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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136

조복전(曹福田): 의화단(義和團)의 2인자 글: 여소뢰(余少鐳) 오랫동안 의화단이 사람들에게 심어준 ㅇ니상은 '봉양필반(逢洋必反)' '봉양필멸(逢洋必滅)' 즉 외국 것은 모두 반대하고 없앤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소위 '양'자가 붙은 물건은 국가를 따지지 않고, 브랜드도 따지지 않고 모조리 서양인이 중국을 해치기 위해 가져온 것이니 없애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화단이 한양멸양(恨洋滅洋)한 사료는 차고 넘치도록 많다. 그저 뒤져보기만 하면 나온다. 예를 들면, 청말민초의 광동 순덕 사람 나돈융(羅敦曧)이 쓴 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의화단은 철로, 전선은 모두 서양인들이 중국을 해하지 위한 것이니 철로는 불태우고 전선은 철거한다. 무릇 집안에 서양책, 서양지도를 보관하고 있으면 모두 '이모자(二毛子)'이니, 잡아서 반드시 .. 2022. 1. 2.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없다. 글: 살사(薩沙) 대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도대체 중국에 왔던 것일까? 1298년 9월 7일 마르코폴로는 감옥에 갇히고, 루스티첼로와 합작으로 를 쓴다. 마르코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있을까? 쿠빌라이를 만난 적이 있을까? 지금 보면,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와서 쿠빌라이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없다.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나라때의 모든 역사기록에서 마르코폴로를 찾아볼 수 없다. 몽골인들이 원나라를 건립한 후에는 더 이상 유목민족이 아니고, 계통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그가 여러번 원나라의 대칸 쿠빌라이를 배알했다고 적었다. 1275년 여름, 23살의 마르코폴로는 처음 쿠빌라이를 만났고, 동행한 사람은 그의 부친과 숙부였다. 마르코폴로의 기술에 따르면, 대칸은 젊고 .. 2021. 10. 8.
봉호도(峰虎圖): 삼백년간 무수한 논쟁을 불러온 그림 글: 취초인문세계(聚焦人文世界)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에는 한폭의 괴화(怪畵)가 소장되어 있어, 300여년동안 무수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그림을 둘러싸고 주로 3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 화가는 왜 호랑이를 그리면서 꼬리를 만 상갓집 개같은 모습으로 그렸을까? 둘째, 그림의 제목이 왜 '봉호도(峰虎圖)'일까? 셋째, 이런 그림이 어떻게 명작이 되어 고궁박물원에 소장될 수 있었을까? 먼저 이 그림을 살펴보자.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피골이 상접하고, 몸을 웅크리고 있으며, 눈빛에서는 두려움이 크게 나타나 있다. 호랑이를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렸을까? 그림의 오른쪽 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땡벌이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원래 위풍당당한 산중대왕이 산에서 땡벌을 당해내지 못해서 고통스러.. 2021. 2. 12.
건륭제가 영국국왕에게 보낸 회신(원문+번역) (고문이어서 번역에 부족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개략적인 의미로 이해해주면 될 것같습니다) 너희 국가의 국왕은 멀리서도 청나라의 명성을 흠모하여 가르침을 받아, 중국에 동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하여 먼 길을 항해하여왔다. 짐은 너희 나라 국왕의 공손한 성의를 감안하여, 대신으로 하여금 사신을 데리고 짐을 접견하게 해주었다. 연회를 베풀었으며, 선물도 하사했다. 그리고 이미 칙유도 내렸다. 그리고 너희 나라의 국왕에게 진기한 물건도 보냈다. 이를 통해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표시하고자 한다. 어제 그대의 사신은 그 대나라와의 무역의 일을 대신등을 통하여 짐에게 아뢰었다. 모두 제도를 바꾸는 일이니 허가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서양각국과 너희 나라의 상인들이 천조(청국)에 와서 무역을 할 때는 모두 .. 2020.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