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설(大雪)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악비는 대민족영웅이고, 진회는 대간신매국노라고. 그러나 880년전 악비가 조사를 받을 때, 당시 사회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악비는 당시 남송 최대의 야전군을 지휘했가. 그 규모, 전투력과 영향력은 임표가 지휘하는 사야(四野)에 상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악비가 체포되고 살해당할 때, 그의 부하들 중에 그 누구도 나서서 그가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죽임을 당한 사람은 오직 부장 장헌(張憲)과 아들 악운(岳雲)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좌되지 않았다. 이것이 설명하는 것은 조정의 이 조치에 대하여 당시의 많은 관병들은 설사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서는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또 다른 야전군사령관인 한세충(韓世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