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조조가 패배한 원인은 화공이 아니다?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 역사상 적벽대전은 한말 삼분천하의 정치국면을 결정한 중대사건이다. 의 가공을 거쳐, 특히 설전군유(舌戰群儒), 초선차전(草船借箭), 차동풍(借東風), 장간도서(蔣幹盜書), 주유타황개(周遊打黃蓋), 화소적벽(火燒赤壁)등의 이야기로손류연합군이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한 민간기억을 채워놓았다. 그렇다면, 위, 촉, 오 삼국정립 국면을 확립시킨 적벽대전에서 결정적인 승패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중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정말 손류연합군이 동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조조의 군대가 패배하게 된 것일까?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에 대하여, 최근 들어, 여러 연구자들이 삼국연의의 사고범위를 넘어, 역사로 되돌아가 더..
2023. 8. 14.
조자룡의 장판파(長板坡)전투 전설들.....
글: 기사석금(記史惜今) 수백년동안, 삼국이야기는 역사에서 소설, 다시 민간이야기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당양(當陽)은 일찌기 삼국시대의 고전장(古戰場)으로서, 자연히 여러 민간이야기로 전해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 연의(演義, 소설)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현지 민중들의 상상력까지 보태지면서, 현지의 산 하나 물 하나, 풀 하나 나무 하나, 민속풍정까지 모두 신화같은 전설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그 파란만장한 역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고토(故土)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는 모두 해당 지방의 특색을 띄게 되었고,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미지는 적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정사기록인 의 이와 관련된 부분은 짧은 몇 마디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
2023. 4. 5.
순욱(荀彧)의 죽음 배후의 진정한 원인은...?
글: 수호독서(繡虎讀書) 건안16년(211년) 십이월, 조조는 업성(鄴城)으로 회군하고, 하후연(夏侯淵)을 남겨 장안을 지키도록 한다. 212년 정월, 조조가 업성에 도착하고, 한헌제(漢獻帝)는 특별히 조조에게 "참배불명(參拜不名), 검리상전(劍履上殿)"(황제를 배알할 때 이름을 외치지 않아도 되고, 검을 차고 대전에 들어올 수 있음)"하도록 허락한다. 그후, 조조는 점차 한나라로부터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을 진행시킨다. 국공(國公)에 봉해지고 구석(九錫, 구석은 고대 제왕이 대신에게 내리는 9가지 상사물로서 차마, 의복, 악기, 무사, 궁시등이 있다. 이는 대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다)을 받는다. 서한에서 구석을 받은 자가 마지막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서한을 찬탈한 왕망을 말함)..
2023.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