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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118

오교병변(吳橋兵變): 닭 한 마리가 불러온 참사, 대명과 후금의 운명을 바꾸다. 글: 약진역사(躍進歷史)​역사는 이렇게 황당할 때가 있다. 정말 사소한 일이 천군만마의 국면을 가볍게 뒤흔들 수도 있는 것이다. 숭정4년(1631년), 산동(山東)의 오교(吳橋)에서 닭 한마리로 인해 일어난 충돌이, 전체 정예 화포부대의 반란을 불러온다. 대명이 거액을 들여 만든 "정예화기영"이 단시간내에 등주성(登州城)을 함락시키고, 후금에 투항하여, 후금이 대명을 공격하는 핵심부대가 된다. 오늘날의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수십년의 시간을 들여 연구개발한 첨단무기가 적군에 고스란이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명나라말기 요동에서는 전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누르하치의 후금이 굴기한 후, 대명의 전통기병과 보병은 이미 계속 패퇴하는 추세였다. 특히 살이후전투(1619년)이후, 명군의 열세는 분명하게 드.. 2024. 12. 23.
이암(李岩)의 신세내력과 대순(大順)의 멸망 글: 오유신(吳有信)​1944년 항일전쟁 7년째를 맞이하여, 각 정치세력 새롭게 판을 짜고 있을 때, 중국은 명나라멸망 300주년기념일을 맞이한다. 당시 중국의 내외정치환경은 이제 막 만청외족통치를 무너뜨린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로운 외적이 다시 문앞까지 쳐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국면이 명나라말기와 상당히 비슷했다. 숭정제(崇政帝)와 유사한 장개석(蔣介石), 그리고 이자성(李自成)과 비슷한 모택동(毛澤東), 그리고 오삼계(吳三桂)와 비슷한 왕정위(汪精衛), 그리고 만청(滿淸)과 비슷한 일본인까지.​선전을 잘 하던 공산당이 영도하는 좌파문인들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리하여, 교관화(喬冠華), 전백찬(翦伯贊)은 곽말약(郭沫若)을 찾아가서 상의를 한 다음 곽말약이 시사를 풍자하는 기념글을 쓰.. 2024. 11. 21.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을 둘러싼 의문점 글 : 장풍명월(長風明月)​명나라 정통14년(1449년), 오이라트(瓦剌)대군이 남하하여 명나라변경으로 침입했다. 명영종(明英宗)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였고, 토목보에서 오이라트군대에 패배하여, 명영종이 포로로 잡힌다. 토목보의 변은 명나라가 상승기에서 하강기로 접어드는 전환점이 되었는데, 사서의 기록에는 여러가지 의문점이 많다.​주류기록상의 토목보의 변의 경위토목보의 변토목보의 변은 주로 명종본기와 왕진전(王振傳)에 실려 있다. 다른 사람들의 전기에도 드문드문 관련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요 경과는 다음과 같다: ​[오이라트침입]​정통14년(1449년) 칠월, 오이라트는 4로로 나누어 대거 침입한다. 동로는 요동을 공격하고, 서로는 감주(甘州, 지금의 감숙성 장액)을 공격하고, 중간은 2로로 나누.. 2024. 11. 19.
<규범도설(閨範圖說)>: 황위승계다툼에 말려들다... 글: 춘추소력(春秋小歷)​만력18년, 여곤(呂坤)이라는 사람이 산서안찰사(山西按察使)로 부임했다.​이 직위는 상당히 중요하다. 권력도 아주 크다. 산서성의 법률과 감찰업무를 책임지는 자리이고, 적어도 정사품(正四品)에 해당한다.​이 여곤이라는 사람은 관리가 되기 전에 명나라의 거유(巨儒)로 학식이 뛰어났고, 책을 편찬하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산서에 부임한 후, 남는 시간에 책 하나를 편찬하여 출판한다. 명칭은 이다.​이 책은 인물의 전기로 주로 명나라이전 역대왕조 정결열녀(貞潔烈女), 현부양녀(賢婦良女)들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의 행위를 선양하고, 그녀들의 품덕을 칭송함으로써 천하의 여자들이 본받도록 선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이 책이 나온 이후 널리 호평을 받고, 산서에서 적지 않은 수량이 인.. 2024. 10. 31.
후금(後金)과 피의 원한이 있는 요인(遼人)은 왜 후금의 편에 서게 되었을까? 글: 자귤(紫橘)​일반적인 논리대로라면, 외적이 쳐들어와 너의 친척과 동네사람들을 죽였다면, 너는 마땅히 그들과 불공대천의 원수가 될 것이고, 가장 강경하게 대항할 것이며,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편에 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말기 이런 기이한 현상이 발생해버린다. 후금은 요동(遼東)에서 피비린내나는 도살을 감행했고, 요인(遼人)을 붙잡아 노예로 삼는다. 원래 후금과는 피의 원한이 있는 요인들은 나중에 후금의 중요한 맹우가 된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요민수요토(遼民守遼土)의 시작​천계(天啓)시기, 요동의 국면은 혼란에 빠지고, 명나라는 약세에 처하게 된다. 당시의 요동독사(遼洞督師) 손승종(孫承宗)은 참모 모원의(茅元儀)의 건의를 받아 조정에 를 올려, 정식으로 "요동.. 2024. 9. 22.
사안지란(奢安之亂): 명말 서남지역에서 17년간 지속된 반란 글: 자귤(紫橘)​천계(天啓)원년에 발발한 사안지란은 명말청초 서남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대동란이다. 이 반란은 17년이나 끌었으며, 그동안 중경(重慶)이 함락되고, 성도(成都)가 102일간 포위당하며, 준의(遵義)도 두 차례 함락되었다. 반란의 여파는 사천, 운남, 귀주등지에 미쳤으며, 명나라조정은 운귀총독(雲貴總督) 주섭원(朱燮原)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5개성의 관군을 끌어모아 9년간 전투를 벌이고, 그후에도 다시 8년간 여파를 겪으면서,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비로소 평정할 수 있었다. 사안지란이 평정된 후, 명나라조정은 영녕(永寧)에 개토귀류(改土歸流)의 정책을 실시하여, 영녕사씨(永寧奢氏)라는 천년토사(千年土司)를 철저히 뿌리뽑는다.​영녕사씨​서남지역은 자고이래로 "철타토사(鐵打土司), 유수황제.. 2024.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