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광윤) 24

조광윤의 죽음과 관련된 2명의 소인물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중국역사상의 풍운인물로서 조광윤의 일생은 전설로 충만하다. 그는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남겼는데, 그중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그의 죽음이다. 976년 십월 십구일 밤, 조광윤은 동생 조광의를 불러서 술을 마신다. 다음날 새벽에 조광윤이 돌연사하니 향년 50..

조광윤은 주세종의 아들들을 어떻게 하였는가?

글: 왕국동(王國棟) 960년, 조광윤은 진교병변으로 후주(後周)의 강산을 빼앗아 북송(北宋)정권을 건립했다. 그러나 후주세종 시영(柴榮)의 가족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그의 큰 난제였다. 주세종 시영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시종의(柴宗誼), 차남 시종성(柴宗誠), 삼난 시..

조광윤 "황포가신(黃袍加身)"의 5가지 의문점

글: 귀산야화(貴山夜話)2017 배경설명 1. 조광윤은 후주(後周)의 황제인 주세종(周世宗) 시영(柴榮)의 수하 애장(愛將)이었다. 주세종 시영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시기에 가장 명망있고 업적을 이룬 일대군주이다. 민간의 평서, 화본에서는 시영과 조광윤이 일찌기 결의형제를 맺었다..

"황포가신(黃袍加身)"의 세 가지 의문점

글: 문재봉(文裁縫) 현덕7년(960년) 정월 초나흘, 역사상 그 이름도 유명한 "진교병변, 황포가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서막을 연다. 사마광의 <속수기문(涑水紀聞)>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날 새벽, 아직 꿈속에 있던 조광윤은 그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사이에, 한 무리의 사람들..

조광윤은 왜 황위를 아들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었는가?

글: 이추우(李秋雨) 1036년전인 서기979년 6월 3일, 송태종은 북한(北漢)을 멸하고 오대십국의 분열국면을 종식시킨다. 오대후기, 통일의 추세는 나날이 분명해져갔다. 후주(後周)때, 주세종은 개혁을 진행하고, 역량이 크게 증강되었다. 그는 선남정 후북벌(先南征後北伐)의 통일방침을 세..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조광윤이 무장들에게 부패허가증을 준 것이다.

글: 정수위(丁守衛) 언뜻 보면, 조광윤의 "배주석병권"은 아주 시원스럽고, 가벼우며, 사람들에게 "담소간(談笑間), 장로회비연멸(檣櫓滅飛煙灰)"한 것같은 느낌이고, 전혀 심을 들이지 않았으며, 수단이 뛰어난 조광윤은 원래 아주 골치아픈 이 일을 쉽게 처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

조광윤(趙匡胤): 황위찬탈을 막기 위하여 참서(讖書)를 몰래 고쳐버리다.

글: 우좌(于左) 조광윤은 일개 무부로 군림천하를 하게된다. 그는 빈천할 때 감히 천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는지 신에게 점을 쳐서 물어보았던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를 ..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은 일종의 오해이다.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송태조의 "배주석병권"의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조광윤이 천하를 얻은 이후, 공신들이 그가 했던 바를 배워서 모반작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워하여, 술을 마실 때 무장들을 권하여 병권을 포기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강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