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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37

진실한 조조(曹操)를 찾아서... 글: 이자제(李子霽) 는 명나라때 세상에 나타난 이래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 안에는 지혜, 용맹, 충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풍류인물에 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설전군유(舌戰群儒)"에서 "칠금맹획(七擒孟獲)", "화소적벽(火燒赤壁)"에서 "화소연영(火燒連營)"까지,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에서 "주마천제갈(走馬薦諸葛)"까지, "맹덕헌보도(孟德獻寶刀)"에서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까지.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1994년 TV드라마 가 방영된 이래, 다시 한번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고, 중국인들에게 다시 "삼국"에 대한 미련(迷戀)을 환기시켰다. 이는 전체 중국문화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오늘날 함께 "삼국"을 이야기할 수 있고.. 2023. 6. 20.
조조(曹操)의 종묘에 배향(配享)된 26명의 위나라 개국공신은...? 글: 심멱역사적인적(尋覓歷史的印迹) 위나라의 기반을 닦은 인물인 조조는 삼국시대 가장 걸출한 영웅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의 휘하에는 정상급의 문신무장들이 운집해 있었다. 조조는 죽은 후, 위나라의 종묘에 모셔진다. 위나라의 개국공신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위명제 조예(曹叡)때부터 시작하여, 일부분 사망한 공신을 조조의 종묘에 배향하기 시작한다. 사서기록에 따르면, 모두 26명의 위나라공신들이 조조의 종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은 이 26명의 조조종묘의 개국공신들은 5차례로 나누어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배향된 시기는 서로 다르다. 모사 곽가(郭嘉)는 제일 늦었다. 그렇다면, 이 26명의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들은 각각 누구였을까? 제1차: 3명(하후돈, 조인, .. 2023. 2. 27.
조조(曹操) 신세내력의 수수께끼 글: 일인적역사(一人的歷史) 조조의 신세내력은 천년이래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이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들어 과학자들이 현대과학을 이용하여 천년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이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조조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왜 논쟁이 있는가?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 조등(曹騰)부터 얘기해야 한다. 조등은 동한(東漢)시기의 환관이다. 비록 권력이 대단했지만, 자손은 없었다. 그래서 양자를 한명 들이는데 바로 조숭(曹嵩)이고, 조조의 부친이다. 조숭의 신세내력에 대하여는 대체로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진수(陳壽)의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막능심기생출본말(莫能審其生出本末)". 즉 이미 고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배송지(裴松之)가 에서 인용한 글이다: "조숭은 원래 하후가(夏.. 2023. 1. 26.
조조(曹操)의 죽마고우 4명의 운명은...?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어렸을 때 친구들간의 우의는 어떤 때는 친형제자매간의 감정에 못지 않다. 고대에, 죽마고우는 일반적으로 부친들도 서로 알고 지내고, 어려서부터 함께 놀면서 자랐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가 되었다. 그중 필자가 오늘 얘기하려는 사람은 조조이다. 그에게는 4명의 죽마고우가 있었는데, 모두 동한말기의 역사인물들이고, 출신, 능력이 비범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이들 4명의 운명은 각각 어떠했을까? 1. 채모(蔡瑁) 채모는 형주(荊州) 남군(南郡) 양양(襄陽)의 호족인 채씨집안 출신이다. 고모(姑母)가 동한의 태위(太尉)인 장온(張溫)의 처였다. 큰누나와 둘째누나는 각각 황승언(黃承彦, 제갈량의 장인)과 유표(劉表, 형주목)에게 시집을 간다. : "어려서 위무(魏武, 조조를 가리.. 2022. 11. 10.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조식의 곁에는 주로 3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의 정의(丁儀), 한명은 정이(丁廙)로 둘은 형제간이다; 그리고 또 한명은 총명하기 그지없는 양수(楊修)이다. 정씨형제의 부친은 정충(丁冲)으로, 패군(沛郡, 안휘성 회북시) 사람이다. 일찌감치 조조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정충은 조조가 한헌제 유협을 맞이하여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조조는 정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가 재능과 학문이 뛰어나다는 것은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하고, 조비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때 조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부친! 제 생각에 비록 남재여모(男才女貌), 즉 남자는 재주가 뛰어나야 하고, 여자.. 2021. 10. 20.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 211년 정월, 한헌제 유협이 조서를 내려, 조조의 세자 조비를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에 임명하고, 관속(官屬)을 둘 수 있게 해서, 승상 조조의 부수(副手)로서의 역할을 하게 한다. 부승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일을 통하여, 필자는 이전에 판단한 바 있다. 조조는 이미 조비를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다) ​ 부승상으로서, 개부(開府)도 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태자의 지위는 조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식이 급속히 부상하여, 조비에게 큰 위협이 된다. 사서에 따르면 조조는 성격이 기민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재능이 특출났고, 민첩하며 지혜가 많아, 조조가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 우리는 여기서 조식의 재능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 당시.. 2021.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