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사마의) 10

고평릉사변(高平陵之變): 사마의는 어떻게 성공했는가?

글: 신계(神啓) 위소제(魏少帝) 조방(曹芳) 가평(嘉平)원년(249년), 사마의(司馬懿)는 조상(曹爽)이 천자와 백관을 데리고 선제(先帝)의 고평릉에 제사를 지내러 간 틈을 타서, 낙양성(洛陽城)에서 정변을 일으킨다. 역사에서는 이를 고평릉사변이라고 부른다. 사마의는 조상의 삼족을 죽이고, 조상을 우두머리로 하는 조위종실(曹魏宗室)의 조정내 세력을 제거한다. 이를 통해 조위의 정국을 장악한다. 고평릉사변은 조위역사의 중요전환점이고, 사마씨가 위를 찬탈하여 진을 세우는 시작점이 된다. 1. 총호칩복(塚虎蟄伏): 사마의의 계획 위명제(魏明帝) 경초(景初)2년(238년), 위명제의 병이 위중해지고, 임종전에 총신 유방(劉放), 손자(孫資)의 건의를 받아, 대장군 조진(曹眞)의 아들 조상과 사마의를 보정(輔政..

사마의(司馬懿)의 스승은 누구일까?

글: 위문한사(魏門寒士) 삼국시대의 사마의는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삼국시대에 사마씨가족은 최대의 승리자이니까. 이는 사마의가 지닌 능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이렇게 보면 사마의는 분명 명사(名師)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 방통의 두 천재는 모두 사마휘(司馬徽)의 제자이다. 사마휘는 사마의와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사마의는 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마의의 스승은 누구일까? 기실 사마의의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마의의 가장 유명한 두 아들은 바로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둘일 것이다. 두 사람은 적출이면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사소(師昭)"이다. 그렇다고 사마의의 ..

사마의가 일생동안 무서워한 3명은 누구인가?

글: 투규역사(偸窺歷史) 사마의(司馬懿)는 삼국시대의 모든 모사(謀士)중에서 재지로 따져서 탑5안에 드는 인물이다. 그리고 사마의는 삼국시대에 마지막에 웃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전의 모든 모사들이 다 죽었는데도 그는 살아남았다. 사마의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상대방을 지쳐 죽게 ..

역사상 진실한 사마의는 얼마나 악독했을까?

글: 아시삼갑제사명(我是三甲第四名) 1. "본제생가(本諸生家), 전례래구(傳禮來久)" 진무제 사마염은 즉위후에 조서를 내려 자신의 가족이, "본제생가, 전례래구"라고 말했다. 이것은 과장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마씨가족은 명문거족이기 때문이다. 중국고대의 개국황제는 자신의 칠..

공성계(空城計)로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패했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고전명저 <삼국연의> 소설에서 전반부의 클라이칵스는 "화소적벽(火燒赤壁)"이고,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는 "육출기산(六出祁山)"이다. 제갈량이 육출시간할 때, 신기묘산의 공명선생은 강대한 적수를 만난다. 그의 복성은 사마(司馬)이고 단명은 의(懿)이다. 하남 ..

사마의는 어떻게 조조,조비의 의심을 벗어날 수 있었는가?

글: 백마진일(白馬晋一) 삼국의 군웅들이 치열하게 싸웠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단 1명이다. 그는 바로 천하를 그저 주워먹은 사마의이다. 사마씨와 조씨의 교분을 살펴보면 연원이 깊다. 사마의의 부친은 사마방이라고 하는데, 낙양령의 관직에 있었다. 우리의 조조가 얻은 첫번째 관직이 ..

누가 삼국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사(謀士)인가.

글: 십이천벌(十二天罰) 문무제일(文無第一) 무무제이(武無第二) 천하모사와 영웅은 부친모친이외에 시대가 그들을 만든다. 삼국시대는 말로써 다할 수 없고, 명확히 할 수 없는 시대이다. 나관중은 그것을 연의소설로 씀으로써, 인물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분명히 나관중은 유비라는 ..

사마의(司馬懿) 자손3대는 어떻게 조조집안의 강산을 빼앗았는가?

작자: 미상 동한말기에서 위진때까지 정권은 분할되고, 번왕들이 난립하여 전체 정치국면이 아주 불명확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정권의 교체과정은 하나의 강물이 산길을 따라 여러번 굽어서 흘러가는 것같았다. 이때 자주 바다의 파도보다 더 미친 듯한 파도와 바람이 불기도 ..

사마의(司馬懿) 가족은 어떻게 조위(曹魏)정권을 잠식했는가?

글: qinghuajijiao 삼국시대에 조조(曹操)와 조비(曹丕) 부자는 강권정치의 대표자들이었다. 조조는 이름없던 정객에서 점차 실력을 확보하여, 먼저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 천자를 끼고 제후에 명을 내리다)"를 통해 한헌제(漢獻帝)를 자기 수중의 허수아비로 만들고, 나중에 승상의 지위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