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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258

촉한(蜀汉) 후기에 인재가 없게 된 근본 이유는...? 글: 역사대작회(历史大炸烩) 촉중무대장(蜀中无大将) 요화충선봉(廖化充先锋) 촉은 왜 후기에 인재가 결핍되었을까? 촉은 삼국정립시기 비교적 특수한 정권이었다. 유비는 당시 18로제후들 중에서 명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고, 어떻게 보더라도 조역이었으며, 언제든지 원소나 황건적에게 소멸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똑똑해지고, 살아남은 자가 왕이 되는 법이다. 손권, 조조등 세력이 강력한 자들을 모두 제거한 후, 귀퉁이에서 발전하고 있던 유비도 마침내 세력을 이루게 된다. 촉한의 굴기는 유비가 남의 것을 훔쳐서 이룬 것이다. 동시에 유비는 스스로 유황숙으로 칭하면서, 한나라가 멸망한 이후 유일한 정통혈맥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인재들이 그에게 의탁하게 되었.. 2024. 1. 2.
적벽대전: 조조가 패배한 원인은 화공이 아니다?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 역사상 적벽대전은 한말 삼분천하의 정치국면을 결정한 중대사건이다. 의 가공을 거쳐, 특히 설전군유(舌戰群儒), 초선차전(草船借箭), 차동풍(借東風), 장간도서(蔣幹盜書), 주유타황개(周遊打黃蓋), 화소적벽(火燒赤壁)등의 이야기로손류연합군이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한 민간기억을 채워놓았다. 그렇다면, 위, 촉, 오 삼국정립 국면을 확립시킨 적벽대전에서 결정적인 승패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중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정말 손류연합군이 동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조조의 군대가 패배하게 된 것일까?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에 대하여, 최근 들어, 여러 연구자들이 삼국연의의 사고범위를 넘어, 역사로 되돌아가 더.. 2023. 8. 14.
진실한 조조(曹操)를 찾아서... 글: 이자제(李子霽) 는 명나라때 세상에 나타난 이래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 안에는 지혜, 용맹, 충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풍류인물에 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설전군유(舌戰群儒)"에서 "칠금맹획(七擒孟獲)", "화소적벽(火燒赤壁)"에서 "화소연영(火燒連營)"까지,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에서 "주마천제갈(走馬薦諸葛)"까지, "맹덕헌보도(孟德獻寶刀)"에서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까지.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1994년 TV드라마 가 방영된 이래, 다시 한번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고, 중국인들에게 다시 "삼국"에 대한 미련(迷戀)을 환기시켰다. 이는 전체 중국문화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오늘날 함께 "삼국"을 이야기할 수 있고.. 2023. 6. 20.
"관도대전(官渡大戰)"에 대한 의문점 글: 이경서(李慶西) 에는 관도대전을 쓰면서, 관우(關羽)가 조조(曹操)의 백마(白馬)에서의 포위당한 상황을 풀어준 것부터 시작한다. 그 일은 제25회 후반부에 쓰여 있다. 원소(袁紹)는 대장 안량(顔良)을 보내 여양(黎陽)에서 황하를 건너게 했고, 안량은 황하남안의 백마에서 유연(劉延)을 증원하러 가던 조조의 군대와 부닥친다. 안량은 송헌(宋憲), 위속(魏續) 두 장수를 연이어 참하고, 무예가 뛰어난 서황(徐晃)마저 물리친다. 그리하여 조조군영의 여러 장수들은 전율하게 된다. 이때 정욱(程昱)이 나서서 추천하여 관우가 출전한다. 책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조가 산 아래 안량이 배치한 진세를 가리키며, 기치가 선명하고 칼과 창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엄정하고 위엄이 있어, 관우에게 말하기를, .. 2023. 6. 18.
조자룡의 장판파(長板坡)전투 전설들..... 글: 기사석금(記史惜今) 수백년동안, 삼국이야기는 역사에서 소설, 다시 민간이야기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당양(當陽)은 일찌기 삼국시대의 고전장(古戰場)으로서, 자연히 여러 민간이야기로 전해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 연의(演義, 소설)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현지 민중들의 상상력까지 보태지면서, 현지의 산 하나 물 하나, 풀 하나 나무 하나, 민속풍정까지 모두 신화같은 전설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그 파란만장한 역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고토(故土)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는 모두 해당 지방의 특색을 띄게 되었고,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미지는 적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정사기록인 의 이와 관련된 부분은 짧은 몇 마디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 2023. 4. 5.
유비치촉계시록(劉備治蜀啓示錄) 글: 현야(玄野) 유비(劉備)의 촉한(蜀漢)은 삼국난세에서 마지막으로 정족(鼎足)을 이룬 일족(一足)이다. 북으로 한중(漢中)을 취하고, 여러번 북벌(北伐)하였으며, 중국역대정통사회에서는 도통(道統)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실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유비가 한나라 황실종친이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여기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그의 신분은 비교적 덜 중요한 원인이고, 진정한 원인은 마땅히 유비가 인재를 아끼고, 인재를 보살피고, 인재를 잘 기용했다는데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당연히 조조(曹操)와 손권(孫權)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능력이 없었던 원술(袁術), 여포(呂布)같은 자들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방면의 능력이 약간 부족했던 원소(袁紹)도 결국 신속히 패망하는 최후를 피할.. 2023.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