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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왕조가 존재했다면, 왜 갑골문(甲骨文)에 단 한글자도 나타나지 않을까? 글: 냉포역사(冷炮歷史)​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시리즈입니다. 오늘은 계속하여 아시아의 일을 얘기해보겠습니다. 3천년전의 갑골문(甲骨文)은 상(商)나라의 제사, 전쟁과 점복(占卜)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사서(史書)상 "화하제일조(華夏第一朝)"라는 하왕조에 대하여는 단 한 글자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건 역사의 우연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숨겨진 사정이 있는 것일까?​중국이라는 이 땅의 최초역사를 얘기하자면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북경원인(北京猿人)"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외에 아마도 섬서(陝西)의 남전원인(藍田猿人), 운남(雲南)의 원매원인(元煤猿人)등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경원인이건, 남전원인이건, 원매원인이건 그들은 모두 호모 에렉투스에 속하지, 우.. 2026. 9. 12.
현무문사변전 "이세민(李世民)"이 가진 11개 직함은 어떤 권한을 가졌을까? 글: 역사영시소미제(歷史影視小迷弟)​618년 이연(李淵)이 당나라를 건립한 때로부터 626년 현무문사변(玄武門之變)까지, 이세민은 짧은 8년간 남정북전(南征北戰)하면서, 11개의 직함을 받게 된다. 이들 직함에는 작위(爵位)도 있고, 훈위(勛位)도 있고, 관직(官職)도 있다. 이것들이 합쳐져서 그는 수중이 지고무상의 권력을 갖게 되고, 현무문사변을 일으킬 배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직함들은 도대체 어떤 것들이며,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었을까?​진왕(秦王)​진왕은 이세민의 작위이다. 무덕원년(618년) 이연이 장안을 차지하고 황제에 올라 당나라를 건립한 후, 장남 이건성(李建成)을 태자(太子)에 봉하고, 차남 이세민을 진왕, 4남 이원길(李元吉)을 제왕(齊王)에 봉한다. 이때의 진왕은 그.. 2026. 9. 12.
일본인 200만이 동북(만주)으로 이주했는데, 왜 중국에 '일본족'은 존재하지 않을까? 글: 묵책설사(墨策說史)​1945년 8월, 일본이 무조건항복한다. 동북의 156만 일본교민은 하룻밤만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군인도 좋고, 이민자도 좋고, 상인도 좋다. 모조리 그달이 14년간 살고 있던 그 땅위에 버려진 것이다. ​일본인들은 14년동안 이민도 오고, 학교도 만들어, 이 땅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1945년 무조건항복을 했고, 지금 동북에는 "일본족"이 없다.​일본의 이민계획은 매우 거창햏다.​1936년 5월, 일본 히로다(廣田)내각은 "만주로 농업이민 백만호를 이주시킨다"는 것을 국책중 하나로 정한다. 계획에 따르면 20년내에, "일본에서 동북으로 100만호, 500만명을 이민보내고, 동북을 "대화민족(大和民族)"이 핵심으로 하는 인구구조로 만들.. 2026. 9. 10.
<영락대전(永樂大典)> 은 어디로 갔을까? 글: 오칠열독(五七悅讀)​프랑스에서 경매로 나온 2책(冊)이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금년6월 정식으로 항주국가판본관(杭州國家板本館)이 소장되었다. 이 일은 모두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언뜻 듣기에 좋은 소식이다. 그렇지 않은가?​다만, 같은 뉴스에 이런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2026년 8월까지, 맟책(冊)이 넘는 정본(正本)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고, 부본(副本)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2책이 돌아왔지만, 만책이 넘게 실종명단에 올라 있다. 여기에서는 이미 돌아온 2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실종명단을 가지고 얘기해보기로 한다.​얼마나 방대한 책인가?​1403년, 대명(大明)의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는 "포람천하서(抱攬天下書)"의 대전(大典)을 편찬하라고 명령했다. 전후로 2,000.. 2026. 9. 7.
중국고대 "친왕(親王)"의 "봉호(封號)"는 어떻게 지었을까? 글: 사해구구(史海鉤勾)​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왜 당나라이전의 왕야(王爺)는 모두 "진왕(秦王)", "진왕(晋王)", "제왕(齊王)"같은 지명으로 불렸는지, 그리고 청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공친왕(恭親王)", "예친왕(禮親王)", "예친왕(睿親王)"같은 길상어로 바뀌었는지.​이세민(李世民)은 황제가 되기 전에 "진왕(秦王)"이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일찌감치 멸망했는데,왜 "진왕"이라고 봉했을까? 사마소(司馬昭)는 황위를 찬탈하기 전에 "진왕(晋王)"이었다.그러나 진(晋)의 땅과 그가 무슨 관계있단 말인가? 청나라에 이르러, 서태후의 호적수는 "공친왕혁흔(恭親王奕訢)"이다. 광서제(光緖帝)의 부친은 "순친왕혁현(醇親王奕譞)"이다. 이런 "공(恭)", "순(醇)"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말일까.. 2026. 9. 7.
주원장(朱元璋)은 왜 남옥(藍玉)을 죽여야 했을까? 글: 효함사화(崤函史話)​대명 홍무26년서기 1393년 이월 초팔일, 남경성(南京城)에는 큰 눈이 휘날렸다.금의위지휘사(錦衣衛指揮使)는 오문(午門) 앞에서 두 손으로 밀주(密奏)를 하나 들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때문이 아니라, 흥분때문이었다.그가 고발하는 대상은 대명개국제일명장 양국공(凉國公) 남옥(藍玉)이었다.이 밀주에는 천하를 뒤흔들 글자가 숨겨져 있었다: 모반(謀反)그리고 이때의 주원장은 무영전(武英殿) 내에서 벽에 걸린 대명강역도(大明疆域圖)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동북에서 운남까지 하서에서 연해까지, 강산의 절반은 남옥이 사워서 얻어낸 것이다.그의 눈길은 "포어아해(捕魚兒海)"라는 글자에 놓였다. 그것은 남옥의 가장 빛나는 전투가 열린 곳이다. 10만의 북원(北元) 잔여부대가 하룻.. 2026.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