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부의) 17

부의(溥儀)가 자금성(紫金城)에서 쫓겨날 때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을까?

글: 국가인문역사(國家人文歷史)​1924년, 마지막 황제 부의는 풍옥상(馮玉祥)에 의해 자금성에서 쫓겨난다; 1945년, 부의는 심양공항 대기실에서 일본으로 도망치려다가 소련홍군 낙하산병에 체포된다. 이 21년동안, 궁을 나간 부의는 먼저 북경에서 천진으로 이사하고, 다시 천진에서 동북으로 도망쳤다. 비록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복잡한 일을 겪었지만, 생활수준은 상당히 높았다.​천진에 있을 때 부의의 하루는 이러했다: ​팔월초닷새, 아침 일곱시에 기상하여, 세수를 마치고, 초병염(肖丙炎)이 진맥을 하다. 여덟시, 정효서(鄭孝胥)가 을 강의하다. 아홉시, 정원을 산보하고 강유위(康有爲)를 접견했다....나는 과일과 차점(茶點, 차를 마실 때 먹는 간식)을 먹었다.....나는 정원에서 자전거를 타며 운동..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죽음

글: 서민(徐敏) 1959년 12월 특사를 받은 마지막 황제 부의는 보통사람의 생활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먼저 다섯째 여동생의 집에 반달간 머물다가 숭문문(崇文門) 안의 정부가 안배해준 한 여관(旅館)에서 지냈다. 다음 해 봄에 민정국은 그에게 소개장을 한장 써주고 그를 식물원(植物園)에서 근무하게 해준다. 식물원에서 1년간 일을 한 후, 다시 전국정협 문사자료연구위원회에서 근무한다. 월급여는 100위안이었다. 생활이 안정된 후, 부의는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싶어한다. 사람의 소개를 받아 간호사인 이숙현(李淑賢)과 부부가 되어 몇년간 편안하게 지낸다. 나중에 소변에 피가 묻어나왔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요독증(尿毒症)이 된다. 1967년 10월 4일 오전, 이숙현은 부의와 함께 협화의원으로 검사를 받..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 허수아비황제의 비참했던 동년시절

글: 지역사(知歷史) 나라의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여유시간도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이런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은 우리 세대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젊은이들은 인터넷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고대인의 생활을 선망하기도 한다. 고대로 타임슬립해서, 지금 배운 학식을 가지고 고대에서 큰 뜻을 펼쳤으면 하는 것이다. 기실 우리도 고대영화드라마에 조금 속았다. 고대인의 생활은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등급이 삼엄한 봉건통치사회하에서 사람의 생활은 비교적 힘들었다. 잘 살았던 것은 단지 일부 왕공귀족의 통치계급이었고, 평민백성의 생활은 힘들었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고대로 타임슬립하여 왕자, 공주가 되었으면 한다. 심지..

사진자료: 마지막 황제 부의가 자금성에서 쫓겨나는 장면

글: 왕남방(王南方) 1924년 11월 5일 오전,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부의(溥儀)가 양심전(養心殿)에서 자다가 태감이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태감은 그에게 풍옥상(馮玉祥)이 사람을 보내어 궁에서 나가라고 명령했으며, 청나라황실의 인원 전부는 3시간내에 자금성을 떠나라고 했다는 것..

누가 부의(溥儀)를 자금성에서 쫓아냈는가?

글: 풍학영(馮學榮) 중국근대사 애호가라면 아마도 1924년 풍옥상(馮玉祥)이 부의를 자금성에서 쫓아낸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더욱 깊은 내막이 숨어 있다. 우리는 먼저 풍옥상 자신이 어떻게 얘기하는지 들어보자: "나는 국민군을 이끌고 북경정변을 일으켰다. ..

부의(溥儀)가 소련홍군에 체포된 경위

글: 강풍(江風) 1945년 8월 9일 저녁, 소련군이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중국동북(만주)지역으로 진군하였다. 일본수상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郞)는 최고군사위원회에서 이렇게 선포한다: "오늘 아침 소련의 참전으로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이제 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바로 이때, 중국동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