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258

촉한(蜀汉) 후기에 인재가 없게 된 근본 이유는...?

글: 역사대작회(历史大炸烩) 촉중무대장(蜀中无大将) 요화충선봉(廖化充先锋) 촉은 왜 후기에 인재가 결핍되었을까? 촉은 삼국정립시기 비교적 특수한 정권이었다. 유비는 당시 18로제후들 중에서 명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고, 어떻게 보더라도 조역이었으며, 언제든지 원소나 황건적에게 소멸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똑똑해지고, 살아남은 자가 왕이 되는 법이다. 손권, 조조등 세력이 강력한 자들을 모두 제거한 후, 귀퉁이에서 발전하고 있던 유비도 마침내 세력을 이루게 된다. 촉한의 굴기는 유비가 남의 것을 훔쳐서 이룬 것이다. 동시에 유비는 스스로 유황숙으로 칭하면서, 한나라가 멸망한 이후 유일한 정통혈맥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인재들이 그에게 의탁하게 되었..

적벽대전: 조조가 패배한 원인은 화공이 아니다?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 역사상 적벽대전은 한말 삼분천하의 정치국면을 결정한 중대사건이다. 의 가공을 거쳐, 특히 설전군유(舌戰群儒), 초선차전(草船借箭), 차동풍(借東風), 장간도서(蔣幹盜書), 주유타황개(周遊打黃蓋), 화소적벽(火燒赤壁)등의 이야기로손류연합군이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한 민간기억을 채워놓았다. 그렇다면, 위, 촉, 오 삼국정립 국면을 확립시킨 적벽대전에서 결정적인 승패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중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정말 손류연합군이 동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조조의 군대가 패배하게 된 것일까?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에 대하여, 최근 들어, 여러 연구자들이 삼국연의의 사고범위를 넘어, 역사로 되돌아가 더..

진실한 조조(曹操)를 찾아서...

글: 이자제(李子霽) 는 명나라때 세상에 나타난 이래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 안에는 지혜, 용맹, 충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풍류인물에 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설전군유(舌戰群儒)"에서 "칠금맹획(七擒孟獲)", "화소적벽(火燒赤壁)"에서 "화소연영(火燒連營)"까지,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에서 "주마천제갈(走馬薦諸葛)"까지, "맹덕헌보도(孟德獻寶刀)"에서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까지.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1994년 TV드라마 가 방영된 이래, 다시 한번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고, 중국인들에게 다시 "삼국"에 대한 미련(迷戀)을 환기시켰다. 이는 전체 중국문화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오늘날 함께 "삼국"을 이야기할 수 있고..

"관도대전(官渡大戰)"에 대한 의문점

글: 이경서(李慶西) 에는 관도대전을 쓰면서, 관우(關羽)가 조조(曹操)의 백마(白馬)에서의 포위당한 상황을 풀어준 것부터 시작한다. 그 일은 제25회 후반부에 쓰여 있다. 원소(袁紹)는 대장 안량(顔良)을 보내 여양(黎陽)에서 황하를 건너게 했고, 안량은 황하남안의 백마에서 유연(劉延)을 증원하러 가던 조조의 군대와 부닥친다. 안량은 송헌(宋憲), 위속(魏續) 두 장수를 연이어 참하고, 무예가 뛰어난 서황(徐晃)마저 물리친다. 그리하여 조조군영의 여러 장수들은 전율하게 된다. 이때 정욱(程昱)이 나서서 추천하여 관우가 출전한다. 책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조가 산 아래 안량이 배치한 진세를 가리키며, 기치가 선명하고 칼과 창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엄정하고 위엄이 있어, 관우에게 말하기를, ..

조자룡의 장판파(長板坡)전투 전설들.....

글: 기사석금(記史惜今) 수백년동안, 삼국이야기는 역사에서 소설, 다시 민간이야기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당양(當陽)은 일찌기 삼국시대의 고전장(古戰場)으로서, 자연히 여러 민간이야기로 전해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 연의(演義, 소설)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현지 민중들의 상상력까지 보태지면서, 현지의 산 하나 물 하나, 풀 하나 나무 하나, 민속풍정까지 모두 신화같은 전설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그 파란만장한 역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고토(故土)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는 모두 해당 지방의 특색을 띄게 되었고,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미지는 적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정사기록인 의 이와 관련된 부분은 짧은 몇 마디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

유비치촉계시록(劉備治蜀啓示錄)

글: 현야(玄野) 유비(劉備)의 촉한(蜀漢)은 삼국난세에서 마지막으로 정족(鼎足)을 이룬 일족(一足)이다. 북으로 한중(漢中)을 취하고, 여러번 북벌(北伐)하였으며, 중국역대정통사회에서는 도통(道統)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실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유비가 한나라 황실종친이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여기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그의 신분은 비교적 덜 중요한 원인이고, 진정한 원인은 마땅히 유비가 인재를 아끼고, 인재를 보살피고, 인재를 잘 기용했다는데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당연히 조조(曹操)와 손권(孫權)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능력이 없었던 원술(袁術), 여포(呂布)같은 자들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방면의 능력이 약간 부족했던 원소(袁紹)도 결국 신속히 패망하는 최후를 피할..

조조(曹操)의 종묘에 배향(配享)된 26명의 위나라 개국공신은...?

글: 심멱역사적인적(尋覓歷史的印迹) 위나라의 기반을 닦은 인물인 조조는 삼국시대 가장 걸출한 영웅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의 휘하에는 정상급의 문신무장들이 운집해 있었다. 조조는 죽은 후, 위나라의 종묘에 모셔진다. 위나라의 개국공신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위명제 조예(曹叡)때부터 시작하여, 일부분 사망한 공신을 조조의 종묘에 배향하기 시작한다. 사서기록에 따르면, 모두 26명의 위나라공신들이 조조의 종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은 이 26명의 조조종묘의 개국공신들은 5차례로 나누어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배향된 시기는 서로 다르다. 모사 곽가(郭嘉)는 제일 늦었다. 그렇다면, 이 26명의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들은 각각 누구였을까? 제1차: 3명(하후돈, 조인, ..

영천순씨(潁川荀氏): 동한에서 남북조까지...

글: 소태양(小太陽) TV드라마 에서 왕징쏭(王勁松)이 연기한 순욱(荀彧)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지모가 뛰어나서, 조조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한황실에 충성하며 한나라의 이익을 보호했다. 순욱은 동한과 조위집단의 중요인물인데, 그의 뛰어난 개인적인 능력이외에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점은 그의 배후에 있는 가족세력, 즉 영천순씨(潁川荀氏)이다. 동한에서 시작하여 남조에 이르는 명문거족으로서 순씨가족의 역사는 많은 왕조들보다 길었다. 오늘은 영천순씨의 역사를 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순씨가족의 탄생 영천은 오늘날의 하남성(河南省)에 소재하고 있고, 낙양(洛陽)과 이웃하고 있는 중원의 복지(腹地)이고, 경제중심이 남방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은 교통요지였을 뿐아니라, 역대왕조의 정치와 문..

순욱(荀彧)의 죽음 배후의 진정한 원인은...?

글: 수호독서(繡虎讀書) 건안16년(211년) 십이월, 조조는 업성(鄴城)으로 회군하고, 하후연(夏侯淵)을 남겨 장안을 지키도록 한다. 212년 정월, 조조가 업성에 도착하고, 한헌제(漢獻帝)는 특별히 조조에게 "참배불명(參拜不名), 검리상전(劍履上殿)"(황제를 배알할 때 이름을 외치지 않아도 되고, 검을 차고 대전에 들어올 수 있음)"하도록 허락한다. 그후, 조조는 점차 한나라로부터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을 진행시킨다. 국공(國公)에 봉해지고 구석(九錫, 구석은 고대 제왕이 대신에게 내리는 9가지 상사물로서 차마, 의복, 악기, 무사, 궁시등이 있다. 이는 대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다)을 받는다. 서한에서 구석을 받은 자가 마지막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서한을 찬탈한 왕망을 말함)..

조조(曹操) 신세내력의 수수께끼

글: 일인적역사(一人的歷史) 조조의 신세내력은 천년이래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이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들어 과학자들이 현대과학을 이용하여 천년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이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조조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왜 논쟁이 있는가?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 조등(曹騰)부터 얘기해야 한다. 조등은 동한(東漢)시기의 환관이다. 비록 권력이 대단했지만, 자손은 없었다. 그래서 양자를 한명 들이는데 바로 조숭(曹嵩)이고, 조조의 부친이다. 조숭의 신세내력에 대하여는 대체로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진수(陳壽)의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막능심기생출본말(莫能審其生出本末)". 즉 이미 고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배송지(裴松之)가 에서 인용한 글이다: "조숭은 원래 하후가(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