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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52

유유(劉裕) vs 환현(桓玄): 역사상 최강의 반군, 4일만에 왕조 하나를 무너뜨리다. 글: 명장영웅양천년(名將英雄兩千年)​403년 십이월, 동진(東晋)의 권신(權臣) 환현(桓玄)은 동진 종실(宗室)의 실권자와 북부노장(北府老將)들을 제거한 후, 마침내 황위를 찬탈하고, "초(楚)"를 건립한다. 역사에서 "환초(桓楚)"라고 부르는 왕조이다. 그러나, 환초는 건립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북부의 소장파 장수인 유유(劉裕)가 북부의 총본산인 경구(京口)에서 이백여명의 동료를 규합하여, 204년 이월 이십팔일 거병하여 자사(刺史) 환수(桓修)를 죽이고, 신속히 경구와 광릉군부(廣陵軍府)를 점거한다. 그후에 다시 하룻만에 모두 1,700여명의 반군을 모집한 후, 200리 밖에 있는 경사(京師, 수도) 건강(建康, 지금의 남경)으로 진격한다. 이 1천여명의 용맹한 경구주민과 퇴역한 북부노병들은 파죽.. 2025. 1. 21.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중국역사상 최대 분열시기 글: 택설(宅說)​오호십육국은 중국역사상 대분열시기이다. 그렇다면, 오호십육국의 역사는 도대체 어느 시기에 발생했고, 오호십육국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오호십육국의 분열원인​오호십육국같은 대분열시기가 온 원인은 진(晋)에 있다. 삼국시대의 혼란을 겪은 후에는 다시 통일하였고, 백성들은 평화롭게 원기를 회복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동오(東吳)를 멸망시킨 후 서진(西晋)은 사치와 부패에 빠져들고,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암흑시대에 탐장왕법(貪贓枉法)하고 뇌물횡행(賂物橫行)했다. 이 당시의 외부국면은 대량의 유목민족이 중원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오호십육국을 불러온 기반이 된다.​다음으로, 사마염이 죽은 후, 사마충(司馬衷)이 즉위한다. 이때부터 궁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장 현저한 것은 .. 2025. 1. 8.
동진(東晋): 극도로 궤이한 문벌정치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영가지란(永嘉之亂)으로 강복의 명문거족들이 속속 남쪽으로 이주한다. "오마도강(五馬渡江), 일마화룡(一馬化龍)". 사족(士族)의 지지를 얻어, 거의 아무런 실력이 없던 낭야왕(瑯琊王) 사마예(司馬睿)가 강남에 자리를 잡고 진(晋)나라의 국조(國祚)를 이어갈 수 있었다.​그러나, 운명의 모든 선물은 일찌감치 배후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 법이다. 이 말은 동진이 건립된 후 5년째 되는 해에 확인된다.​영창원년(322년), 왕돈(王敦)이 군대를 이끌고 장강을 내려와 석두성(石頭城)을 공격한다. 이미 진원제(晋元帝)가 된 사마예가 조직한 '양주노(揚州奴)'는 전혀 전투력이 없었고, 반군의 공격하게 바로 궤멸되어 흩어진다. 이름이 석두성인 건강(建康)은 마치 종이처럼 취약했고, 가볍게 반군.. 2024. 12. 3.
북위(北魏): 종실반란(宗室叛亂)이 가장 빈번했던 왕조... 글: 자귤(紫橘)​종실반란은 고대에 근절할 수 없었던 폐단이며, 역대왕조에서는 항상 종실반란이 있었다. 그러나 반란이 왕조내내 시종해서 발생한 것은 북위를 꼽을 수 있다. 북위종실은 도무제(道武帝)의 건국부터 효명제(孝明帝) 가 영태후(靈太后)에게 독살당할 때까지 129년간 존속하며 8명의 황제를 거쳤는데, 모두 합쳐서 20차례의 종실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빈도는 역대왕조에서 볼 수없을 정도였다.​건국때부터 반란이 일어나다.​종실반란은 북위의 병폐라 할 수 있다. 도무제 탁발규(拓跋珪)는 386년 4월에 북위를 건립한다. 건립때부터 종실반란의 고통을 겪게 된다. 386년 8월 탁발규의 숙부 탁발굴돌(拓跋窟咄)이 반란을 일으켜 탁발규와 국가통치권을 쟁탈한다. 탁발규의 근신 우항(于恒)도 굴돌과 결탁한다... 2024. 11. 2.
남제(南齊): 23년간 존속했으나, 자손은 거의 모두 죽임을 당했다. 글: 역사유비유희(歷史有悲有喜) 제고제(齊高帝) 소도성(蕭道成)이 임종하기 전에, 황위를 이어받을 장남 소색(蕭賾)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만일 유송(劉宋, 남조의 첫번째 왕조를 가리킴)이 골욕상잔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일족이 기회를 잡아 황위를 빼앗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깊이 새겨서 경계로 삼아야 한다!" 소도성은 그가 유송에게서 황위를 찬탈하여 남제를 세울 수 있었떤 것은 유송황실이 내분으로 서로를 죽이는 바람에 그가 기회를 잡을 수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전에, 남조송의 유씨종친은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 송효무제(宋孝武帝) 유준(劉駿)이 거병하여 황위를 빼앗은 후, 황제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종실을 대거 살육하는 서막을 연다. 유준의 동생인 상동왕(湘東王).. 2023. 6. 19.
우주대장군(宇宙大將軍) 후경(侯景)의 황제몽(皇帝夢) 글: 진량(陳良) 남북조시기는 중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남조(南朝)는 차례로 송(宋), 제(齊), 양(梁), 진(陳)으로 이어지고, 북조(北朝)는 차례로 북위(北魏), 동위(東魏)와 서위(西魏), 북제(北齊)와 북주(北周)이다. 이 시기는 이전의 동진(東晋),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을 포함하여, 왕조교체가 아주 빈번했고, 적지 않은 강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힘만 있으면 제왕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성두변환대왕기(城頭變幻大王旗)", "강산대유황제출(江山代有皇帝出), 각령풍소약간년(各領風騷若干年)"이었다. 진승(陳勝)이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말한 것처럼 특히 난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제몽을 꿈꾸었던가? 후경(侯景)이라는 사람은 그런 꿈을 꾸었을 뿐아니라 며칠간 황제를 지내기.. 2023.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