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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중기)29

청나라 궁정의 서양의사 글: 관설령(關雪玲)​청나라 황제의 의료집단은 다원화된 팀이 있었다. 중견역량인 태의원(太醫院)의 의관(醫官)외에 서양의사도 중요한 일원이었다. 청나라 중기 서양의사들이 청나라궁중에 재직하면서 의료활동을 진행했다. 먼저 황실에서 일하면서 황제의 신체건강을 책임졌다. 나중에는 황제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질병치료를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서양의사가 강희제의 병을 치료하다​​​서양인의사가 황제를 치료한 저명한 사례는 두 개가 있다. 각각 강희32년(1693년)과 강희47년(1708년) 강희제가 학질(虐疾)과 심계증(心悸症,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를 가리킴)을 치료한 것이다.​강희32년 강희제의 신체상황에 관하여 강희제 자신이 쓴 바를 보면, "짐은 정월 초팔일부터 한병(汗病, 땀이 나는 병)이 시작되고.. 2024. 12. 25.
구자탈적(九子奪嫡)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상삼기(上三旗)와 하오기(下五旗)의 다툼 글: 송안지(宋安之)​역사는 비록 불변이지만, 서로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돌아볼 수는 있고, 그렇게 하면 왕왕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청나라때의 구자탈적(九子奪嫡)을 예로 들면, 중국역사상 저명한 탈적지쟁(황위계승전)의 배후에는 여러가지 다른 의미가 있고, 관련되는 범위가 너무 넓다. 그중 팔기(八旗) 내부의 투쟁을 보면, 이는 기실 상삼기와 하오기의 투쟁이었고, 결국은 양패구상(兩敗俱傷)하고, 옹정제가 '어부지리'을 얻은 것이다.​소위 상삼기는 상황기(鑲黃旗), 정황기(正黃旗), 정백기(正白旗)이고, 그 의미는 천자가 직접 지휘하는 기(旗)라는 것이다. 처음에 천자가 직접 지휘하는 기는 청태조 누르하치가 직접 지휘한 양황기(兩黃旗, 정황기와 상황기)이다. 청태종 홍타이시(皇太極)가 즉위한 후.. 2024. 12. 22.
아이훈조약(瑷琿條約): 불법인 조약이다 글: 역사감상자(歷史鑑賞者)​러시아인들은 각종 기념일을 기념하는데 열중한다. 어쨌든 명절을 지내면 즐거운 것이다. 많은 기념일중에 러시아인들이 잊기 힘든 것이 있다. 바로 아이훈조약(瑷琿條約)기념일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확실히 러시아인들은 매년 각종 형식으로 아이훈조약을 기념한다. 이는 모든 러시아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할 날이다. 왜냐하면 이 날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극동의 큰 영토와 천연양항(天然良港)을 얻게 된 것이다.​더욱 러시아인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일은 그들이 병력 한명 동원하지 않고, 100여만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얻었다. 이는 전체 러시아역사상 사상유례없는 일이었다. 거의 모든 러시아인이에 대해 불가사의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 가지 유언비어를 믿게 된다: 이 땅은 자고이래로 .. 2024. 11. 8.
"네르친스크조약(尼布楚條約)": 왜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이를 국치(國恥)로 여길까?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청나라초기 강희(康熙)연간에 중국역사상 첫번째로 중요한 대외조약이 체결된다. 그것은 바로 네르친스크조약이다. 이 조약은 역대이래로 논쟁이 많다. 그리고 그 논쟁은 아주 재미있다. 즉 조약을 체결한 쌍방은 모두 공식적으로 이 조약이 불평등조약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만, 쌍방의 학술계와 민간에서는 시종 두 가지 전혀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이 조약이 러시아에 불평등한 조약이어서 러시아의 국치라고 보고, 청나라쪽에서는 더더욱 이 조약은 전형적인 치욕조약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네르친스크조약의 내력에 대하여는 아마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러시아는 16세기이래 대외확장을 추구해왔다. 소위 쌍두응(雙頭鷹)으로 유럽을 공략하는 것은 놔두고라도, 동방에 대하여 우랄산맥을.. 2024. 7. 29.
점간처(粘杆處): 옹정제가 만들고, 가경제가 없앤 신비의 특무조직 글: 양우모초(样雨慕初) 이전에 의 자매편 시리즈를 볼 때, 옹정이 가장 의지하던 기구의 명칭이 '점간처'라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이름을 너무 성의없이 지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건 작가가 무신경해서라고 생각했다. 인식 속에서 고대의 각 부문의 명칭은 장엄하였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역사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원래 '점간처'가 역사상 진짜 존재했던 것이고, 옹정제때 영향력이 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점간처"라는 명칭은 겉으로 보기에 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아주 실질적인 지하특무기관이었다. 명나라때의 동창, 서창과 금의위에 해당한다. 주요작용은 정보를 수집하고, 백관을 감찰하는 것이다. 이는 황제에게 적지 않은 편의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고, 황제가 전면적으로 조정을 장악.. 2021. 2. 9.
유통훈(劉統勛): 청나라의 보기 드문 청백리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그의 아들 유라과(劉羅鍋, 劉鏞)과 비교하면 유통훈의 명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건륭제 시절을 묘사하려면, 소설이건 드라마이건 그를 빠트릴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일생의 공적은 아들 유라과보다 훨씬 크다. 청왕조때 12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모두 8명의 문신들만이 최고영예의 시호인 "문정(文正)"을 받았다. 거기에 유통훈이 들어 있다. 당연히 이 8명 중에서는 대부분 자격미달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탕빈(湯斌)과 두수전(杜受田)같은 사람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가? 가장 명실상부한 사람은 유통훈 외에 오직 증국번(曾國藩)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종묘에 배향된 장정옥(張廷玉)이나 '표호장(裱糊匠)' 이홍장(李鴻章)조차도 '문정'의 영예는 받지 못했다. 유통훈.. 2021.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