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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143

당나라이후 장안을 왕조의 수도로 삼지 않은 이유는? 글: 청수(清水) ​ 진, 한, 당의 휘황찬란한 역사는 모두 수도를 관중지구에 두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통일왕조는 장안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 더 이상 어느 왕조도 관중을 수도로 삼거나, 관중을 기반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북송도 낙양으로 천도할 생각은 하였지만, 장안으로 천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주원장도 관중으로 천도할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의 관중지구는 이미 너무 파괴되어 할 수 없이 포기하게 된다. 관중지구의 쇠퇴원인은 여러 방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적인 점도 있고, 정치적인 점도 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경제중심의 이전이다. 특히 대운하가 개통되어 남북경제가 연결된 후, 관중의 경제적지위는 점차 저하된.. 2024. 4. 11.
양계초(梁啓超) 손자: 우리 3대는 모두 실패자이다 글: 추체독서(抽屉讀書) ​ 양씨삼대인물 ​ 양계초는 위난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사방에 호소했었다; 양사성(梁思成)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전통성시건축물을 구하기 위하여 사방에 호소했었다; 양종계(梁從誡)는 세상만물이 생존을 의지하는 자연환경을 구하기 위하여 사방에 호소했었다. ​ 양씨집안의 혈맥에 뿌리내린 집착, 정직과 용감하게 말하는 태도는 중국의 지식인이 마땅히 가져야할 모습이다. ​ 이는 거의 백년간 사람들에게 잘못 읽혀온 시이다: ​ "너는 나무 하나 하나에서 핀 꽃이고, 제비가 대들보 사이에서 지저귄다. 너는 사랑이고, 따스함이고, 희망이다. 너는 인간사월천(人間四月天)이다." ​ 임휘인(林徽因)의 이 문구는 많은 문학청년들이 반복하여 암송한 것이고, TV드라마는 이 말을 사랑의 속삭임.. 2024. 2. 6.
"치파오(旗袍)"의 진실된 역사... 글: 주한경(周漢卿)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관련전문가들이 쓰도록 남겨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났지만, 필자는 그 어느 전문가/역사학자/근대사전문가/의류전문가/지식인/작가들도 치파오의 진정한 역사를 쓰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정본청원(正本淸源)하기 위하여 남자인 필자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치파오(旗袍)는 "장삼(長衫)/치파오(祺袍)"의 오해이다. 그 이름은 오랫동안 "치파오(祺袍)" 혹은 "장삼"으로 불려왔다. 영문으로는 cheongsam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장삼'의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장삼'이 원래 이름이다. 그런데 왜 치파오(祺袍)로 바뀌었다가 다시 치파오(旗袍)로 바뀌게 된 것일까? 간단하다면 간단한데, 복잡.. 2023. 3. 6.
역사미스테리: 이자성(李自成)의 죽음 글: 이보림(李保林) 명나라말기, 이자성이 이끄는 농만군은 270여년간 이어지던 명왕조를 무너뜨린다. 다만 북경에서 겨우 49일간 머물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많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특히 이자성의 사인(死因)은 몇세기의 논쟁을 거쳤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그 원인은 주로 이자성이 죽을 때는 전쟁이 한창중이며, 대순군이 청군에 쫓겨 사방으로 도망쳐 다니면서 궤멸한 비상시기였고, 게다가 관방사서 및 일부 사적에 기록된 이자성의 사인은 믿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이자성의 사인은 수수께끼가 되고 복잡다단하게 되었다. 1 이자성의 사인에 관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의 기록일 것이다: 순치2년 구월, 이자성은 패배하여 호북(湖北) 통성(通城)의 구궁산(九宮山)으로 물러난다. "스스로 20기.. 2023. 3. 3.
"북경(北京)"은 왜 "북평(北平)"으로 불리웠는가? 글: 진신(陳新) 북경은 3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이다. 왕조가 교체됨에 따라, 전후로 60여개의 정식명칭과 별칭이 있었다. 세계의 도시역사상 명칭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북경과 북평 두 명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북경은 왜 역사상 북평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명나라의 창업자 주원장(朱元璋)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원나라말기, 몽골통치자에 반항하는 농민반란이 거세게 일어나 전국을 석권한다. 주원장은 농민군의 진우량(陳友諒), 장사성(張士誠)의 세력을 흡수한 후, 강남의 반벽강산을 차지한다. 그리고 원나라 지정27년(1367년) 대장 서달(徐達), 상우춘(常遇春)에게 군사를 주어 북벌에 나선다. 1368년, 주원장은 응천부(應天府, 지금의 남경)을 경사(京師).. 2023. 3. 1.
장한수(張恨水): 3명의 부인, 13명의 자식, 민국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작가 글: 습문화(拾文化) 장한수가 평생 가장 자랑스러워한 것은 바로 글솜씨이다. 양으로 따지자면 그는 민국시대 작가들 중에서 절대로 첫손에 꼽힐 것이다. 50여년간 집필하면서 3000여만자를 썼다. 동시에 여러 소설을 연재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최고기록은 동시에 7편의 장편소설을 연재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스토리라인, 그렇게 많은 인물이 있지만, 한번도 헷갈리지 않았고, 한번 글을 쓰면 고치지도 않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한손으로 소설을 쓰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마작을 했는데, 둘 다 실수없이 해냈다는 것이다. 질로 따져도 그는 팬들사이에서는 대가중의 대가이다. 진인각(陳寅恪)이 두 눈이 멀고 나서, 매일 친구 오복(吳宓)에게 부탁해서 장한수의 소설 을 읽어달라고 부탁해서 병상의 무료함을 달랬다고 한.. 2023.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