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9359

역양성(櫟陽城): 34년간 진(秦)의 도성(都城), 진나라의 진정한 역습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글: 문사군(文史君) 2020년 2월, 시안시문물국(西安市文物局)은 얜량구(閻良區) 진한(秦漢) 역양성(櫟陽城) 유적지의 최신 고고학적 성과를 발표했다. 고고학자는 3호고성북부구역에서 최초로 완전하게 전국시대중기 진나라 궁성(宮城)의 후궁생활구를 발굴했고, 욕실, 벽난로, 부뚜막등 여러 시설유적을 발견했다. 2년후에 추가발굴에서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2,400년전의 수세식 화장실유적도 발견한다. 이천년간 잠들어 있던 이 진나라 도성은 이렇게 다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이 성의 이름은 역양(櫟陽)이다. 진나라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이곳은 단지 34년간 도성으로 있었다. 진헌공(秦獻公) 2년(기원전383년)부터 진효공(秦孝公) 12년(기원전350년)까지. 34년이 길다고 볼 수 있을까, 짧다고 볼 .. 2026. 8. 7.
한말삼대신의(漢末三大神醫) 글: 사해구구(史海鉤勾)​동한(東漢) 말기, 천하는 대혼란에 빠졌다. 황건적의 난, 동탁의 입경, 군웅축록, 중원대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리고 이 피와 불이 교차하는 대지 위에서, 3명의 도검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또 다른 일종의 방식으로 역사를 써내려갔다. 한 사람은 세계 최초의 마취약을 발명하여, 사람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했으며, 또 한 사람은 중의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전을 썼고, 후세에 "의성(醫聖)"으로 존중받는다. 나머지 한 사람은 병을 치료해주면서 돈을 받지 않았고, 환자들로 하여금 살구나무(杏樹)를 심게 했고, 그 결과 10만주의 행림(杏林)이 조성된다.​조조(曹操), 유비(劉備), 손권(孫權)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다투었는데, 그들 세 사람은 병상 앞에 서서 사람의 목숨을 .. 2026. 8. 6.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 그는 정말 운좋게 황제에 오른 것일까? 글: 고사한독찰기(古史閑讀札記)​한문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일련의 "치명적 의외"와 "치명적 선택"이 겹친 결과인 것일까?​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황제가 될 것으로 예정된 하늘이 선택한 아들이 아니었다. 반대로, 태어났을 때, 그의 부친조차 기본적으로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나중에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그의 부친의 큰부인이 그의 형제들을 거의 다 죽여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죽고 난 뒤 조정에서 명부를 들춰보니, 유방의 아들은 겨우 2명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유항(劉恒)이 조금 더 나이가 많았다. 그리하여 황위는 그에게 떨어지게 된 것이다.​겉으로 보면, 그저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다른 아들이 모두 죽고, 자신만 남았다.. 2026. 8. 6.
명효종(明孝宗) 주우탱(朱友樘):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하고 전무후무한 기적 글: 문기군(文紀君)​1475년의 겨울, 대명제국의 최고권력중심에 이름조차 없는 아이가 한명 숨겨져 있었다. 그는 햇볕도 들지 않는 구석진 방안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궁녀들이 남겨서 가져다준 만두를 먹고, 태감들이 목소리를 낮춰 하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일단 그가 발견된다면, 그 아이는 물론 그들도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한명 또 한명, 마치 릴레이를 하는 것처럼 꼬박 6년간 먹을 것을 보내주었다.​6년이 지난 후, 이 아이는 암실에서 걸어나오고, 대명황실의 황태자에 오른다. 다시 18년이 흐른 후, 그는 용상에 앉아 명나라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황제중 한명이 된다: 명효종 주우탱.​그렇다면 그를 길러주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 2026. 8. 4.
왕승은(王承恩): 명십삼릉(明十三陵)에 묻힌 유일한 환관 글: 문기군(文紀君)​명십삼릉은 13명 명나라황제가 잠든 곳이며, 황후조차도 줄을 서야 들어가 묻힐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이 황제의 능 옆에 한 환관이 당당하게 묻혀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이 일을 처리한 사람이 명나라황제가 아니라, 청나라의 순치제(順治帝)라는 것이다.​그후 강희제(康熙帝)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이 환관을 위해 묘를 새로 단장하고, 비석을 세웠으며, 직접 그를 칭찬하는 글까지 새겨서 남겼다는 것이다. 명나라의 환관이 청나라 두 황제로부터 높이 평가받는다. 이런 대우는 당시 여하한 한족대신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고,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는 후세에 "명나라 최후의 충신"이라고 불린다. 그의 이름은 왕승은(王承恩)이다.​그의 전반생은 '궁중투쟁환관'들과 반.. 2026. 8. 4.
중국역사의 1,500년 공백기, 아무런 사료기재도 없는데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글: 촉산사도(蜀山史道)​우리는 항상 "중화상하오천년(中華上下五千年)"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사서를 펼쳐보면 하나의 괴이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명확하게 문자로 남겨진 역사는 기실 단지 3,500년가량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1,500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이 시기는 당시의 문자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후세의 기록은 대부분 전설이나 추억이고, 역사는 모호하고 불분명하여, 상고사의 "공백기(空白期)"라고 할 수 있다.​삼황오제(三皇五帝), 대우치수(大禹治水)등 이야기는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난다. 많은 내용은 신화가 섞여 들어가 있고, 오랜 기간동안 논쟁이 있어왔다.​이 모호한 천년세월은 황무지가 아니다.오히려 화하부락이 융합을 향해 가면서, 초기왕조의 맹아가 나타난 관건시기이다.. 2026.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