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송휘종) 9

송휘종(宋徽宗)은 금나라에 잡혀간 후 어디에서 살았을까?

글: 역사대작전(歷史大作戰) 중국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정강지변(靖康之變)"을 알고 있다. 금나라가 송휘종, 송흠종(宋欽宗)을 끌고가서 가두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송휘종은 어디로 끌려가서 살았던 것일까? 송휘종이 만일 황제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주 우수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금기서화에 모두 능했다. 특히 서예가 뛰어나 수금체(瘦金體)를 남겼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황제로서는 좋은 황제가 아니었다. 그의 일생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에는 아주 성실했고, 수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양산박의 농민반란을 처리하면서 정치적 지혜를 발휘한다. 그는 초안(招安) 정책을 써서, 송강등이 조정을 위해 일하도록 함으로써 농민반란군을 와해시킨다. 다만, 송휘종의 ..

송휘종(宋徽宗) 조길(趙佶): 어떻게 나쁜 아이로 성장했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삼세간소(三歲看小), 칠세간로(七歲看老). 세살을 보면 소년시절을 알 수있고, 일곱 살을 보면 노년시절을 알 수 있다. 그 말은 한 사람의 동년에서 그가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계심리학의 각도..

송휘종: 금나라에 포로로 잡힌 이후에도 6남 8녀를 낳다.

글: 승모헌(升玥軒) 송휘종 조길(趙佶)은 일생동안 두 가지가 많았다: 하나는 재주가 많았고, 다른 하나는 자녀가 많았다. 예술분야에서, 음시작부(吟詩作賦)이건, 전사작곡(塡詞作曲)이근 아니면 필묵단청(筆墨丹靑, 서예와 회화)이건, 국장경기(鞠場競技, 축국)이건 송휘종은 모두 일..

상해박물관 송휘종 <천자문(千字文)>의 진위

글: 배광휘(裴光輝) 일전에 송휘종 조길(趙佶)의 수금체(瘦金體) &lt;천자문(千字文)&gt;의 서예작품이 선전(深&#22323;)의 모 경매회사에서 1.4억위안의 고가로 낙찰되었다. 이 일이 일어나자, 업계는 난리가 난다. 상해박물관 서화부의 주임 샨궈린(單國霖)은 개자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