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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139

대청(大淸): "기실 청일전쟁에서 승리했다." 글: 흑조음(黑噪音)​제목만 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말씀드리면,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려는 것이 아니라, 대청의 조정에서 국내에 선전할 때 확실히 청일전쟁(중국에서는 甲午戰爭이라 함)에 승리했고, 일본에 이겼다.​만일 1894년에서 1895년에 살았던 중국인이고, 또한 청일전쟁에 관심이 있었다면, 당신은 분명히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할 확률은 99.9%라고 여겼을 것이다.​왜냐하면 당신이 보고 들을 수있는 관방매체와 선전에서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정부는 일본에 참패했고, 근대중국에서 처음으로 진정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이며, 청나라조정이 붕괴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어쨌든 서양열강에게 패배한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전의 제자였던 동쪽이웃나라 .. 2025. 1. 20.
아편전쟁: 군사상의 무능, 도덕상의 무치 글: 최애역사(最愛歷史)​한쪽은 강경한 태도의 청나라 흠차대신(欽差大臣)이고, 다른 한쪽은 절대로 타협이 없는 영국의 주중상무감독이다. 이들은 "교흉(交凶, 흉수를 내놓는 것)"과 "구결(具結, 책임을 인정하는 서면)"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있었다. 이는 1839년 중국-영국관계의 주요 내용이다.​찰스 엘리엇(Charles Elliot, 1801-1875)의 고집을 임칙서(林則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광동순무(廣東巡撫)와 이 일에 대해 언급할 때, 임칙서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의혹을 얘기한다: "엘리엇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출로가 없는데, 왜 마음을 돌리지 않는 것일까?" 임칙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영이(英夷)"두목은 왜 이 두 가지 '천경지의(天經地義)'한 일에 대하여 .. 2024. 12. 23.
잊혀진 전쟁: 청일전쟁의 육상전투(2) 글: 팽배신문(澎湃新聞)​1894년 봄, 조선에 대규모 농민반란이 일어난다. 조선왕조는 이를 진압할 힘이 없어, 중국주조선특사 원세개(袁世凱)의 적극적인 주장에 힘입어 조선왕조는 6월 3일 청정부에 구원병을 청한다. 6월 4일 광서제는 북양대신 이홍장에게 육군을 조선에 보내어 난을 평정하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청일전쟁의 육상전투의 역사는 여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조선파병명령을 받은 후, 이홍장은 휘하의 야전부대에서 선발한다. 그가 선발한 부대를 보면, 주로 근대화정도가 높고, 군기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직예연군부대의 인원들이다. 그리고 직예제독 섭지초와 태원진총독 섭사성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한다. 그리고 윤선초상국에서 상선을 보내어 이들을 조선수도 한성의 남쪽에 있는 아산에 상륙시킨다. ​선두부대로.. 2024. 11. 12.
잊혀진 전쟁: 청일전쟁의 육상전투(1) 글: 팽배신문(澎湃新聞)​130년전에 발발한 청일전쟁은 근대중국의 운명에 중요하고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전쟁패배의 결말은 직접적으로 1840년이후 중국이 군사자강으로 국가자강을 추진한 양무모델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며, 새로운 자강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이는 이 오래된 전쟁이 군사자체를 뛰어넘는 역사적인 귀감의 의미를 지니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일전쟁에 대한 반성은 시간을 초월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끊임없는 과정에 맞추어 청일전쟁도 자주 새롭게 조명되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에서 폭넓은 주목을 받고, 토론하고 기념하고 있다. 자주 현실의 이슈에 대하여 청일전쟁을 꺼내어 귀감으로 삼곤 한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점이라면 역사상의 청일전쟁은 실제로.. 2024. 11. 12.
19세기 첫 10년: 중국해적의 황금십년(黃金十年) 글: 최애역사(最愛歷史)​건륭제는 자칭 중국의 태평성세를 창조하고 이어갔다. 그러나 그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자신의 아들, 태청제국의 황위계승자 애신각라 옹염(顒琰)(즉 가경제)를 화약통 위에 올려놓았다.​화약통에 앉아 있게 된 가경제는 사고가 빈발하는 제국에 대하여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심신이 지쳐갔다.​힘겹게 3년을 참고나서 마침내 거탐 화신(和珅)을 무너뜨린다;누가 알았겠는가, 사천,호북의 백련교(白蓮敎)의 난은 일촉즉발이 되어 청나라중기 최대의 내부전란이 된다.그동안, 자금성안에서는 기이한 암살사건이 발생하여,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다.나중에 또 한 무리의 천리교도(天理敎徒)가 태감의 내부호응하에 황궁으로 쳐들어와, '한당,송명에도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이뿐아니라, 제국의 변방 - 화남.. 2024. 11. 11.
청나라 병사: "병(兵), 정(丁), 졸(卒), 용(勇)"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글: 설정사기(雪亭史記)​청나라궁중드라마를 보면 아마도 이런 모습에 익숙할 것이다. 머리에 붉은색의 두립(斗笠)을 쓰고 변발을 기른 청나라병사들의 상의 중간에 둥근 원 안에 "병(兵)", 혹은 "정(丁)", 혹은 "졸(卒)", 혹은 "용(勇)"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마치 상품에 브랜드를 붙인 것처럼.​병사들의 복장에 왜 이런 글자를 써놓았을까? 병, 정, 졸, 용은 각각 무슨 뜻일까?​어떤 사람은 그건 간단하지 않냐고 말하지 않을까 모르겠다.​병과 졸은 장기의 소병과 소졸처럼 청나라의 가장 하급의 병종으로 선봉으로 적진으로 돌진하는 역할을 해서, 대포받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느냐고. 한 마디로 말해서 장교가 뒤에서 명령만 내리면 병과 졸은 적진으로 돌진다가 죽는 병사일 것이라고.​정과 용은 다르다. .. 2024.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