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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항우)24

중국의 비극, 항우의 실패를 비웃으면서 시작되었다. 글: 주건군(朱建軍)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항우와 유방의 군사대결은 항우의 패배로 끝이 난다. 표면적으로 보면, 누가 최고통치자가 되느냐는 백성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일 항우가 서초패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더라면, 중국의 미래는 아마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항우는 복고(復古)를 더욱 원했다. 그래서 분봉제도(分封制度)를 채택한다; 유방은 비록 일부 자제들에게 분봉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시황의 제도를 채택한다. 이것은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더욱 말하고 싶은 것은 항우의 실패라는 이 사건이 중국인의 심리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중국인에게 “성왕패구(成王敗寇, .. 2022. 6. 3.
항우(項羽)의 패망후 그 휘하의 4대맹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서초패왕 항우는 힘이 남달라서, 상대가 두려움을 느끼던 맹장이다. 동시에 항우의 휘하에는 4명의 맹장이 있었다. 그들은 항우를 따라 동정서토, 남정북전하였다. 거록지전에서는 진군 40만을 격파하기도 했고, 팽성지전에서는 유방의 56만대군을 물리쳐서 위명을 천하에 떨친다. 그러나, 항우는 결국 패망했다. 그렇다면 그의 휘하에 있던 4대맹장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가장 먼저 얘기해아할 맹장은 용차(龍且)이다. 용차에 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그는 분명 일찌감치 항량, 항우를 따랐을 것이고, 계속하여 항씨집안이 심복이었다. 용차는 항량의 휘하에서 사마(司馬)를 맡았고, 동아전투에 참가하여 진군을 대파한다. 항우의 용인술에는 특징이 있다. "그가 즐겨 기용하는 사람은 항씨일족이거.. 2021. 6. 6.
항우가 자결한 후 그의 부인과 2명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풍상담사사(風尙談史事) 기원전202년,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인다"는 서초패왕 항우는 인생의 마지막 열차를 탔다. 그의 첩인 우희(虞姬)가 자결한 후, 그도 이어서 오강(烏江)에서 자결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장면이 펼쳐졌다. 그때 항우의 나이 겨우 30살이었다. 항우는 후손을 두었을까? 우희는 항우의 첩일 뿐이고, 그에게는 원래 정실부인이 있다. 성은 원(袁)이다. 이건 헛소리가 아니다. 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천하의 항씨는 모두 일가(一家)이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즉 천하의 모든 항씨성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2200여년의 일이다. 항우의 할아버지인 항연(項燕)은 세 아들을 둔다.. 2020. 10. 8.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왜 함양을 버리고 팽성을 선택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서주(徐州)의 옛 명칭은 팽성(彭城)이다. 요(堯)임금이 팽조(彭祖)를 대팽씨국(大彭氏國)에 봉했는데, 팽성은 바로 대팽씨국의 도성이었다. 나중에 상(商)의 주왕(紂王)에 멸망했다. 춘추시기에 팽성읍은 송(宋)나라에 속했다. 팽성은 송나라의 중요성읍이다. 왕왕 제후들이 쟁탈하는 목표가 되었다. 기원전 207년 십이월, 항우는 여러 제후의 병력을 이끌고 함곡관(函谷關)을 격파하고 진왕조를 멸망시킨 후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에 오르고, 팽성을 도읍으로 한다. 그는 패주의 신분으로 전국을 18개왕국으로 나누어 제후, 부장(部將)과 항장(降將)을 왕으로 삼는다. 그런데, 왜 항우는 함양을 버리고 팽성을 선택했을까? 항우가 함양으로 들어가 진나라황궁을 불태워버릴 때, 어떤 참모는 그에.. 2020. 7. 15.
항우는 왜 제국을 잃어야 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1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시기에 성을 도살하는 것(屠城)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항우는 특히 이를 좋아했다. <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2세 2년(기원전208년), 항우는 양성(襄城)을 도살한다. 같은 해, 유방, 항우는 성양(城陽)을 도살한다. 2년후, .. 2015. 3. 26.
항우가 죽은 후 항우의 부장(部將)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서 그는 즉시 공신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상을 내리지 않고 그가 생각하기에 더욱 중요한 한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것은 항우의 부하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는 원래 그를 옹호했던 몇몇 제후를 다시 한번 확.. 2014. 12. 12.
항우: 저평가된 정치가 글: 양무후(陽武侯) 홍문연은 항우 인생의 전환점이다. 이전에 그는 기세가 중천에 뜬 해와 같았고, 운이 아주 좋았으며, 계속하여 상승했다. 그후에는 계속하여 내리막길이다. 유방에게 핍박당해 오강에서 자살할 때까지. 실패자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특히 재능있는 실패자를 동정하는 .. 2013. 9. 14.
항우의 죽음: 오강정장의 말 때문인가? 글: 노위병(路衛兵) 항우의 죽음은 순전히 우연한 일때문이다. 항우는 마지막 28기를 데리고, 유방의 추격병과 싸우면서, 마지막에 오강(烏江)의 가(지금의 안휘성 화현 경내)에까지 왔다. 강변에 배가 있었다. 선부(船夫)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보고한다. 항우가 다스리는 오강정장(烏江.. 2013. 6. 26.
항우(項羽)의 최대의 적은 누구인가? 글: 조성명(曹聲明) 사마천의 <사기>를 살펴보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얼굴의 두 개의 항우이다: 하나는 풍운을 질타하고, 용감하게 전진하며, 천하를 휩쓰는 무적의 항우이고, 다른 하나는 강퍅자용하고 광망잔폭하며, 실패와 멸망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항.. 2013. 6. 10.
항우는 왜 죽음을 선택하고 강동으로 건너가지 않았는가? 글: 강사황(姜四晃)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살아서는 인걸이더니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죽어서도 귀웅이네 지금사황후(至今思項羽) 지금 항우가 강동으로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건너지 않으려 했던 것을 생각하네 이것은 송나라때의 재녀 이청조(李淸照)가 항우를 읊은 오언절구이.. 2013.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