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文革)시기 북경홍위병의 "소혼단(小混蛋)"사건
글: 미학도(米鶴都)2014/08/27(1968년 여름, 문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북경에서 "소혼단사건"이 벌어진다. 여러 해동안 왕삭(王朔)의 소설, TV드라마 등 문예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이 사건은 이미 강호의 전설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설이 돌고 있다. 제662기에 실린 미학도의 글은 이 사건의 내력을 파악하게 해준다)"이 일의 앞뒤 사정, 특히 마지막 장면은 여기에 앉아 있는 당사자들만이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나머지 여러 소문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다." 조도도(曹都都)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이에, 필자는 여러번 사건의 핵심당사자 왕남생(王南生), 중요참여자 유호생(劉滬生), 강소로(江小路), 목격자 왕기예(王冀豫), 조도도등을 인터뷰했다..
2024. 11. 1.
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2023.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