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111

"묵돌선우(冒頓單于)": 초원제국은 왜 중원통일왕조의 악몽이 되었을까?

글: 서북낭(西北狼)​자고이래로 사람들은 항상 논쟁이 있었다: 도대체 영웅(英雄)이 시세(時勢)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세가 영웅을 만드는가?​필자의 생각에 이 문제의 답은 지역마다 다르다(因地而異)는 것이다.​중원에서 개인영웅주의는 역사발전에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천하대세는 항상 한 사람의 힘으로 뒤집을 수 없었다. 제갈량같은 지혜있는 인물도 결국 오장원에서 한을 품고 죽어야 했다.​그러나, 초원에서 왕조의 흥망성쇠는 완전히 어떤 영웅인물에게 달려 있었다. 흉노제국의 창업자인 묵돌선우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유목민족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가 도래하다.​묵돌선우가 굴기하기 전에, 장성이북은 동에서 서로 차례대로 3대 강대세력이 있었다. 각각 동호(東胡), 흉노(匈奴)와 대월지(大月氏)이다.당시, 동호와 ..

원앙(袁盎): 서한초기의 정치한 이기주의자

글: 서북낭(西北狼) 서한초기의 정계에서 원앙은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사적은 오초칠국지란때 한경제(漢景帝)를 설득하여 조착(晁錯)을 죽인 일이다.​평생 실질적인 일을 추구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온 조착과 비교하면, 원앙은 평생동안 허황한 일만 했을 뿐 실질적인 일은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자가 정계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잘 나갔다. 원앙의 정치한 이기주의자철학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육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1. 정명한 정치투기꾼​서한초기는 계급의 고착화가 매우 심했던 시기이다. 개국공신 및 그들의 자제들이 중앙정부의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많은 관직은 공신자제들이 세습했다. 예를 들어 창고를 관리하는 가족은 대대로 창고를 관리하였고 나중에는 ..

유양(劉襄): 유방의 장손으로 능력이 너무 뛰어나 황제에 오르지 못한 인물

글: 역사전쟁(歷史戰爭)​한문제(漢文帝) 시기에 아주 기괴한 정변이 일어난다. 당시 조정에 큰 혼란도 없었고, 경사의 경위부대도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는데, 제북왕(濟北王) 유흥거(劉興居)가 거병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반란은 기실 자살행동이나 다름없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유흥거가 설마 미쳤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데는 기실 정치적 배경이 있다.​유흥거의 부친은 유비(劉肥)로, 유방(劉邦)의 장남이다. 모친 조씨(曹氏)는 유방이 여후와 결혼하기 전에 만난 애인이다. 유방이 황제로 등극한 후, 유비는 황장자(皇長子)였으나 적출(嫡出)이 아니어서 황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하여 제왕(齊王)에 봉해지는데 그쳤다. 유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서..

한경제(漢景帝)는 왜 황태자 유영(劉榮)을 폐위시켰을까?

글: 이대규(李大奎)​서한(西漢)왕조의 황위계승은 대체로 "입적불립서(立嫡不立庶), 입장불립유(立長不立幼)"(적자를 세우고 서자를 세우지 않는다. 장자를 세우고 유자를 세우지 않는다)의 원칙을 유지했다. 이는 중국고대에 명확히 규정된 적장자승계제도이다.​예를 들어 한혜제(漢惠帝) 유영(劉盈)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황후 여치(呂雉) 사이의 적자이다. 유비(劉肥)는 비록 장자이지만 서출이어서 번왕에 책봉되는데 그쳤다. 유방의 서사자(庶四子) 유항(劉恒)이 나중에 유명한 한문제(漢文帝)가 되는데, 이는 완전히 특수한 상황하에서 군공집단의 옹립으로 "형종제급(兄終弟及)"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그러나, 한경제에 이르러 다시 한번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한경제의 박황후(薄皇后)에게는 아..

유교(刘交): 유방(刘邦)의 유일한 동생

글: 감당(甘棠)​유방의 부친 유태공(刘太公)에게는 모두 네 명의 아들, 한 명의 딸이 있었다. 그중 유방은 동생 유교와 가장 사이가 좋았다.​유태공은 모두 두 명의 처를 취했는데, 그중 장남 유백(刘伯), 차남 유중(刘仲)은 첫째부인 소생이고, 삼남 유방과 막내아들 유교는 재혼한 부인의 소생이다. ​네 명의 아들을 살펴보면 장남은 요절했고, 차남은 착실하며, 삼남은 무뢰한이고, 막내가 가장 뛰어났다. ​그렇다. 그 당시 유방의 행위나 처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았다.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가진 것도 없이 그저 매일 허풍이나 떨었다.​그래서, 처음에 유씨집안에서 가장 기대를 건 것은 막내 유교였다.​유교를 공부시키기 위해 전문적으로 스승을 찾아가 공부하게 한다. 원래 그는 유학자가..

한선제(汉宣帝) 유순(刘询): 중국역사상 최초로 감옥에 갇혔던 황제

글: 조심방(赵心放) 한선제 유순은 서한 중기의 ‘중흥’군주이다. 그는 친정후 관료사회를 정돈하고, 세금을 경감하며, 처벌을 감경했으며, 효과적으로 생산을 발전시켰고,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였다. 대내적으로는 한무제 말기의 사회경제가 쇠락한 국면을 되살려냈고, 대외적으로 한왕조와 주변각족과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한소제, 한선제 시기에 사회가 안정되고, 국세가 흥성한 것을 두고 이 시기를 후대인들은 “소선중흥(昭宣中兴)”이라 부른다.​1. 역사상 최초로 감옥에 갇혔던 황제​유순은 한무제(汉武帝) 유철(刘彻)의 증손자이고, 위태자(卫太子) 유거(刘据)의 손자이다. 유거는 고혹지화(蛊惑之祸)를 당해 일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다. 성문에 불이 나면 그 재앙은 연못의 물고기에도 미치는 법이다. 태어난지 수개월밖에 되지..

한명제(漢明帝)의 다섯째 아들인 유달(劉炟)은 어떻게 황위를 계승할 수 있었을까?

글: 이대규(李大奎) ​ 동한(東漢)왕조에는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예를 들어, 마황후, 등황후, 염황후, 양황후는 모두 자식을 두지 못했고, 책봉된 황태자는 많은 경우 폐출되었다. 예를 들어, 동해왕(東海王) 유강(劉疆), 청하왕(淸河王 劉慶), 제음왕(濟陰王) 유보(劉保)등. 그리하여, 번왕이나 그 후손들이 여러가지 기연이 합쳐지면서 황위를 계승하는 일도 벌어졌다. ​ 한명제(漢明帝), 유장(劉莊)과 가귀인(賈貴人) 사이에 태어난 다섯째 아들 유달(劉炟)도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그는 어떻게 황위를 승계할 수 있었고, 역사에 위업을 남길 수 있었을까? ​ 유달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하자. 마황후가 맡아기르다. ​ 기원56년에 출생한 황자 유달은 적출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4명의 형이..

김일제(金日磾): 한무제는 임종때 왜 흉노왕자인 그를 보정대신(輔政大臣)으로 삼았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김일제(金日磾)는 흉노왕자로서 한나라에서 아주 잘 지냈다. 심지어 보정대신까지 지냈는데, 그 근본원인은 한무제(漢武帝)의 신임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비록 흉노왕자이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한무제의 곁에서 함께 자랐다. 흉노인이라는 신분외에 한무제에 있어서는 총신(寵臣)으로 믿을만한 인물이었다. 게다다 한무제의 임종전에 한나라에는 복잡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결국, 김일제가 보정대신이 되어, 한무제가 죽은 후, 한소제(漢昭帝)시대의 '사대천왕(四大天王)'중 한명이 된다. 당연히 이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한무제시대와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적 원인이 있다. 이 사건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간단하게 김일제가 어떻게 하여..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卓文君) 이야기

글: 우서한독(友書閑讀) 사마상여가 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자 첩(妾)으로 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인 탁문군(卓文君)에게 편지를 보낸다: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百千萬". 총명한 탁문군은 이 편지를 보고, 즉시 남편의 뜻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한수 써서 남편에게 보낸다. 사마상여는 그 편지를 읽고 첩을 들이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우리는 이전에 역사상 첫번째 여성시인 허목부인(許穆夫人)은 비록 재능이 출중했지만, 남자들에 못지 않은 집안과 나라에 대한 감정을 가졌다. 그렇지만, 결국 그녀도 정략결혼의 도구가 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얼마나 많은 홍수형향(紅袖馨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흔적도 없이 매몰되었던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 겨우 이름정..

상관씨(上官氏): 6살에 황후, 15살에 태후, 40살에 태황태후가 된 여인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상관씨는 명문집안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상관걸(上官桀)이고, 외할아버지는 대장군 겸 대사마 곽광(霍光)이다. 곽광은 곽거병(霍去病)의 동생으로 조정의 대권을 완전히 장악했던 인물이다. 그와 상관걸은 모두 한무제때의 중신으로, 한무제의 탁고를 받아 나이어린 한소제(漢昭帝)를 보좌했다. 이런 할아버지를 두었으니 상관씨의 일생은 당연히 평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딸을 궁으로 보내기 위해, 상관씨의 부친인 상관안(上官安)은 한소제를 어릴 때부터 길러준 한소제의 유일한 누나인 악읍장공주(鄂邑長公主)를 찾아가서, 과부로 지내는 장공주의 애인 "정외인(丁外人)"의 관직과 작위를 올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악읍장공주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상관씨를 한소제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성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