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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악비)24

악비(岳飛)의 죽음: 1142년의 만화경 글: 왕서지(王犀知) 그해 악비는 전선에서 철수해야 했다. 수십차례의 금패(金牌)에 의해 불려온다. 그는 몰랐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멸정지재(滅頂之災)일 줄은. 그는 병권을 박탈당하고, 임안부(臨安府)의 감옥에 갇히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는데 1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진술서에는 단지 "천일소소, 천일소소(天日昭昭, 天日昭昭)"라는 여덟글자뿐이었다. 1 사서기록에 따르면, "천하가 그의 죽음을 원통해했으며, 그 소식을 듣는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天下寃之, 聞者流涕)" 일반적으로 악비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에서 끝난다. 오늘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 사건의 배후에 있는 몇몇 작은 인물들의 서로 다른 선택이다. 악비의 죽음은 하나의 만화경과 같다... 2022. 7. 24.
악비(岳飛)사건을 심리한 남송의 법관들... 글: 종의(鍾義), 청풍(淸風) 천고영웅 악비는 당시 권력이 조야를 뒤흔들던 남송의 간신 진회(秦檜)에 의해 모함받았다. 그는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악비가 모반했다는 거짓증거들을 잘 엮어서 판결을 내리게 해야 했다. 그러나 심리를 맡았던 관리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주삼외(周三畏). 그는 하남 개봉 사람이고, 소흥11년(1141년), 송고종과 진회는 그에게 최고법원의 법관으로서 악비사건을 심리하도록 명받는다. 그는 심리과정에서 악비의 진술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난다. 비록 주삼외는 직접 진회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명리와 정의의 앞에서 이성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주삼외는 백로산(白露山)에 은거했고, 사후에 백로산 자락에 묻힌.. 2022. 7. 23.
악비부인묘를 둘러싼 수백년 소송 글: 황징(黃澄) 쥬장시(九江市) 차이쌍구(柴桑區) 스쯔진(獅子鎭)(옛 九江府 德化縣 白鶴鄕) 싼챠오촌(三橋村)(이 명칭은 山口橋가 와전된 것임) 태양산(太陽山)에는 악비(岳飛)의 부인 이왜(李娃)의 묘가 있다. 그 땅은 '환봉면일(環峰面日,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태양을 향하고)' '산을 뒤로 하고 강물을 앞에 두어(依山臨水), 풍수가들이 "비연투하(飛燕投河)"의 명당자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송나라황제가 악비에게 무목(武穆)이라는 시호는 내리고 악왕(岳王)에 추봉하였고, 그후 원, 명, 청의 각 왕조황제도 계속 추증하여 인의충효의 모범이라고 받들었지만, 초국부인의 귀한 몸이 된 악비의 부인 묘지는 엄청난 소송에 시달리게 된다. 묘지쟁송 악씨패소 송나라황실이 남으로 내려온 후, 악비는 구강(九江)에.. 2020. 9. 25.
악비 <만강홍(滿江紅)"의 진위 문제 글: 아초광인(我楚狂人) 악비가 썼다고 하는 <만강홍> '노발충관(怒髮沖冠)' 사(詞)는 악비의 작품인지 아닌지는 오래된 문제이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위작설(僞作說)"을 취하는 사람은 여가석(余嘉錫), 하승도(夏承燾)가 대표적이다. 나중의 이오(李敖)도 같은 견히이.. 2018.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