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관우)23

관우의 후손이 있을까? 글: 선한(宣漢) 중국인에게 "의용(義勇)" 두 글자의 화신인 관우는 성공을 다 이루지 못하고 동맹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도망치다가 죽는다. 그의 최후는 역대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일이다. 관우의 장남 관평은 부친을 따라 전투에 나섰다가 맥성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붙잡혀 부친과 함께 죽는다. 차남 관흥은 제갈량이 중시했으나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띨 관씨는 여몽의 손에 붙잡한 후 행방이 묘연하다. 관우의 혈맥은 그리하여 더욱 희박해지게 된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 수백년 천여년이 지나는 동안 관우는 역대군왕, 무인,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신으로까지 모셔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일부 관우의 후예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정부의 녹봉과 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관우의 후손은 이어져.. 2021. 12. 25.
관우의 후손이 남아 있을까? 글: 고산(高山)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심심하면 항상 고대의 명인들의 후손에 대하여 얘기하다가, 일단 관우의 이름이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이 없어진다. 관우의 후손은 그다지 큰 공헌이 없으므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관우에게는 후손이 없다고 얘기한다. 도대체 관우는후손을 두었을까? 관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동한 삼국시대의 대장이다. 또한 유비와 도원결의한 형제이기도 하다. 관방사서의 기재이건 아니면 역사연의소설의 묘사이건, 관우는 모두 충성과 의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온조참화웅과 천리주단기로 삼척동자도 아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영웅도 죽는 법이다. 건안24년(219년), 관우는 형주를 지키다가, 조조와 손권이 .. 2021. 12. 24.
관우의 딸은 결국 누구에게 시집갔을까? 글: 지역사(知歷史) 사서에 이름을 남긴 여성은 아주 적다. 관우의 딸도 예외는 아니다.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건안24년(219년), 관우는 형주를 잃고, 아들 관평(關平)과 함게 오나라장수에 붙잡혀 살해된다. 그를 따라 도망쳤던 나머지 가족(그의 딸을 포함해서)의 행방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진수의 기록에 따르면, 관우에게는 아들 관흥(關興)이 있고, 그가 관우의 작위를 승계했다. 추측하건데 그는 나이가 어려서 성도(成都)에 남아 있었던 것같다. 그래서 부친과 함께 겁난을 당하지 앟은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추측할 수도 잇다. 아이는 전란중에 적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쉽게 도망칠 수 있었다고. 그러나 어떻게 추측하든간에 관흥은 사서에 기록된 유일하게 살아남은 관우의 아들이다. 민.. 2020. 9. 4.
정사(正史)기록상 관우가 죽인 장수는 단 두명이다.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유명소설 에서 작자 나관중(羅貫中)은 관우를 충의인용(忠義仁勇)의 청룡언월도를 든 무장의 이미지로 그렸다. 고대위맹(高大威猛)하며 무예가 비범하다. 첫부분에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하고, 병기를 만든 후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전쟁에 참가한다. 18로제후가 동탁을 토벌할 때, 관우는 온주화참웅(溫酒斬華雄)하고,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한다. 유비가 서주에서 패전하고나서는 세 가지 일을 약속받고 항한불항조(降漢不降曹)한다. 조조를 위하여 백마의 포위를 해결해주고, 안량, 문추를 참한다. 유비의 행방을 알고난 후에는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로 과오관참육장(過五關斬六將)한다. 채양(蔡陽)을 죽이고, 고성에서 삼형제가 다시 만난다. 적벽대전때는 화용도(華容道)에서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 2020.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