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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고고12

중국 고대건축의 "궐(闕)"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궐(闕)이라는 것은 범주에 관한 개념이으로, 궐은 도로에 건설하는 표지물이다. 이를 통해, 이곳부터 시작하여 길을 걸어오는 사람은 하나의 '규정된 구역'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을 표시한다. 오늘날 하북(河北)과 다른 여러 곳에서 우리는 '궐'의 실물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의 도로에 '문(門)'이 있는 '문루(門樓)'가 없이 하나의 특수구역에 진입하는 것을 표시하는 패방(牌坊)이 있다. 북경의 길거리에도 원래 여러 실물이 있었다. 그것은 문화적이고, 지리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며 여러가지 규범적인 장소의 가장 바깥에서 가장 멀리서 영역을 표시하는 물건이다. 예를 들면 우리 신체의 손가락끝, 우리의 코끝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에도 모두 .. 2023. 3. 23.
순릉(順陵): 한 여인의 무덤, 왜 황제능보다 규모가 클까? 글: 시습사사(時拾史事) 시안(西安)에서 공항확장공사를 하면서 가장 바빠진 것은 고고발굴팀이다. 설날연휴기간동안 섬서성 고고연구원 공항신성 고고연구기지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 연휴도 포기하고, 연장작업을 하면서 고고발굴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공항확장공사과정에서 각 시기의 묘장 3,500여개를 찾아냈고, 발굴임무는 아주 어렵다. 1,300여년전 이곳은 "홍독원(洪瀆原)"으로 불렸고, 당나라때 귀족들의 묘가 모여있는 곳이다. 최근 10년동안 연이어 상관완아(上官婉兒), 설소(薛紹)등의 묘지를 발견하여, 당나라 역사를 연구하는데 고귀한 자료가 되었다. 함양공항의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규모가 거대한 능묘인 순릉이 있다. 비록 천년이상의 비바람을 맞았고, 지면건축물은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거대한 석상을 보면.. 2021. 5. 31.
"수인전(手印塼)"의 수수께끼 글: 고몽하(高蒙河) 중국에서 장방형(長方形)의 실심전(實心塼)은 진(秦),한(漢)시기에 발명되었다. "조전(條塼)"이라고도 부른다. 전(벽돌)의 길이는 대부분 20-30센티미터이다. 길이, 너비, 두께의 비율은 4:2:1로 배수이고, 등비수열이다. 벽돌을 쌓을 때 합리적으로 배치할 수 있고, 전체적으로 보기좋기 때문일 것이다. 조전은 역대 왕조를 거치면서 현대까지 계속 사용되어 왔다. 다만 현대에 우리가 많이 쓰는 것은 붉은벽돌(紅塼)인데, 고대에는 파란벽돌(靑塼)이 많았다. 현대의 벽돌은 각 면이 밋밋한데, 옛날의 벽돌에는 자주 밧줄무늬(繩紋)를 새기거나, 혹은 기하학적인 도안, 동식물도안, 인물화상등을 넣었다. 어떤 벽돌에는 각종 내용의 문자도 새겼다. 혹은 묘주인의 성씨이거나, 혹은 벽돌을 제작한.. 2020. 10. 27.
월왕녹영검(越王鹿郢劍): 월왕구천검에 맞먹는 명검의 출토 글: 예방육(倪方六) 월왕구천검(越王句踐劍)의 출토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1965년 호북 형주 강릉 망산1호묘에서 발굴되었다. 놀라운 점은 월왕구천검이 출토된 이후, 강릉지역에서, 연속으로 4대의 월왕검이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월왕구천검이후, 또 다른 3가지 검은 각각 월왕주구검.. 2019. 1. 27.
전국기악동방옥모형(戰國伎樂銅房屋模型): 낯뜨겁게 만드는 국보급문화재 글: 원재예(袁載譽) 우리가 항주시 서호구 고산로(孤山路)를 산책할 때, 기이한 '방(仿)청동양식'의 물건을 만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 더 쳐다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위에는 크게 6글자가 쓰여 있었다: 절강성박물관(浙江省博物館). 필자가 오늘 얘기하고 하.. 2019. 1. 17.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2018. 9. 27.
돈황학(敦煌學)이란? 글: 자주군(煮酒君) 많은 사람들은 여추우(余秋雨)의 문화고려(文化苦旅)를 읽어보았을 것이므로, <도사탑(道士塔)>에 대하여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래서 왕도사(王道士)에 대하여는 불만이 클 것이고, 그는 민족의 패류(敗類)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문학창작과 역사진상이 반드.. 2015. 12. 14.
서주왕릉(西周王陵)은 왜 하나도 발굴되지 않았을까? 글: 유준용(劉俊勇)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묘장의 변화는 사회분층과 문명서광의 출현을 반영한다; 상나라의 묘장은 선명한 계급제도를 보여준다. 왜 지금까지 서주왕릉으로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을까? 서주의 묘장은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예제는 어떻게 발전하고 완비되.. 2013. 11. 10.
"상관완아묘(上官婉兒墓)"에 대한 6가지 의문 글: 배광휘(裴光輝) 1. 장지(葬地)에 대한 의문 상관완아는 생전에 당중종의 소용(昭容), 즉 이현의 비빈이다. 경룡4년 육월 이일(710년 7월 3일) 이현은 위후에게 신룡전에서 독살당한다. 향년 55세이다. 십일월 당중종을 정릉(定陵, 지금의 섬서성 부평현 서북 15리에 있는 용천산 남록)에 장.. 2013. 11. 10.
반포(半坡)유적지: 7천년전 17세소녀유골의 수수께끼 글: 조건란(趙建蘭) 약17살된 소녀의 유골에 35곳이나 상처가 나 있다. 그리고 사자의 사지의 뼈는 어긋나 있거나 빠져있지 않으면, 끊어져 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기괴한 상태를 이루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녀를 죽인 흉기들 중 18개는 아직도 유골안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 2013.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