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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말기 천경(天京)위기때 왜 각지의 제후들은 도와주러 오지 않았을까?

글: 암암설사(巖巖說史)​천경함락전 3개월간 홍수전은 마치 뜨거운 가마속의 개미처럼 조급하여 어쩔 줄 몰랐다. 이때 상군(湘軍)은 기본적으로 남경을 완전 포위했고, 국면은 위기일발이었다. 그러나 수성하는 병사는 겨우 3천여명에 불과했다. 포위망을 풀려면, 각지의 병력으로 하여금 남경으로 와서 근왕(勤王)하도록 하기 위해 불러야 했을 것이다. ​증원군을 얻기 위하여,홍수전은 심지어 자신의 동생 홍인간(洪仁玕)으로 하여금 강소,절강으로 가서 구원병을 데려오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 어느 제후왕도 천경으로 오려하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시왕(侍王) 이세현(李世賢), 강왕(康王) 왕해양(汪海洋)은 수중에 수십만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절강, 강서 변경지역에서 국면을 관망할 뿐 천..

북송(北宋)과 남송(南宋) 사이의 두개 왕조는...?

글: 신비역사가(神秘歷史哥)​북송과 남송 사이에 두 개의 왕조가 탄생한 바 있다. 하나는 '대초(大楚)'정권으로 개국황제는 장방창(張邦昌)이며, 겨우 33일간 존속했다; 다른 하나는 '대제(大齊)'정권으로 개국황제는 유예(劉豫)이며 7년간 존속했다.​그럼 먼저 장방창의 대초정권부터 보기로 하자. 1127년, 금군이 변경(汴京)을 함락시킨 후, 송휘종과 송흠중 두 황제를 끌고가면서 북송이 만했다. 다만, 당시 금나라는 잠시 직접 이 광활한 중원지역을 통치할 수 없어, 먼저 괴뢰정권을 만들어 대리통치하게 하고자 했다. ​이때, 금군은 변량성의 한족대신들을 모아서 조씨(趙氏)가 아닌 신황제를 공개적으로 선출하도록 한다. 이때 대신들은 내심 투표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투표한다는 것은 공공연히 조씨황제의 합..

안사의 난(安史之亂)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글: 화로치(禾珯茬)​당대종(唐代宗) 광덕원년(763년) 정월, '안사의 난'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1​사조의(史朝義)는 막주(莫州, 지금의 하북성 임구 북쪽)에서 당군에게 패배하고, 성안에 들어가서 사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조의는 연(燕)의 마지막 황제이고 반란군장수 사사명(史思明)의 아들이다.​대세가 기운 것을 보자 부장(部將) 전승사(田承嗣)는 기운빠진 얼굴로 달려와 사조의를 만난다: "폐하, 당군의 공세가 너무 맹렬합니다. 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같습니다."​사조의는 원래 무능한 자였다. 전승사의 말을 듣자 더욱 당황해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경, 어떻게 하면 좋겠소?"​전승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저 위험한 전략을 써야할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