봄, 장헌충은 군대를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육로와 수로로 진격하며 사천으로 향한다. 사천의 명군은 실력이 약했고, 게다가 이때는 천하가 대란에 빠져 있어서, 장헌충의 부대는 무인지경으로 진격한다. ​이월에는 만현(萬縣)을 점령하고, 육월에는 부릉(涪陵)을 점령한다... 2024. 11. 24.
장헌충살인고(张献忠杀人考) (2) 글: 장굉걸(张宏杰) ​ 9 ​ 장헌충은 처음에는 질서정연하게 시작했지만, 그후 이리저리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어 절망하게 된다. ​ 최초의 신선함도 지나가고, 이제는 조정의 사무를 보는 것고 게을러졌다. 그리고 성깔만 부리게 되었다. 어느날 조회를 진행하는데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보석을 가득 심은 관이 바닥에 떨어지게 되자, 발로 짓밟아서 엉망진창에 되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 다 짓밟아버리고 나서, 곁에 서 있던 시위의 대첨포모를 빼앗아 머리에 썼다. 그리고 큰소리로 우스면서 말했다: "XXX, 어르신은 역시 이걸 쓰는게 편하군!" ​ 그는 갈수록 자신이 병력을 이끌고 사천에 들어온 것이 잘못이라고 후.. 2024. 1. 15.
장헌충살인고(张献忠杀人考) (1) 글: 장굉걸(张宏杰) ​ 1 ​ 숭정17년(1644년) 육월 이십일일, 중경 통원문 바깥의 광장에 3만7천명의 명군이 집결해 있었다. 그들은 110개의 긴 줄로 늘어서서 차례로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은 앞에 놓인 나무탁자 위로 오른손을 내밀어 탁자 위에 놓았다. 나무탁자 앞에 서 있는 사병은 칼을 내리쳤고, 손은 잘려나갔다. ​ 이는 명나라말기 농민군 장헌충의 부대가 포로로 잡은 명군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육월 이십일, 장헌충은 중경성을 함락시킨다. 이는 그가 사천에 들어간 후 거둔 최초의 대승전이었고, 전군은 위에서 아래까지 기뻐 날뛰었다. 장헌충은 특별지시를 내린다. 비록 명군이 완강하게 저항하였지만, '팔대왕(八大王, 장헌충 자신을 가리킴)'은 이번에 관대함을 베풀어 포로들은 한명도 죽이지 않고, .. 2024. 1. 15.
장헌충(張獻忠)의 양자 4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초근일일(草根一一) 고대의 많은 제왕들은 양자를 거두기 좋아했다. 예를 들어, 이극용(李克用), 주원장(朱元璋)등이 그러했다. 명나라말기 농민정권인 대서정권(大西政權)의 장헌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4명의 양자를 거두었는데, 나중에 이 4명이 운명은 모두 달랐다. 첫째, 진왕(秦王), 의왕(義王) 손가망(孫可望)(?-1660년), 섬서 연장현 사람. 1630년(명 숭정3년), 손가망은 장헌충을 따라 반란에 가담한다. 용맹하고 잘 싸워서 평동장군(平東將軍)이 되고, 이정국(李定國), 유문수(劉文秀), 애능기(艾能奇)와 함께 장헌충의 양자가 된다. 1646년(순치3년), 청군이 대거 사천으로 쳐들어온다. 장헌충은 봉명산(鳳鳴山)에서 전사하고, 나머지 부대는 손가망과 이정국이 물려받아, 운남, 귀주지.. 2021. 1. 28.
장헌충의 죽음 글: 천애간점역사호(天涯看點歷史號) 장헌충과 이자성은 다같이 명나라말기 농민반란군의 지도자들이다. 다만 역사는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혀 다르게 하고 있다. 이자성은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원해준 "이틈왕(李闖王)", "틈왕이 오면 양식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여 대중의 환.. 2019. 5. 4.
장헌충의 도심술(盜心術) 글: 호각조(胡覺照) 사천(四川) 광한(廣漢)의 방호공원(房湖公園)에는 장헌충이 쓴 성유비(聖諭碑)가 하나 있다. 이는 대순(大順)2년(1644년)에 세운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천유만물여인(天有萬物與人) 하늘은 만물을 사람에게 주었다. 인무일물여천(人無一物與天) 사람은 하늘에 한..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