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129

차이치(蔡奇): 중추를 장악했지만, 이빨없는 호랑이이다.

글: 호해(胡亥)​해외매체에서는 차이치를 "창위독공(厂卫督公)"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동창(东厂)의 우두머리라는 것인데, 이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동창은 명나라때의 정보기구이고, 특무조직이며, 조정의 응견(鹰犬)이다. 차이치는 동창을 주관할 뿐아니라, 동시에 천하의 온갖 일을 관리감독하며, 중공의 일상사무도 처리한다. 그렇다면 '창공(厂公)'이 아니다. 오히려 사례병필태감(司礼监秉笔太监)에 가깝다. 황상을 도와 세상만물을 처리하며 재상의 권한을 대행하는 직위인.​저명한 중국문제전문가인 가오신(高新) 교수는 일찌기 아시아자유논단에 글을 올려, 시진핑이 왜 차이치를 신임하는지를 기술했다. 그는 푸젠(​福建)에서 저장(浙江) 그리고 다시 베이징(北京)까지 20여년에 걸친 "사적인 우정"외에 더욱 중요한..

시진핑의 "주체곤경(朱棣困局)"

글: 규양(葵阳) ​ 여러해전에 나진우(罗振宇)가 '독수독과'의 이슈를 얘기한 바 있다. 그가 인용한 것은 조카로부터 권력을 찬탈한 주체(영락제)는 일생동안 집권합법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그후 폭력적이고 냉혈광포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 나진우가 얻어낸 결론은 이러하다. 나쁜 짓을 한 이후의 보응은 하늘의 천벌이나 다른 사람의 보복일 필요는 없고, 스스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심리적으로 뒤틀어질 가능성이 많다. 이런 뒤틀어짐은 당사자로 하여금 더욱 많은 나쁜 짓을 하게 하고, 더더구나 계속하여 해결될 수 없는 싸움을 벌이면서, 스스로의 두려움과 괴로움을 감추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 명나라때 주체가 권력을 잡은 과정에 대하여는 이미 정설이 나와 있다. 그가 아무리 황실의 순수한 혈통이라 하더라..

친강(秦剛)사태: 어떻게 끝날 것인가?

글: 등율문(鄧聿文) 중국의 외교부장 친강이 공중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근 1달이 되었다. 전세계의 여론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당국에서는 먼저 그에게 건강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은 그와 모 여자아나운서와의 스캔들에 더욱 흥미를 보였다.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종의 방식으로 유언비어라고 해명하지도 않아서, 온갖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아주 보기 드문 경우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에게 골치아픈 일이 생긴 것이다. 친강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수께끼찾기를 시킨다. 이는 중국이 글로벌대국이라는 중요성으로 인하여 중국과 관련된 사건은 관심을 끌게 되는 점도 있지만, 중공이라는 체제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중공이라는..

전랑외교(戰狼外交)의 내재적 논리

글: 오국광(吳國光) 5월 8일 캐나다는 중국외교관 자오웨이(趙巍)의 추방을 선언했다. 그는 베이징을 비판한 캐나다의원과 그 가족을 협박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몇 주 전에는, 중국의 주프랑스대사 루샤야((盧沙野)는 전소련국가의 주권지위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여 유럽각국의 분노를 산 바 있다. 루샤야는 최근 본국으로 소환되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당국이 앞으로 그가 공개장소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더 많은 사람들은 루샤야의 견해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일 이 두 가지 견해를 모아보면 그것은 한가지 관점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당국은 외교에서 국가이익을 아주 중시한다고. 일찌기 "행패부리는 발언"은 개인적인 승진을 노리고..

아직도 대만무력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글: 시화(施化) 한동안 중문여론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화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대만'이다. 인상 속에서 인기검색어 1위가 아니더라도면 2위에는 올라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서방은 어떻게 대만을 핑계로 삼아 중국을 포위탄압하는지, 대만독립분자들이 어떻게 창궐하며, 미국아버지의 군사역량을 빌어 호가호위하는지, 대만의 신생대(新生代)는 대륙과 점점 멀러지고 있는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대만을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든지, 시진핑 신정권이 손을 쓸 것인지 아닌지, 대만해협전쟁은 언제 시작할 것인지. 등등.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현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청년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수십년동안, 중국대륙에서 대만 이슈의 열기는 식은 적이 없었다. 초..

중국은 "대만카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글: 진숙함(陳叔涵) 2022년 11월 7일 해협양안의 분치(分治)라는 정권국면은 2차대전이래 국제정치질서의 불가분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만카드"라는 말은 바로 이 사실이 기인한다. 미국은 수시로 "대만카드"를 꺼내든다. 중국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진정 "대만카드"를 즐겨 쓰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만카드"를 써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는 중공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8.23포격전은 중국이 "대만카드"를 쓰는 서막을 열었다. 전면적인 국공내전은 1945년부터 시작하여, 1958년까지 지속된다. 중국은 대만본섬으로 진격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륙과 지척지..

중국의 내부분열이 가속화되다

글: 주효휘(周曉輝) 중국공산당 20대이후 원래 존재했던 내부분열이 봉합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가속화하는 추세이다. 두 가지 주요한 원인은 전 당수 후진타오가 공개적으로 끌려나간 것, 그리고 아무런 사전경보없이 풀린 코로나방역으로 인한 참극이다. 후진타오가 강제로 끌려나가는 영상이 널리 전파된 후, 조성된 악영향은 중남해 최고위층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이다. 국내외에서 영상을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심하다"고 여겼다. 심지어 중공체제내에서도 관리들은 공청단파의 몰락과 후진타오의 처량한 처지에 대하여 근심을 하고 ,적지 않은 관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최고위층이 더 많은 관리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은 다툼없는 사실이다. 더더구나 중앙에서 지방까지 관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중국의 정치유머

글: 묵료(墨獠) 1. 후진타오가 당대회에 참가했을 때, 시진핑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한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말씀해보시지요. 친애하는 후진타오 동지!" 시진핑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후진타오가 말했다: "내가 만일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을 따를까?" 시진핑이 말한다: "그들은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뒤를 따라가야 할테니까." 그 말을 할 때, 곁에 있던 경호요원이 후진타오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만일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후진타오처럼 끌려갈 것이라는 뜻) 2 한 사람이 의 편집장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정치적각오를 제고할 수 있을까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누가 지도자인지 찾아낼 방법이 있을까요?" 편집장이 대답한다..

장쩌민 장례식에서 고위관료들의 서로 다른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 종원(鍾原) 12월 5일, 중국당국은 돌연 며칠전의 공고를 뒤집고 장쩌민(江澤民)의 유체고별의식(遺體告別儀式)을 거행했다. 그것도 두번이나. 1달반전에 20대 주석단의 제1열에 앉아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보기 드물게 모습을 나타냈는데, 중공의 현임, 전임 고위관료들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거기에는 시진핑이 장멘헝(江綿恒)을 포옹하려고 시도하는 난감한 장면도 포함되어 있어, 어느 정도 그들의 진실한 내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20대후, 중공내부의 "타협"과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는 공고를 폐기하다. 11월 30일, 중공은 장쩌민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동시에 치상위원회(治喪委員會) 명단을 공표했다. 시진핑은 유일한 주임위원이고, 위원에는 현임과 전임의 관료..

후진타오 강제퇴장사건의 분석

글: 유기곤(劉淇昆) 후진타오가 중공 "20대" 폐막식회의에서 강제로 퇴장당했으며, 이는 큰 파장을 불러왔다. 중공당국은 대내적으로 소식을 봉쇄하였지만, 해외의 여론은 떠들썩했고,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중공당국의 엄밀한 봉쇄로 인하여 모두 외국기자들이 찍은 현장영상으로 사건의 원인에 대하여 분석하고 추측했다. 비교적 보편적인 추측의 하나는 20대의 명단과 관련이 있다(20기중앙위원후보자명단). 논자들은 후진타오가 명단에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제기하여 결국 회의장에서 퇴장당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명단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보는 영상은 사건의 전과정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외국기자가 회의장에 들어가서 녹화하기 시작했을 때는 "후진타오사건"이 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