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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212

제갈량은 제1차북벌에서 얼마나 참담하게 패배했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삼국때 제갈량은 유비의 군사로서 유비가 전투, 치국, 평천하에서 가장 신임했던 사람이다. 제갈량을 얻은 후, 유비는 보물을 얻은 듯 기뻐했고, 속이 좁은 관우의 불만을 초래하게 된다. 유비는 임종때 탁고(托孤)할 때, 제갈량은 여전히 그를 위해 촉국을 지켜줄 유일한 후보자였다. 비록 그는 제갈량에 대하여 마음을 높지 못하는 점이 있기는 했지만, 조정과 아들을 제갈량에게 맡겨야 했고, 여기에 이엄과 조운으로 하여금 제갈량을 감시하여 유선과 촉한강산을 보호하게 했다. 다행히 제갈량은 확실히 그가 유비에게 약속한대로 일을 했다. 충성을 다하면서, 유비가 실현하지 못한 이상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선을 위해 천하를 얻으려 했다. 자신이 죽은 후 능력이 부족한 유선.. 2022. 8. 18.
장로(張魯): "조조의 종이 될지언정, 유비의 귀빈은 되지 않겠다!" 글: 소한신시야(笑寒新視野) 삼국의 이야기와 인물은 중국에서 삼척동자도 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진실한 삼국시대는 겨우 몇십년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은 아주 컸다. 식사자리에서의 얘기거리가 될 뿐아니라, 그 속의 선악을 통해 민간문화의 형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보급교육을 했다. 민간문화이므로,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게 되고, 인물의 성격을 선명하게 그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검보화(臉譜化)하게 된다. 어쨌든 복잡한 인물로 그리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유비,조조처럼 한명은 충신, 한명은 간신, 한명은 좋은 사람, 한명은 나쁜 사람.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다. 삼국의 이야기는 송나라때부터 시작하여 선악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유비는 점점 정통으로 되고 좋은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반하여 조조.. 2022. 8. 6.
제갈량 vs 이엄 (2): 양자간의 싸움 글: 의사리(衣賜履) 이엄은 원래 유장(劉璋)의 사람이었는데, 유비가 익주를 쳐들어왔을 때, 이엄이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리하여 유장에게 큰 타격을 준다. 유비는 이엄을 크게 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유비는 이엄을 보내 유봉(劉封), 맹달(孟達)을 따라 상용군(上庸郡, 호북성 죽산현 서남의 전가패)을 공격하게 했다. 그후 이엄은 건위군(사천성 팽산현) 태수에 부임하고, 이어서 두 건의 반란을 평정한다. 이는 그가 상당한 군사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 따르면, 이엄과 제갈량, 법정, 유파, 이적(伊籍)의 다섯 명은 공동으로 촉한정권의 법령을 정비했다. 이는 이엄이 법률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은 220년에 사망한다. 그렇다면 이엄은 개략 건위군태수의 직위에서, 겸직으로.. 2022. 3. 8.
제갈량 vs 이엄 (1): 이엄축출사건의 수수께끼 글: 의사리(衣賜履) [의사리]: 제갈량의 제4차북벌은 의 기재에 따르면, 위나라병사 3천여명을 참살하고, 거기장군(車騎將軍) 장합(張郃)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군량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철군하게 된다. 비록 휘황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한중(漢中)으로 돌아온 후, 제갈량이 한 첫번째 조치는 논공행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논공행상을 전혀 하지 않았고, 당초 그와 함께 유비에게 백제성에서 탁고(託孤)를 받았던 2인자 이엄(李嚴)을 관직에서 축출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아주 이상하다. 이엄이 축출된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역사가들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몰랐다. 예를 들어, 전여경(田餘慶) 선생은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엄의 거동은 어쨌든 지나치게 괴류(乖謬)하여 상정(常情)에 부합하.. 2022.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