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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왕후닝)3

왕후닝의 권세가 더욱 약화되었다 글: 악산(岳山) 베이다이허회의후, 20대의 인사배치를 놓고 힘겨루기가 펼쳐지고 있다. 중공의 '대뇌'로 불리는 중앙정책연구실에 인사변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왕후닝의 권세가 더욱 약화되었다는 신호로 보인다. 왕후닝의 제자가 중앙정책연구실을 떠났다. 8월 25일, 전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 겸 비서장 린샹리(林尙立)가 류웨이(劉偉)의 자리를 물려받아 중국인민대학 교장(부부장급), 당위부서기를 맡았다. 린샹리는 원래 부부장급이었으므로 동급으로 이동하면서 중앙정책연구실을 떠난 것이다. 린샹리에게는 주목을 끄는 신분이 있다. 그는 '삼대귀사(三代鬼師)'로 불리는 현임 중국정치국상위 왕후닝의 제자인 것이다. 린샹리는 1963년 11월 푸젠에서 태어났다. 그는 푸젠 민허우(閩侯)사람이다. 1988년 상하이 푸단대학 .. 2022. 8. 28.
왕후닝이 교체될 것이라는 6가지 신호 글: 왕우군(王友群) 현임 중공 정치국상위, 이데올로기 총책임자 왕후닝은 최근 몇년간 중공의 급격한 좌경화, 문혁회귀의 핵심인물이다. 여러가지 흔적을 보면, 왕후닝의 여러 조치는 인심을 얻지 못했고, 중공20대의 인사배치때 그의 지위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다. 왕후닝은 1995년 장쩌민, 쩡칭홍에 의해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베이징 중남해로 발탁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쩌민이 중공당수이고, 쩡칭홍은 중앙판공청 주임이다. 1995년부터 2021년까지 26년동안, 왕후닝은 3대의 중공당수(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을 모셨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후진타오는 중공당수를 10년간 맡았는데, 그는 단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장쩌민, 쩡칭홍이 결정했다. 그러므로, 199.. 2021. 6. 14.
왕후닝(王滬寧)의 실세(失勢) 글: 석산(石山) 최근 한동안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주목하지만, 베이징의 정치분위기는 조용한 가운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내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2022년의 중공20대의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극히 이상하고 상당히 민감하다. 6월 2일, 중국국무원 정부웹사이트에 보도가 한편 실렸다. 리커창이 국무원 '방관복회의(放管服會議., '방'은 지방분권, 시장진입문턱완화등을 가리키고, '관'은 공정한 감독과 공평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가리키며, '복'은 효율적인 서비스를 가리킨다 )'에서의 강화(講話)이다. 제목은 "시장주체는 경제사회발전의 중요한 역량이고, 인민은 진정한 영웅이다"이다. 제목뿐만이 아니라, 글의 시작부분과 끝부분에서 모두 특별히 '인민이 진정.. 2021.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