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오대십국)25 남당후주(南唐後主) 이욱(李煜): 문화상의 천재, 정치상의 바보 글: 최애역사(最愛歷史)975년 초겨울, 서현(徐鉉)은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당(南唐) 사신의 신분으로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의 앞에 섰다.이때는 남당의 도성 금릉(金陵)이 송군에 포위된지 10개월째였다.서현은 말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처음에 조광윤은 이욱이 봉조입조(奉詔入朝)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남당을 정벌할 때, 서현이 한번 온 적이 있다. 이 중원웅주의 앞에서도 서현은 전혀 기가 죽지 않고, 당당하게 논리를 펼쳤다:"이욱(李煜)은 죄가 없습니다. 폐하의 전쟁은 명분이 없습니다. 이욱은 땅과 같고, 폐하는 하늘과 같습니다. 이욱은 아들과 같고 폐하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하늘은 땅을 덮을 수 있고, 아버지도 아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그러자 조광윤이 웃으면서 한 마디 했.. 2024. 12. 24. 후익(侯益): 당, 오대, 송에 걸쳐 13명의 황제를 모신 인물... 글: 인문지광(人文之光)중국고대사에 난세는 많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난세에 희망과 서광이 보이지 않는 것일 것이다. 전형적인 사례는 서진(西晋)이 붕괴된 후의 3세기에 걸친 대난세이다. 오호난화(五胡亂華)에서 남북난세까지 삼백년가량의 기간동안 몇대의 사람들은 천하대란을 겪으면서 난세의 사람들은 전혀 평화롭게 살아갈 희망을 볼 수 없었다.오대십국(五代十國)의 동란정도는 오호난화를 훨씬 초월했다. 다만 다행히 오대십국의 동란은 겨우 50여년간 지속되었고, 북송에 의해 끝난다. 그렇다면, 당말에서 북송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오늘은 그 시기를 살았던 후익(侯益)에 관해 얘기해보기로 한다.1. 농가출신당희종(唐僖宗) 광계(光啓)원년(885년), 후익은 산서(山西)의 한 농민가정에서.. 2024. 12. 21. 곽위(郭威): 치정황제(痴情皇帝), 황위까지 처조카에게 물려주다. 글: 고금논사(古今論事)고대에 치정황제는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광무제 유수, 수문제 양견, 명태조 주원장등이 있다.그러나 이들 황제들도 한 사람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는 황후가 사망한 후 평생 다시 황후를 두지 않았을 뿐아니라, 더더구나 황위까지 황후의 조카에게 물려준다.그는 바로 북주(北周)의 개국황제 곽위(郭威)이다.곽위가 가장 낙담했을 때, 평생의 사랑 시씨(柴氏)를 만나다곽위는 오대십국의 난세에 태어난다. 그의 부친 곽간(郭簡)은 진왕(晋王) 이극용(李克用)의 휘하대장이고, 여러번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전공으로 순주자사(順州刺史)가 되어 순주(順州)에 주둔했다.나중에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유인공(劉仁恭)이 이극용을 공격했고, 곽간은 순주를 굳게 지키며, 유인공과 여러 .. 2024. 11. 26. 석중귀(石重貴): 오대(五代) 후진(後晋)의 마지막황제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북송 개보(開寶) 6년(973년) 삼월, 방주(房州)에서 정왕(鄭王) 시종훈(柴宗訓)이 병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시종훈은 후주(後周)의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비록 오대시기의 마지막 황제이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오대시기 황제는 아니었다. 요원한 북방에 일찌기 군림천하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974년에 병사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바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오대의 황제였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이고, 20여년간이나 포로로 지내야 했을까? 난세에 황제에 오르다. 그는 바로 후진의 마지막 황제인 석중귀이다. 석중귀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숙부인 석경당(石敬瑭)에 의해 길러진다. 소년시기에 석중귀는 말이 적고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며, 질박하고 순후했다. 그.. 2024. 2. 20. 경상(敬翔):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 제일모사(第一謀士) 글: 진령일백(秦嶺一白) 석일악착부족과(昔日齷齪不足夸) 옛날 힘들게 살 때의 일이야 자랑할 것도 없다 금조방탕사무애(今朝放蕩思無涯) 이제 성공했으니 마음대로 즐기면서 살아야 겠다 춘풍득의마제질(春風得意馬蹄疾) 봄바람에 기분도 좋으니 말을 달려서 일일간진장안화(一日看盡長安花) 하룻만에 장안에서 볼만한 것은 다 둘러보았다. 맹교(孟郊)는 두번이나 과거에 실패하고 46세에 비로소 합격하여 당나라의 진사가 된다. 이 고독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던 서생은 말을 타고 장안가 거리로 나가 아가씨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낙방한 서생들은 기운이 빠져 성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힘들게 십여년간 공부를 했지만, 그들은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서 애석하다는 말고 조롱을 받아야 할 처지인 것이다. 사람의 도리는 손.. 2021. 4. 5.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 동모이부(同母異父)의 두 황제 글: 왕평객(王平客) 동부이모(同父異母)의 군왕은 역사상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왕은 왕왕 여러 후궁을 거느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자도 아주 많다. 만일 동모이부의 군왕을 찾으려 한다면, 역사상 보기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아주 혼란스러웠던 오대십국시대에 바로 그런 두 군왕이 있다. 오대십국때의 북한(北漢)은 바로 십국 중 하나이다. 도성은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에 있었다. 북한의 개국황제는 유숭(劉崇)이다. 유숭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사서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서는 그냥 유씨(劉氏)라 칭하기로 하자. 유씨는 먼저 호성영(護聖營)의 병사인 설쇠(薛釗)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하나 낳는다. 이름은 설계은(薛繼恩)이다. 설쇠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서, 유숭도 그를 중용하지 않는다.. 2021. 3. 16.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