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민(阿敏): 후금의 사대패륵(四大貝勒)중 한명
글: 철기여풍(鐵騎如風) 1616년, 누르하치(努爾哈齊)가 허투아라(赫圖阿拉, 지금의 요녕성 신빈)에서 후금을 건립한 후, 다이샨(代善), 망구얼타이(莽古爾泰), 홍타이시(皇太極)과 아민을 사대패륵에 봉한다. 패륵은 여진(女眞)의 제후에게 주는 봉호이고, 일종의 세습 작위이고, 지위는 친왕(親王)과 군왕(郡王)에 바로 다음 간다. 아민은 누르하치의 동생인 슈르하치(舒爾哈齊)의 아들이면서 나머지 3명의 누르하치의 아들들과 함께 4대패륵중 한명으로 봉해질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의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이로 보면, 그는 홍타이시의 사촌형이고, 또한 홍타이시가 칸(汗)에 오르는 것을 극력 옹호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홍타이시가 칸에 오른 후, 아민은 서서히 숙청당하게 되었을까? 158..
2023. 1. 17.
추잉(褚英): 누르하치 장남의 수수께끼
글: 지식거륜(知識巨輪) 아르하투투먼패륵(阿爾哈圖圖門貝勒)은 누르하치의 장남 추잉(褚英)이다. 추잉은 누르하치의 첫번째 대푸진(大福金, 푸진은 만주어로 부인이라는 뜻임)인 퉁자씨(佟佳氏) 소생으로, 만력8년(1580년)에 태어났다. 이때 그의 부친 누르하치의 나이는 22살이었다. 추잉은 용맹하고 지모가 뛰어나서, 전투에 능했고, 전공을 여러번 세운다. 만력26년(1598년) 정월, 누르하치는 막내동생 바야라(巴雅喇), 추잉과 가가이(噶蓋), 페이잉동(費英東)에게 1천의 병사를 이끌고, 동해여진(東海女眞) 안추라쿠루(安楚拉庫路)를 정벌하게 한다. 추잉의 공적 이때 추잉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다. 그러나 그는 힘든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밤을 세워 달려가서" "둔채(屯寨) 20곳"을 취했다. 그러자, 나..
2022.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