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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북대와 청화24

직접 목격한 북경대학, 청화대학 입학과정의 괴이한 현상 글: 청년력(靑年力) 입학선발때 나는 계속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학생을 북경대학에 뽑아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학교도 학생을 선택하지만, 학생도 학교를 선택한다. 입학선발위원으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한 학생을 북대 혹은 청화로 데려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 것이다. 더 해야할 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더 많이 학생에게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정보의 장벽을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한 대학선배의 말에 따르면, 초심(初心)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선발위원으로 오래 일하다보니 갈수록 많은 괴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초심은 어디로 갔을까? 괴이한 현상 1: 학생.. 2023. 4. 18.
사도뢰등(司徒雷登): 연경대학(燕京大學) 초대 총장 글: 청석두설(聽石頭說) 나는 지금까지 돌아가신 한 총장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었다. 그가 창립한 연경대학(燕京大學)은 내가 공부할 인연을 갖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연경대학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북경대학의 캠퍼스에서 한 남학생이 어느 써클의 셔츠를 입고 있는데, 등뒤에 "인진리(因眞理), 득자유(得自由), 이복무(以服務)"라는 아홉글자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대학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미망(迷惘)에 빠져 있었는데, 그 몇 글자는 나에게 서광으로 비쳤었다. 나중에 나는 그 아홉글자가 연경대학의 교훈(校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북경대학을 연원(燕園)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북경대학의 핵심지역인 미명호(未名湖)와.. 2023. 1. 4.
진대손(陳垈孫): "무문서동(無問西東), 방득시종(方得始終)" 글: 민국문예(民國文藝) 1943년, 서남연대(西南聯大) 경제학과. 교실은 학생들로 물샐 틈도 없었다. 경제학과 학생들 뿐아니라 다른 과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인기있는 과목은 재미있고 통속적인 과목이 아니었다. 추상적인 용어들이 난무하는 전문과목이었다. 경제학개론. 이 강의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교수가 비범하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5분전, 한 키가 큰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그는 잘 다림질된 흑색의 양복과 하얀색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임풍옥수(臨風玉樹)같았다. 그는 강단에 서서,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담담하고 고귀한 기질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시끄럽던 강의실은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칠판에 영문단어 하나를 적었다. "wants" 그후.. 2022. 7. 20.
내가 아는 북경대학 교수들의 집안내력(3): 기타학과 글: 양문리(楊文利) 진대손(陳垈孫) 경제학원 교수 진대손은 복건 민후(閩侯) 사람이다. 나강진씨(螺江陳氏)는 명문거족이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도 계속 이어지고 관료가 끊임없이 배출되었다. 증조부 진승구(陳承裘)는 함풍때 진사로 아들 7명을 낳았다. 한명이 요절한 외에 나머지 6명은 모두 인재로 자란다. 장남 진보침(陳寶琛), 차남 진보진(陳寶瑨), 삼남 진보로(陳寶璐)는 전후로 진사가 된다. 사남 진보기(陳寶琦), 육남 진보선(陳寶瑄), 칠남 진보황(陳寶璜)은 모두 거인이 된다. 세칭 "부자4진사, 형제7과갑'이 된다. 집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조부 진보로는 형부주사를 지냈고, 박학통경했다. 부친 진무예(陳懋豫)는 광서때 거인으로 경방효율학당을 졸업하고, 해군학교에서 재직했다. 진대손은 어려서부터.. 2022. 4. 30.
내가 아는 북경대학 교수들의 집안내력(2): 역사학과, 철학과 글: 양문리(楊文利) 3 주일량(周一良) 가학을 이어받은 역사학과 교수중 내가 아는 분으로는 주일량 선생이 최고이다. 건덕주씨(建德周氏)는 양(良)자배에 이르러 이미 4대동안 인재들이 속속 배출되어 절강에서 유명한 명문집안이 된다. 증조부 주복(周馥)은 양광총독, 병부상서에 이르렀고, 이홍장(李鴻章)이 발탁하여 중용했고, 일찌기 천진무비학당, 복단대학, 안휘공학의 창립에 참여했다. 조부인 주학해(周學海)는 광서때 진사로 의학(醫學)을 깊이 연구했다. 숙조부 주학희(周學熙)는 실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남장북주(南張北周)'(남쪽은 장건(張謇) 북쪽은 주학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부친 주숙도(周叔弢)는 실업에 종사하며, 고적의 감별에 뛰어났다. 당숙 주숙가(周叔迦)는 불학에 정통했다. 한때 북경대학에서.. 2022. 4. 30.
내가 아는 북경대학 교수들의 집안내력 (1) : 중문과, 외국어과 글: 양문리(楊文利) 1 임경(林庚) 내가 처음 북경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1980년대가 끝나가는 때였다. "북대중문사로(北大中文四老)"중 한명인 임경(林庚) 교수가 은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 이상 본과학생들에게는 수업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했다. 그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어서 유감으로 여겼다. 그래도 임경 선생의 풍채를 직접 보고,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는 있었다. 개략 당시(唐詩)에 관한 강의였고, 제목은 기억이 희미하다. 나이 팔순의 임선생은 비단장삼을 입고, 소쇄여소년(瀟灑如少年)하고 표일여선자(飄逸如仙子)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임선생은 명문집안 후손인 것을. 부친 임재평(林宰平)은 광서때의 거인(擧人)으로 일찌기 일본으로 건너가 법률을 배웠다. 그러나.. 2022.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