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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143

고창국왕 국문태(麴文泰): 현장(玄奘)의 서역취경을 도운 인물... 글: 맹헌실(孟憲實)​국문태(麴文泰)는 역사상 소인물(小人物)이다. 그는 당태종(唐太宗)에 의해 멸망한 고창국(高昌國)의 국왕이고, 이 조그마한 나라의 영토는 광활한 판도를 지닌 당나라와 비교하여 360분의 1에 불과하였다. 당나라는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인구 37,738명을 얻는다. 이것이 국문태의 모든 국민이다. 당나라때 이는 중간급의 주(州) 수준이다. 당나라 현장(玄奘)의 사적은 여러 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국문태는 오직 대당이 서역을 경영하는 위대한 전쟁때 비로소 언급된다. 그리고 이미지도 그다지 위대한 것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간의 관계를 주목하고, 소인물과의 관계는 주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장과 당태종의 관게는 당나라 현장 항목(楊廷福 작성)에서 .. 2025. 5. 21.
당소종(唐昭宗): 필사적 일해서 나라가 망하다. 글: 최애역사(最愛歷史)​888년, 대당(大唐)에 있어서 이 해는 숫자처럼 매우 길(吉)한 해였다.이해의 4월 20일 나이 겨우 27살의 당희종(唐僖宗) 이현(李儇)이 붕어한다.1​비록 매번 황제가 죽을 때마다 조정은 항상 관례에 따라 "거국애통(擧國哀痛)"하지만, 당희종이 죽어버리자, 사람들은 형식적으로 잠깐 슬퍼하는 척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매우 기뻐했다.왜냐하면, 당희종은 황제로서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이 황제는 12살때 대당의 용상에 오른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나이였던 그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노는데만 신경쓰면서, 황제의 본직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대신을 싫어했고, 환관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했으며, 자신의 "보모환관(保姆宦官)"이라고 말하던 전령자(田令孜)를 "아부(阿父)"라고 .. 2025. 5. 16.
필원(畢沅): 입비광인(立碑狂人) 글: 마약학교수(魔藥學敎授)필원(1730-1797), 지금의 강소(江蘇) 태창(太倉)에서 태어났고, 청나라 건륭, 가경제때의 관리, 학자이다. 필원은 섬서순무(陝西巡撫)로 10년간 재직했는데, 문화고적들을 고찰하고, 고대제왕의 능묘를 보보하고, 비림(碑林)을 정비했다. 그는 이들 문화유적과 능침에 비문을 썼는데, 완전하지 않은 통계에 따르면, 섬서 경내에 남아 있는 필원의 비문은 65개에 달한다.​필원비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중간에 큰 글자로 능묘의 연대, 묘주인의 명칭과 신분을 썼고, 양측에는 "사진사급제병부시랑섬서순무겸도찰원우도어사필원서(賜進士及第兵部侍郞陝西巡撫兼都察院右副都御史畢沅書)"와 "대청건륭세차XX(大淸乾隆歲次XX)"등 작은 글자 및 비를 세우는 장소의 지방관리의 신분과 이름을 적었다.​주.. 2025. 2. 9.
소정방(蘇定方): 살아서는 전신(戰神), 죽어서는 간신(奸佞) 글: 최애역사(最愛歷史)​대당 정원5년(789년) 구월, 태극궁(太極宮) 능연각(凌煙閣)​지난번 반란을 평정한 명장 이성(李晟)과 마수(馬遂)를 만난 후, 당덕종(唐德宗) 이적(李適)은 능연각을 확장하여, 두 명장의 화상을 넣을 생각을 하였고, 이번에 능연각으로 온 것은 당덕종이 영령의 빛나는 업적을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당덕종이 능연각으로 들어가서, 능연각내의 명신, 맹장들의 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당나라초기 24명의 공신들 화상외에, 당중종, 당덕종, 당대종등 황제도 국가의 중신들의 화상을 이곳에 걸게하여 영원히 기념하도록 했다.​능연각의 벽을 가득채운 공신들을 보면서, 당덕종은 무언가 비감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대당의 예전 영광과 강성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단 말인가?​당덕종은 답을 얻지 못했다.. 2025. 1. 16.
안록산(安祿山)암살의 진상은....? 글: Loading69​안록산(安祿山)은 703년 영주유성(營州柳城, 지금의 요녕 조양)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소그드인(粟特人)이며, 모친은 돌궐인(突厥人)이다. 안록산의 몸무게는 330근이 되었으며, 아랫배가 무릎까지 닿았다. 당나라때 1근은 약 680그램(胡戟의 에 근거함)이므로 환산해보면 그의 체중은 오늘날의 448.8근, 즉 224.4킬로그램에 이른다. ​에 따르면, 안록산이 매번 다닐 때면 어깨를 좌우시종의 몸 위에 얹고 그들이 그의 몸을 받쳐주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현종의 앞에서 호선무(胡旋舞)를 출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였다고 한다.​에 따르면, 한번은 당현종의 안록산의 큰 배를 보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의 뱃속에는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많이 담고 .. 2025. 1. 12.
당대종(唐代宗): 권모술수의 귀재 글: 비정상역사연구실(非正常歷史硏究室)​보응원년(762년) 사월, 당현종(唐玄宗)과 당숙종(唐肅宗)이 차례로 사망하면서, 자식이 없던 장황후(張皇后)는 태자 이예(李豫)은 공이 커서 제압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암중으로 월왕(越王) 이계(李係)를 입궁하게 했다. 그녀는 이예를 폐위시키고, 이계로 하여금 황제에 등극하게 하려는 것이었다.​환관 이보국(李輔國), 정원진(程元振)은 장황후의 음모를 파악하고, 즉시 장황후와 이계를 연금시키고, 이예를 황제로 옹립한다. 이렇게 하여 이예는 위기를 겪으면서 황위에 오른다. 그는 대당제국이 개국한 이래 처음으로 적장자(嫡長子)의 신분으로 황제가 되었으며, 그가 바로 당대종(唐代宗, 그의 묘호는 원래 唐世宗이다. 다만, 당태종 이세민의 이름을 피휘하여 통상 당대종으로 부른.. 2024.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