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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261

귀주장자석유기(貴州藏字石遊記) 글: 장송(長松) 몇년전, 나는 구이저우(貴州)로 여행을 가서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는 완전 자유여행이었다. 그리하여, 장자석(藏字石)을 여행일정에 넣을 수 있었다. 구이저우의 산수는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거리는 "망산포사마(望山跑死馬, 산이 보이긴 하는데 거리가 멀아 도착하려면 말이 죽을 정도로 멀다는 의미)"에 속한다. 차를 타고 카이리(凱里)에서 핑탕(平塘)까지 다시 핑탕에서 다시 차를 타고 장부향(掌布鄕)까지 거의 10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장기간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도시생활때문인지, 차를 타고 가는 길이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히 현지주민들이 집을 짓는 것을 보니, 여전히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어서 깜짝 놀랐다. 예를 들어, 말로 모래와 돌을 운반한다든지, 조각루(吊脚樓, 서남지방 소수민족.. 2022. 9. 13.
홍콩의 빌딩과 부호 글: 천영(倩影) 오완방(吳婉芳, May Ng, 유엔 퐁 응, 홍콩의 가수 겸 배우)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 결혼에 관한 뉴스를 주목해서 보았다. 작년 11월 14일, 오완방과 호가화(胡家驊, Wilson Woo Ka Wah, 우카와)의 장남 호지략(胡智略, Caspar Woo)이 곽영동(霍英東, Henry Fok Ying-tung, 폭잉둥)의 둘째부인의 손녀인 곽영영(霍咏盈, Caroline Fok)과 결혼했다. 홍콩의 고관대작, 명문망족이 한명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단지 오완방의 연예계의 친한 사람들 몇몇이 참석했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곽영동의 둘째부인은 불효자를 낳아서 사업을 승계하지 못했고 그저 전문직이다. 그래서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곽영동은 이미 죽었고, 곽.. 2022. 8. 11.
홍콩의 25년에 걸친 제도싸움은 결판이 났는가? 글: 양위(楊威) 홍콩이 '회귀'된지 25년이 지났다. 지금 홍콩은 신속하게 중공홍색독재정권의 마조(魔爪)에 빠지고 말았다. 두 가지 제도는 과거 1/4세기동안의 힘겨루기에서 표면적으로는 승부가 난 듯하다. 그러나, 중공은 직접적으로 공산당의 사회주의제도가 홍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홍콩의 원래 자본주의제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중공은 있는 힘을 다해서 잠시 홍콩인이 자유, 민주모델의 자체를 저지했지만, 중공의 통치모델은 홍콩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홍콩민주는 요절되고 대륙모델을 복제되기 어렵다 과거 25년간, 홍콩인은 자유, 민주에 대한 커다란 바램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하여 행정장관의 직접민주선거를 쟁취하여 홍콩의 진정한 자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중공의 행위는 정반대이다.. 2022. 6. 27.
자금성(紫金城)의 배치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글: 배포여행하(背包旅行呀) 명나라의 세번째 황제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는 정난지역(靖難之役)을 통해 조카 건문제(建文帝)를 황위에서 끌어내리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남경은 건문제의 세력범위여서 주체가 국면을 장악하기 쉽지 않아서 도성을 남경성에서 북경성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북경에 자금성을 짓는다. 오늘날 고궁의 전신이다. 자금성은 명,청의 황제와 가족들의 거주공간과 업무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건축의 배치는 대체로 "좌조우사(左朝右社)" "전조후침(前朝後寢)"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조'는 태묘(太廟)를 가리킨다. 즉, 오늘날의 노동인민문화궁이다. 그 안에는 청나라 각 황제의 패위(牌位)가 모셔져 있다; '우사'는 사직단(社稷壇)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중산공원이다. 그 안에는 오색토.. 2022.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