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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121

장쩌민 장례식에서 고위관료들의 서로 다른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 종원(鍾原) 12월 5일, 중국당국은 돌연 며칠전의 공고를 뒤집고 장쩌민(江澤民)의 유체고별의식(遺體告別儀式)을 거행했다. 그것도 두번이나. 1달반전에 20대 주석단의 제1열에 앉아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보기 드물게 모습을 나타냈는데, 중공의 현임, 전임 고위관료들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거기에는 시진핑이 장멘헝(江綿恒)을 포옹하려고 시도하는 난감한 장면도 포함되어 있어, 어느 정도 그들의 진실한 내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20대후, 중공내부의 "타협"과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체고별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는 공고를 폐기하다. 11월 30일, 중공은 장쩌민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동시에 치상위원회(治喪委員會) 명단을 공표했다. 시진핑은 유일한 주임위원이고, 위원에는 현임과 전임의 관료.. 2022. 12. 7.
후진타오 강제퇴장사건의 분석 글: 유기곤(劉淇昆) 후진타오가 중공 "20대" 폐막식회의에서 강제로 퇴장당했으며, 이는 큰 파장을 불러왔다. 중공당국은 대내적으로 소식을 봉쇄하였지만, 해외의 여론은 떠들썩했고,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중공당국의 엄밀한 봉쇄로 인하여 모두 외국기자들이 찍은 현장영상으로 사건의 원인에 대하여 분석하고 추측했다. 비교적 보편적인 추측의 하나는 20대의 명단과 관련이 있다(20기중앙위원후보자명단). 논자들은 후진타오가 명단에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제기하여 결국 회의장에서 퇴장당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명단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보는 영상은 사건의 전과정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외국기자가 회의장에 들어가서 녹화하기 시작했을 때는 "후진타오사건"이 막 .. 2022. 11. 1.
베이징에 "정변"이 발생했을까? 글: 유원명(劉元明) 최근 해외주요매체와 개인미디어 정치평론가들이 속속 베이징에 군사정변이 발생하여, 시진핑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가 중앙경위단에 통제된 후, 중남해에 연금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는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105세의 송핑의 동의를 받은 후 중앙경위단을 설득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임시중앙군사위가 만들어져, 류위안(劉源)이 군사위주석을 맡았다고 한다. 이 소식은 잠정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7중전회에서 정식으로 시진핑을 파면한 후 선포될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이 소문은 엄중하게 기본상식에 위배된다. 첫째, 시진핑이 취임한 10년이래, 일찌감치 장쩌민, 후진타오의 군사심복들은 물러나거나 교체되었고 오직 군사위부주석 쉬치량(許其亮) 한명뿐이다. 그는 단지 군.. 2022. 9. 28.
왕자오궈(王兆國)와 후진타오(胡錦濤): 일마당선(一馬當先)과 후래거상(後來居上) 글: 고벌림(高伐林) 한 친구가 지난 기의 을 본 후에 댓글을 남겼다. 기억하기로 중공12대에서 중점배양하기로 선발된 사람은 왕자오궈이고,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모두 그의 밑에서 일했었다고. 그 사람의 말이 맞다. 2002년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후계자로 올랐지만, 근 30년전에 왕자오궈는 중공중앙판공청 주임 겸 공청단중앙제1서기였으며, 원자바오는 중앙판공청 부주임이었고, 후진타오는 공청단중앙 상무서기였다. 이들 둘은 모두 왕자오궈의 부하였다. 이는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왕자오궈는 후진타오보다 공청단중앙에 3개월가량 먼저 왔다. 1982년 한영(韓英)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등소평이 1980년 7월, 후베이 스얜시(十堰市)의 제2자동차제조공장(二汽)을 시찰할 때 발견했다. 당시 얼치.. 2022.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