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42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글: 주한경(周漢卿) 누군가 블로그글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러빠이건 우빠이건 왜 모두 중화빠일까? 내가 이 블로거의 질문에 답을 하겠다. 그 답은 바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중국인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지지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구미사회의 두 가지 정치역량이다. 중국인은 구미사회의 주변인이고, 그저 피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뿐이다. 근대이래, 국제질서의 중심은 계속하여 유럽과 서방이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은 그저 피동적으로 서방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동아시아지역이 특히 대표적이다. 1848년이후, 민족국가는 유럽에서 주류가 되고, 세계의 다른 지방으로 확산하게 되며, 동아시아지역까지 확산된다. 일본은 유럽을 모방하여, 민족국가를 건립했다. 독프전쟁이후, 독일민족이 ..

OPPO의 반도체칩설계자회사 ZEKU(哲庫)의 마지막 회의록

글: 재경대강당(財經大講堂) 2023년 5월 12일, OPPO는 산하의 반도체칩설계회사 저쿠과기(ZEKU)의 사업을 폐쇄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하여 OPPO의 설명에 따르면, 글로벌경제, 핸드폰시장의 불확정성에 직면하여 신중하게 고려한 끝에 회사는 ZEKU의 사업을 접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이는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으며, 우리는 관련업무를 적절하게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좋은 제품을 만들고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조하겠다." 5월 14일 저녁에 인터넷에 ZEKU의 감원회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ZEKU의 CEO 류진, ZUKU의 COO 주샹주등 4명의 경영진이 참석했고, 회의에서 회사해산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경영진 여러명은 오열하거나 눈물을 보였다. ZEKU의 CEO 류쥔은 ZEK..

중국은 전랑외교로 한국을 다시 잃었다.

글: 황포강봉(黃浦江封) 국제사회가 블링컨의 방중을 주목하고 있을 때, 한중관계는 사상유례없이 긴장되며, 외교전이 양국간에 전개되고 있어서, 마치 1895년이전의 한반도의 국면의 재연되는 것같다. 중국은 한국을 잃는 외교적 실패에 직면했을 뿐아니라, 이 실패는 아마도 청일전쟁과 같은 시스템적인 실패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중국의 옛날 대조선외교의 실패는 1882년 조선의 임오군란때부터 시작한다. 이홍장(李鴻章)의 심복인 마건충(馬建忠)은 임오군란후에 조선에 사신으로 간다. 주요목적은 조선과 일본의 결맹을 막는 것이었다. 다만, 설사 그가 친일적인 대원군을 성공적으로 납치하고, 친중의 민비를 내세웠으며, 원세개(袁世凱)가 1885년 한성에 주둔하며, 이홍장이 영국, 러시아, 미국등의 세력을 빌어 일본을 막..

"대만독립(臺灣獨立)"과 "유구독립(琉球獨立)"의 차이

글: 오계눌(吳啓訥) "유구독립"사조와 "대만독립"운동은 외견상으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양자가 발생한 지점이 가깝다. 마찬가지로 동지나해에 있고, 서로 이웃하고 있다. 문화와 역사도 아주 비슷하며, 오랫동안 상호밀접하게 교류해온 도서이다. 양자는 도쿄와 베이징과의 관계에서 모두 변방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둘째, 양자가 발생한 시기가 비슷하다. 모두 2차대전이후, 냉전과 포스트냉전의 국제정치분위기하에서이다. 그러나, "유구독립"사조와 "대만독립"운동 사이에는 4가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일본식민지가 되기 전에, 유구는 고왕국(古王國)이었다. 대만은 그러나 정치사이래 중국왕조의 직할지였다. 둘째, "유구독립"사조는 유구의 원주민중의 지식인들에게서 나왔다; "대만독립"운동은 중국대륙 복건..

발해(渤海)와 일본(日本)의 해상교류

글: 송정(宋靖) 발해국(698-926)은 '해동성국'으로 불리웠고, 나라는 200여년간 존속하면서, 동북아 여러 나라, 지역과 문화 및 경제교류를 진행했다. 발해국은 동북아에서 중요한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고,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발해국 남경(북한 함경남도 북청군의 청해토성(靑海土城))에서 출발하여 직접 신라로 가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발해국 동경(지금의 길림성 훈춘시 팔련성. 일설에는 북한 부거리)에서 출발하여, 직접 일본으로 갔다. 대일항로는 비교적 안전했다. 발해국은 강역이 동해에 닿았고, 5개의 교통간선중 하나로서 일본도(日本道)는 발해의 제2대왕인 대무예(大武藝, 718-737)시기부터 개척되었다. 그때 일본은 신라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일부러 발해와 '친인결원(親仁結援)'의 우호관계를 건립..

중국의 "남해주권(南海主權)"에 대한 국제법적 분석

글: 조굉위(趙宏偉) 2010년이래, 미국은 중국의 남해주권에 대하여 도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외교와 군사적으로 미국의 도발에 굳건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주류의견은 주로 고유영토라고 말하거나 역사영토라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근대이래, 영토, 해역주권은 관련국제법규에 근거하여 주장해야 한다. 1. 청-프랑스의 청프전쟁이후, 1887년 6월 26일 중국과 프랑스령인도차이나는 남해해상의 국경선에 관하여 를 체결하였다. 이에 따르면, "광동계무는 양국 감계대신(勘界, 국경조사대신)이 국경선이외 망가(芒街)이동 및 동북일대의 모든 미정인 곳은 모두 중국관할로 국경선을 결정했다. 해중각도(海中各島)에 대하여는 양국 감계대신이 홍선을 그어 남으로 이어서 긋는다. 이 선은 차고사(茶古社) 동쪽 산을 ..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2)

글: 모해건(茅海建) 3. 유미학동(留美學童)과 배화법안(排華法案) 1844년 미중간에 이 체결될 때, 중국의 인구는 이미 4억에 이르렀고, 해외상업활동과 이민이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로 동남아였다. 미국상선은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오는데 항해시간이 50여일이 걸렸다. 두 나라국민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십년후인 1854년, 용굉(容閎)이 미국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B.A.)를 받는다. 용굉은 마카오와 홍콩에서 서양식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7년간 공부했다.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이 중국인이 귀국했을 때, 그의 미국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내심 고독을 느낀다. 그는 여러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직업을 전전한 후에, 청나라를 도와 미국에서 물품을 수입..

"홍콩"은 "중국"이 아닌가?

글: 이자임(李子壬) 최근 발생한 2건의 사건은 아주 웃긴다. "애국애당"의 입장이 굳건한 홍콩특구정부와 대륙의 샤오펀홍(小粉紅)들이 놀랍게도 일치하여 "홍콩"은 "중국"이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다. 사건1: 홍콩남자가 일본에서 성폭행으로 체포되다. 일본의 은 4월 26일자 보도를 통해, 30세의 중국공민 왕야오더(王耀德)이 도쿄를 여행하는 동안 20여세의 현지여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하였다. 도쿄 마루노우치경찰서는 왕야오더가 23일 저녁 10시, 동행한 처에게 외출하여 저녁식사를 사오겠다고 하면서 처를 호텔에 놔두고, 왕야오더는 도코 치요다구로 갔다. 그동안 한 여자에게 말을 건 후에 그 여자를 빌딩의 남자화장실로 끌고가서, 상대방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27일, 홍콩소방처는 이 사건의 혐의자..

중국해군의 약점

글: 정효농(程曉農) 비록 중국은 군사력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매년 군사비를 늘여가고 있으며, 해군함대는 신속히 확장되고있지만, 중국해군의 수량과 톤수로 그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성숙한 해군을 보유한 대국에 있어서, 대형군함의 다과는 확실히 해상군사력을 형량하는 기본적인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형편없는 해군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게 볼 수가 없다. 필자는 1월 23일 에서 중국해군주력전함의 삼무(三無, 무경험, 무자료, 무전문인력)를 지적한 바 있다. 오늘 추가로 중국해군순련의 형식화와 '쇼'화현상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1. 왜 미국은 중국이 타이완을 공격할 군사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중국이 만일 현재 대만을 공격하려면, 해낼 능력이 있을까? 중국에서는 해군의 군함수량과..

일본인 상사를 모시고 중국출장을 다녀오다

글: 재수일방(在水一方) 캐나다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후, 맨 처음 잡은 일자리는 S제약회사였다. S제약회사는 중국산둥의 어느 대형제약회사로부터 원료를 수입해온지 이미 오래되었다. 일본의 의약품관리법에 따라, 제약회사는 정기적으로 원료제공공장의 생산과정, 제품품질, 검사방법, 실험기록 및 제품창고보관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회사에 들어간지 몇달 후, 6월에 통역으로 공장장과 품질관리부 부장을 모시고 중국제약회사로 1주일간 정기검사를 나가야 한다고 통보받았다. 비록 이 일은 2년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출장때 본 약간의 사건들은 나에게 깊이 기억되었다. 막 출장소식을 들었을 때는 흥분했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이 모두 칭다오(靑島)였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이번 기회에 칭다오에서 놀아야겠다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