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서태후)38

누가 서태후로 하여금 서방열강에 선전포고하게 하였는가? 글: 후유(煦濡) 1900년 6월 21일, 서태후는 광서제의 명의로 각국에 선전포고하는 조서를 내린다. 서태후는 서방열강의 여러가지 죄행을 나열했다. "삼십년동안, 우리나라가 인자하고 후덕하게 다독거리는 것을 빌미로 그들은 갈수록 발호하며 우리나라를 핍박하며, 우리의 토지를 침범하고, 우리의 인민을 유린하고, 우리의 재물을 강탈해갔다." "그들은 스스로 교화지국이라고 하면서 예의없이 횡행하고 병력과 무기의 날카로움을 믿고 이렇게까지 했다." 서태후는 이렇게 분노를 표시한 후, 마지막에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선전구호를 내놓는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만고에 수치를 남기기보다 들고 일어나 자웅을 겨뤄보아야 한다!" 이 선전포고를 전환점으로 하여, 청정부는 정식으로 서방열강과 갈라지고, 중국과 서방열강의 전.. 2021. 6. 22.
팔국연합군이 북경성으로 쳐들어올 때, 서태후는 왜 서안으로 도망쳤을까? 글: 장금(張嶔) "중국인들은 수도를 점령당하는 치욕과 함께 20세기를 맞이했다"고 말하는 '경자국난(庚子國難)'때 서태후가 서안(西安)으로 도망친 것에 대하여 많은 역사애호가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안으로 도망쳐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서태후의 이번 소위 "서수(西狩)"는 시기가 맞지 않았다. 첫째는 서북대지는 사상유례없는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서태후가 "서수"하는 과정에서 지나간 산서(山西)는 '경자국난'전에 이미 여러 해동안 가뭄으로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밭이 메말랐고' '보리싹이 시들었다' 산서의 전체 35개 주현(州縣)은 재해를 당해 있었다. 그리고 서태후가 '도망쳐 숨은' 서안은 어떠했을까? 섬서는 재해를 당한 주현이 더욱 많아서 60여곳에 .. 2020. 12. 15.
서태후의 3명의 보디가드(保鏢) : 한명한명이 곽원갑보다 강했다. 글: 소철(小哲) 서태후는 죽기를 겁냈던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안전을 아주 중시한다. 출행때는 항상 많은 수행원들이 따라다녔고, 그 중에는 무공이 고강한 보디가드가 있었다. 오늘은 서태후이 삼대보표에 대하여 얘기해 보기로 한다. 1. 궁보전(宮寶田)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2020. 3. 4.
서태후는 11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는가? 글: 호기와굴조(好奇搲掘組) 오랫동안 이런 견해가 떠돌았다. 서태후는 1900년 분개하여 11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이다: 즉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의 11개국이다. 문헌자료를 보면, 서태후가 11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2019.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