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개(袁世凱)의 장례식: 국장으로 서태후에 못지 않았다.
글: 성도일보(星島日報)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봉건황제제도를 무너뜨린 후, 원세개는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 제2대 임시대총통을 지냈다. 그는 북양정부의 최고지도자였으며, 북양군의 창시자겸 영도자였다. 그의 장례식은 호화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규모도 엄청났고, 그 규격은 청나라황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1915년말, 원세게는 황제에 오르고, 연호를 홍헌(洪憲)이라 한다. 그러나, 사회각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저항한다. 특히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계요(唐繼堯), 채악(蔡鍔), 이열균(李烈鈞)등 실력자들이 호국군(護國軍)을 조직하여 무력으로 원세개를 토벌하고자 한다. 금방 원세개의 황제꿈은 "토원(討袁)"의 소리에 사라지게 된다. 그때 그의 사람들은 거의 떠나갔으며,..
2024.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