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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50

동진(東晋): 극도로 궤이한 문벌정치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영가지란(永嘉之亂)으로 강복의 명문거족들이 속속 남쪽으로 이주한다. "오마도강(五馬渡江), 일마화룡(一馬化龍)". 사족(士族)의 지지를 얻어, 거의 아무런 실력이 없던 낭야왕(瑯琊王) 사마예(司馬睿)가 강남에 자리를 잡고 진(晋)나라의 국조(國祚)를 이어갈 수 있었다.​그러나, 운명의 모든 선물은 일찌감치 배후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 법이다. 이 말은 동진이 건립된 후 5년째 되는 해에 확인된다.​영창원년(322년), 왕돈(王敦)이 군대를 이끌고 장강을 내려와 석두성(石頭城)을 공격한다. 이미 진원제(晋元帝)가 된 사마예가 조직한 '양주노(揚州奴)'는 전혀 전투력이 없었고, 반군의 공격하게 바로 궤멸되어 흩어진다. 이름이 석두성인 건강(建康)은 마치 종이처럼 취약했고, 가볍게 반군.. 2024. 12. 3.
북위(北魏): 종실반란(宗室叛亂)이 가장 빈번했던 왕조... 글: 자귤(紫橘)​종실반란은 고대에 근절할 수 없었던 폐단이며, 역대왕조에서는 항상 종실반란이 있었다. 그러나 반란이 왕조내내 시종해서 발생한 것은 북위를 꼽을 수 있다. 북위종실은 도무제(道武帝)의 건국부터 효명제(孝明帝) 가 영태후(靈太后)에게 독살당할 때까지 129년간 존속하며 8명의 황제를 거쳤는데, 모두 합쳐서 20차례의 종실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빈도는 역대왕조에서 볼 수없을 정도였다.​건국때부터 반란이 일어나다.​종실반란은 북위의 병폐라 할 수 있다. 도무제 탁발규(拓跋珪)는 386년 4월에 북위를 건립한다. 건립때부터 종실반란의 고통을 겪게 된다. 386년 8월 탁발규의 숙부 탁발굴돌(拓跋窟咄)이 반란을 일으켜 탁발규와 국가통치권을 쟁탈한다. 탁발규의 근신 우항(于恒)도 굴돌과 결탁한다... 2024. 11. 2.
남제(南齊): 23년간 존속했으나, 자손은 거의 모두 죽임을 당했다. 글: 역사유비유희(歷史有悲有喜) 제고제(齊高帝) 소도성(蕭道成)이 임종하기 전에, 황위를 이어받을 장남 소색(蕭賾)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만일 유송(劉宋, 남조의 첫번째 왕조를 가리킴)이 골욕상잔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일족이 기회를 잡아 황위를 빼앗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깊이 새겨서 경계로 삼아야 한다!" 소도성은 그가 유송에게서 황위를 찬탈하여 남제를 세울 수 있었떤 것은 유송황실이 내분으로 서로를 죽이는 바람에 그가 기회를 잡을 수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전에, 남조송의 유씨종친은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 송효무제(宋孝武帝) 유준(劉駿)이 거병하여 황위를 빼앗은 후, 황제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종실을 대거 살육하는 서막을 연다. 유준의 동생인 상동왕(湘東王).. 2023. 6. 19.
우주대장군(宇宙大將軍) 후경(侯景)의 황제몽(皇帝夢) 글: 진량(陳良) 남북조시기는 중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남조(南朝)는 차례로 송(宋), 제(齊), 양(梁), 진(陳)으로 이어지고, 북조(北朝)는 차례로 북위(北魏), 동위(東魏)와 서위(西魏), 북제(北齊)와 북주(北周)이다. 이 시기는 이전의 동진(東晋),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을 포함하여, 왕조교체가 아주 빈번했고, 적지 않은 강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힘만 있으면 제왕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성두변환대왕기(城頭變幻大王旗)", "강산대유황제출(江山代有皇帝出), 각령풍소약간년(各領風騷若干年)"이었다. 진승(陳勝)이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말한 것처럼 특히 난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제몽을 꿈꾸었던가? 후경(侯景)이라는 사람은 그런 꿈을 꾸었을 뿐아니라 며칠간 황제를 지내기.. 2023. 6. 13.
남조(南朝) 송(宋): 10명의 황제중 7명이 피살당한 왕조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남조송(420-479)는 중국남북조시기 남조의 왕조로 정통왕조이며, 남조에서 존속기간이 가장 길고, 강역이 가장 넓었던 왕조이다. 모두 사세(四世)에 걸쳐 10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59년간 존속했다. 국군의 성이 유(劉)이므로, 조광윤(趙匡胤)이 건립한 조송(趙宋)과 구분하기 위하여, 유송(劉宋)이라고 부른다. 유송의 10명 황제중에서 7명이 피살당하고 겨우 3명만 선종(善終)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왕조 중에서 비교적 보기드문 경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 유유(劉裕) 유유는 남조송의 개국군주이다. 유유는 어려서 집안이 빈한했고, 나중에 북부군(北府軍)에 투신하여 장군이 된다. 그는 엄청난 전공으로 동진(東晋)의 대권을 장악하여 관직이 상국(相國), 양주목(揚州牧)에 이르.. 2022. 11. 21.
남조(南朝) 진(陳)의 4명 황제는 모두 선종(善終)했다. 글: 풍현일(馮玄一) 남북조시대를 얘기하자면 처음 받는 인상은 동탕불안(動蕩不安)하고 살륙이 무수히 벌어지고, 왕조교체가 빈번했으며 황제도 주마등처럼 계속 교체되었으며, 매번 왕조교체마다 혈우성풍이 불었고, 사방에서 살륙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건강(지금의 남경)에 도읍을 정했던 진왕조는 완전히 예외이다. 진왕조의 4명 황제는 모두 선종했다. 마지막황제인 진후주조차도 선종한다. 아래에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1. 진무제(陳武帝) 진패선(陳覇先) 진패선은 자가 흥국(興國)이다. 이름 자체가 패기넘친다.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뜻은 크게 품었다. 그는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군대에 들어가서 전공을 세워 양(梁)나라에서 자리를 잡는다. 양무제는 불교를 독실히 믿어, 후경(侯..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