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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93

강청(江靑)의 묘비(墓碑)는 왜 괴이한가? 글: 김감명(金鑒明)​북경의 서산(西山) 자락에 하나의 묘원(墓園)이 있는데, 복전공묘(福田公墓)라고 부른다. 모택동의 네번째 부인 강청의 묘시가 바로 이 묘원 안에 있다.특별한 여인 강청(1914-1991)​강청을 특별한 여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녀에게는 도대체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까?​첫째, 그녀는 신분이 특별하다. 그녀는 모택동의 네번째 부인이고, 모택동은 강청의 다섯번째 남편이다. 1938년, 연안에서 중공 고위간부들들의 환처(換妻) 붐이 일어났을 때,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때 그녀는 24살이고, 모택동은 45살이었다. 1949년, 강청은 중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된다.​둘째, 그녀의 "혼약(婚約)"이 특별했다. 강청은 상해에서 연안으로 가기 전에, 결혼이력이 혼란하고 복잡했다. 중공은 고위층부터 .. 2025. 4. 23.
전백찬(翦伯贊) 자살의 진상 글: 장이화(章詒和)​1952년, 대학교 조정과정에서, 정천정(鄭天挺)이 남개대학(南開大學)으로 옮겨갔고, 청화대학(淸華大學) 역사학과의 최원로교수인 뇌해종(雷海宗) 교수도 남개대학으로 옮겨갔다. 정천정을 대신하여 북경대학(北京大學) 역사학과 주임이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전백찬(翦伯贊)이었다. ​전백찬의 오랜 친구인 부친(章伯鈞)은 매우 기뻐했다. 다만 동시에 정천정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면서 모친(李健生)에게 이렇게 말했다:​"정천정은 20년대부터 북경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30년대에는 북경대학 비서장(秘書長)을 지낸다. 항전승리때도 역시 북경대학 비서장이었으며 사학과 주임도 겸직하고 있었다. 사학의 실력은 전백찬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남개대학의 학술환경이 어찌 북경대학과 비교할 수 있겠는.. 2025. 3. 20.
당대중국의 팔대 "한간(漢奸)" 글: 작가양문산(作家楊文山)​펑웨이(馮瑋): "남경대학살은 오살(誤殺)이다"​​푸단대학(復旦大學) 교수인 펑웨이의 이야기가 한간(매국노)논쟁의 서막을 연다. 그의 한차례 공개활동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남경대학살은 오살이다." 이를 통해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남경을 점령한 후 6주에 걸쳐 30만중국군민의 목숨을 빼앗은 폭행을 고의사건이 아닌 것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렸다.​역사기록은 이에 대해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일본군은 남경에서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일본군장교 이즈마 시로(東史郞)의 일기에 상세히 살륙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국제안전구역 책임자임 욘 라베도 목격보고를 남겼다. 그외에 1946년 극동국제군사법정은 남경대학살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주범인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를 사형에 처한다.​펑웨.. 2025. 3. 19.
왕치산(王岐山): 국민당장교의 아들인 그는 어떻게 태자당이 되었나? 글: 두정(杜政)​10월 12일, 대륙의 대외선(大外宣)기능을 지닌 홍콩화통사(和通社)는 전 국가부주석 왕치산이 체포되었고, 그의 애인인 판빙빙은 미국에 7천여억달러의 예금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왕치산의 처남으로 전 중공부총리, 정치국상이 야오이린(姚依林)의 아들 야오칭(姚慶)이 2년전에 체포되었고, 왕치산의 몰수된 자산이 수조위안에 달한다는 등등의 내용도 있었다.​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화통사는 유엔경제사회국(UNDESA) 글로벌포럼 대변인사무실의 대외관방매체로 나온다. 그리고 그 산하의 은 "홍콩화통사가 주관하는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아주 큰 저명한 매체로 전국양회를 취재하는 정기간행물"이라고 되어 있다. ​이 웹사이트의 내용은 친중국으로 '시진핑경제사상'를 치켜세추고, 중공의 전국'양회'를 .. 2024. 10. 20.
친셩샹(秦生祥): 시진핑의 심복으로 볼 수 있는가? 글: 호해(胡亥)​해외여론은 중공정치사건과 인물에 대하여 토론할 때, 자주 역사배경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석하여, "관공전진경(關公戰秦瓊, 관우는 삼국시대인물이고, 진경은 당나라때 인물이어서 싸울 수가 없음)"같은 오판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 전 해군정위(海軍政委) 친셩샹(秦生祥)이 잡혀가서 조사받는다는 소문과 관련하여, 해외매체는 보편적으로 친셩샹이 시진핑이 발탁한 심복측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다. 사실상, 친셩샹은 시진핑의 적계(嫡係)가 아니로, 장쩌민(江澤民)의 심복인 자팅안(賈廷安)의 수하이다. ​친셩샹은 일찌기 북경군구 부정위 차오허칭(曹和慶)의 비서를 지냈고, 이어서 38군사정위(38軍師政委), 북경군구 정치부 조직부장등의 직을 맡는다. 그후 총정치.. 2024. 10. 9.
후춘화(胡春華)의 재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 이정요(李淨瑤)​전 중공황태자이자 후진타오(胡錦濤)의 격대지정후계자인 후춘화가 최근 들어 자신만만하게 나타나서 내몽골을 시찰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분석한다: 후춘화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내가 돌아왔다"고 드러내는 것은 강력하게 복귀했다는 것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르게 분석한다. 후춘화가 재등장한 것은 분명 왕후닝(王滬寧)의 음모일 것이라고.​중국의 관영매체보도에 따르면,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전국정협 부주석 후춘화는 전국정협농업및농촌위원회 특별시찰단을 이끌고 내몽골을 시찰했다.​9월 9일, 내몽골자치구당위서기 쑨샤오핑(孫紹騁), 자치구당위부서기, 자치구인민정부주석 왕리샤(王莉霞), 자치구정협주석 장얜쿤(張延昆)이 후허하오터에서 후춘화를 맞이한다. ​해외의 시사평.. 2024.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