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왕설역사(小王說歷史)
하(夏)나라의 역사에서 한착(寒浞)이라는 이름은 아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눈길을 끈다. 16살때, 한착은 상국으로 발탁된다; 겨우 4년이 지난 후에 그는 음모를 통해 왕위를 찬탈하여 화하를 통치하는 국왕이 된다. 그리고 정권을 60년간 장악한다. 그의 폭정, 음모, 도살은 역사서에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결국 그는 주류의 제왕명단에서 말소된다. 한착은 어떻게 집에서 쫓겨난 소년에서 야심만만한 찬탈자가 되었을까? 그근 왜 그렇게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최종적으로 역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 이들 문제는 무수한 역사애호가들의 흥미를 끄는 이슈이고 깊이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 한착의 어린 시절: 쫓겨난 소년
한착의 어린 시절은 동탕과 폭력으로 충만했다. 그의 성격은 소년시기에 극도의 잔인성과 아심이 드러난다. 그 시대에 권력투쟁과 가족분쟁은 모든 곳에 존재했다. 한착의 가정은 비록 아주 강력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하고 폭력적이어서, 자주 다른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킨다. 심지어 무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가족에 의해 쫓겨난다. 그는 버려진 소년이 된다.
한착은 가족을 떠난 후, 거의 사회최하층에서 배회한다. 그는 보통의 유랑인이 아니었고, 복수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갈망이 무한한 유랑자였다. 그의 내심세계는 쫓겨난 경력을 가지고 점차 복잡해진다. 매일 낮에는 힘들게 생존했고, 저녁이 되면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이는 모두 그를 강인하고 냉혹하게 만든다. 한착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그는 자신이 반드시 자신의 지혜와 수완으로 다시 권력의 최고봉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신념은 그를 끝가지 버티게 만들어준다.
한착이 유랑하는 과정에서 그는 귀족 급백리(汲百里)를 만난다. 그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꾼다. 급백리는 당시 하나라에서 명망있는 귀족이었고, 문무를 겸비한 지자(智者)였다. 급백리는 한착의 총명함과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소년은 비록 성격이 고집스럽지만, 잘 이끌기만 하면 반드시 비범한 인물로 성장할 것이라 여긴다. 그리하여 급백리는 한착을 제자로 거두어, 그에게 병법, 모략과 무술을 가르쳐준다.
급백리의 가르침을 받아, 한착은 신속히 각종 기능을 익힌다. 특히 모략과 정치분야에서 비범한 재능을 발휘한다. 그는 어떻게 병사를 배치하여 전투해야 하는지를 배웠을 뿐아니라, 어떻게 권모술수로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해야할지도 배웠다. 그러나, 한착은 급백리의 선의로 인하여 그의 내심에 있던 야심과 잔인성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 급백리의 가르침은 그저 권력을 향한 계단일 뿐이고, 급백리 자체는 그가 반드시 뛰어넘어야할 장애에 불과했다.
몇년후, 한착의 야심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는 급백리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급백리가 다른 제자들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점점 한착과 소원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착은 자신이 힘들게 공부한 권모술수를 다른 제자도 배워서 자신과 싸우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리하여 그는 암중으로 한 가지 음모를 세운다. 어느 깜깜한 밤에, 한착은 조용히 급백리의 저택으로 들어가, 급백리의 일가족을 독살한다. 이 잔혹한 결정은 한착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때부터 그는 돌이킬 수 없이 권력의 길로 걸어가게 된다.
사부를 배신한 한착은 계속 유랑한다. 내심의 고독감과 갈망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미래의 어느 순간, 기회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2. 상국에서 찬위까지: 한착의 야심
한착의 야심은 시종 같았다. 그는 하나라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는 후예(后羿)의 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의 야심은 점점 시전할 공간을 갖게 된다. 후예는 아주 용맹한 사수(射手)로 일찌감치 민간에 명망이 높았다. 그러나, 통치자로서 그의 치국재능은 확실히 부족했다. 한착은 이 점을 알아보았다. 그는 급히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았고, 조심스러운 모략으로 점차 후예의 신임을 얻어낸다.
후예는 한착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를 중용하여 조정사무를 맡겼을 뿐아니라, 심지어 한착이 겨우 16살임에도 그를 상국(相國)에 임명하여, 그에게 거의 자신과 동일한 권력을 가진 지위를 부여한다. 한착은 한편으로 표면적으로 온마음을 다하여 후예를 보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조정관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세력을 축적한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한착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권력이 커지면서 욕망을 억제할 수 없게 된다.
조정에서 한착의 세력확장속도는 놀랄 정도였다. 그는 민감하게 후예의 약점을 간파한다. 후예는 비록 용맹스럽지만, 조정대국을 장악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특히 내정을 처리할 때, 왕왕 다른 사람에게 의지했다. 한착은 이 기회를 포착하여, 국가대사를 처리하는데 점점 간여하기 시작하고, 실권을 장악한다. 후예는 사냥과 놀이에 빠져, 점점 한착에 대한 대비가 느슨해진다.
한착은 정치적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을 뿐아니라, 교묘한 수단으로 인심을 획득한다. 그가 보기에, 단순히 권모술수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는 더욱 공고한 지지체제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한착은 비밀리에 후예의 총비 순호(純狐)와 내왕한다. 순호는 겉으로는 후예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지만, 실제로는 일찌감치 후예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한착은 그 점을 알아채고, 달콤한 말로 순호의 마음을 움직이며, 두 사람은 함께 후예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상당한 기간동안의 준비를 거쳐, 한착은 마침내 손을 쓰기로 결정한다. 그는 먼저 순호의 도움을 받아, 후예의 행적과 생활습관을 파악한다. 그후 그는 음모를 꾸며, 후예가 사냥하러 외출한 틈을 타서 매복을 설치해 후예를 사살한다. 후예의 죽음은 조정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한착이 일찌감치 대부분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자의 목소리를 금방 억누를 수 있었다. 한착은 후예의 복수를 하는 정의로운 인물로 포장하고 나서서, 성공적으로 조정신하들로부터 그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부득이 나섰다고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한착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후예를 죽였을 뿐아니라, 후예의 심복들도 하나하나 제거한다. 이를 통해 나중에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은 없애버린 것이다. 이런 냉혹하고 무정한 수단은 한착의 통치지위를 공고히 해주었고, 최종적으로 '옹립'의 목소리 속에서 왕위에 등극한다.
나이 겨우 20살의 한착은 하왕조의 최고통치자가 된다. 그의 찬위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권력욕의 끝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다.
3. 한착의 통치와 확장: 철혈과 음모의 교차
한착이 등극한 후, 그의 통치방식은 신속히 그의 잔인한 성격과 맞물려 냉혹과 강경으로 치닫는다. 그는 알고 있었다. 찬탈자로서, 쉽지 않게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고압적인 수단과 정교한 책략으로 모든 잠재적인 반대세력을 눌러버려야 했다.
한착이 등극한 후, 가장 먼저 조정에서 원래의 후예일파에 대한 대숙청을 전개한다. 일찌기 후예에게 충성했던 장수와 관리는 속속 숙청당한다. 한착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후예 구신의 세력을 제거해 버린다. 그들은 축출당하거나 처형당했다. 이런 철혈수단으로 한착의 통치는 신속히 공고해진다. 또한 조정대신들은 그에게 두려움을 느기고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착은 이런 피비린내나는 숙청을 통하여, 그의 통치지위를 공고히 했고, 그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도 감히 반항할 수 없도록 만든다
한착은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야심은 더욱 컸다. 자신의 통치판도를 확장하기 위하여, 그는 대외적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하왕조는 그의 통치하에 강역을 점차 확장한다. 주변의 여러 소국을 흡수한다. 한착의 작전스타일은 속임수와 음모였다. 그는 대규모의 전쟁을 쉽게 일으키지는 않았고, 음모와 권모술수에 의존했다. 그는 이간계와 적국내부세력의 내부분열을 획책하거나 심지어 매수하고 간첩을 보내는등의 수단으로 적국의 내란을 조성샜으며, 기회가 오면 병력을 출동시켜 정복했다. 이렇게 하여 주변의 소국들은 부지불식간에 한착에게 잡혀먹히고, 전혀 대응할 수 없었다.
한착은 확장과정에서, 놀라운 모략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단순히 무력만으로는 지속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때는 극히 신축적인 일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실력이 비교적 강한 적국을 만나면, 그는 잠시 화해를 선택한다. 심지어 정략결혼방식으로 결맹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맹약은 그저 일시적인 것이고, 시기가 성숙하면, 한착은 즉시 안면을 바꾸고 돌연 기습한다.
대외확장과정에서 한착은 실력이 강대한 북방부족을 직면하게 된다. 이 부족은 강력한 기병을 가졌을 뿐아니라, 영토도 광활했으며, 자원도 풍부했다. 한착은 정면으로 대항하면 대량의 인력, 물력을 소모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 교활한 책략을 쓴다. 그는 먼저 사자를 파견하여, 해당 부락과의 혼인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동안 비밀리에 간첩을 적의 내부로 보낸다. 그리하여 부족지도자와 중요장수들간의 관계를 이간질한다. 내부분열이 점점 심화되면서, 한착은 이 부족지도자가 부하장수에게 암살당하는 기회에 돌연 습격하여, 일거에 해당 부족의 영토를 차지해버린다.
한착의 이런 확장조치는 하왕조의 판도를 신속히 늘여주었을 뿐아니라, 국내에서도 일시적으로 지지를 얻어낸다. 그러나, 이런 확장의 배후에는 민중의 고통과 병사의 피로가 있었다. 한착은 전쟁에서 승리를 자주 하긴 했지만, 국내의 경제와 사회구조는 이미 곤경에 빠져 있었다. 세금이 증가하면서, 백성의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농민의 원망은 날로 깊어진다. 그러나, 한착은 그 점을 의식하지 못한 듯하다. 혹은 보고도 못본척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여전히 확장계획과 권력게임에 빠져 있었다.
한착의 통치스타일은 정치와 군사적으로 잔혹한 것만이 아니고, 개인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잔인함은 적에 대한 무정한 타격에서도 나타나지만,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냉혹하고 무정했다. 사서기록에 따르면, 한착은 자신의 가족, 부하 및 비빈들에 대하여 적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냉혹무정했다. 일단 그의 지위를 위협하는 조짐만 나타나면 그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바로 행동을 취했고, 가까운 가족마저도 죽여버렸다. 한착의 냉혹함은 그의 주변인물을 공포 속에 살도록 만들었고, 그의 통치는 점점 더 고립되어간다.
4. 한착의 쇠락과 멸망: 말소된 제왕
한착의 통치는 비교적 강했지만, 모든 것은 결국 흥쇠가 있다. 그의 확장야심이 갈수록 팽창하면서, 국내외의 갈등도 갈수록 첨예해진다. 반대세력이 조용히 형성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한착이 내정을 소홀히 하면서 백성들에 대한 착취로 민원이 거세진다. 많은 지역에서 백성들이 무거운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점차 반란을 일으킬 생각까지 품게 된다. 한착은 내부세력을 숙청하고, 대외전쟁에서 대량의 자원과 정력을 소모하면서,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을 잠시 소홀히 한 것이다. 경제가 악화되고 민중의 원망이 쌓이면서, 그의 통치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외의 곤경속에 한착의 적도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적은 바로 태강(太康)의 후손인 소강(少康)이다. 소강의 가족은 일찌기 하나라의 정통왕족이다. 한착에게 찬탈당한 후, 가족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수년간의 인욕부중을 거쳐, 소강은 점점 역량을 축적하고, 한착에 불만을 품은 옛신하들과 옛부족세력을 결집시켜서 새로운 반란역량을 형성한다.
소강은 우수한 군사가일 뿐아니라,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그는 즉시 반격을 하지 않고, 착실한 전략을 취한다. 그는 한편으로 한착의 적대세력을 끌어들이며, 한편으로 양초와 병력을 비밀리에 모으면서, 최적의 시기를 기다린다. 이와 동시에, 한착은 비록 국내에 반란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은 눈치챘지만, 지나친 자신감으로, 소규모 반란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효과적인 대응조치는 취하지 않는다.
결국 소강은 시기가 성숙된 후, 한착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에 나선다. 소강이 정교하게 계획한 배치와 강력한 군사역량앞에서 한착은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음모수단으로 국면을 역전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강이 한착에게 그럴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소강은 한착의 교활함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 압박하는 전략을 취했고, 한착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
한착의 최후는 돌연한 전투에서 끝이 난다. 사서기록에 따르면, 한착의 군대는 소강과의 결전에서 철저히 궤멸당한다. 한착 본인도 포로로 잡힌다. 소강은 한착에게 여하한 기회도 주지 않고, 그를 붙잡은 후 바로 그를 처형하도록 명한다. 한착의 수급은 성문 위에 높이 걸리고, 천하에 그는 완전히 복멸했다는 것을 알린다.
한착의 사망은 그다지 큰 애도를 불러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통치하에 있던 신하들과 백성들도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소강은 성공적으로 하왕조의 정통을 회복하고, 다시 국가국면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한착의 일생은 역사에서 점점 말소되어 버린다. 후세에 그에 대한 기록은 얼마 남지 않게 된다. 그의 이름은 역사의 먼지 속에 매몰되어 버린다. 일찌가 찬탈하여 왕에 올랐고, 화하를 60년간 통치했던 제왕이 최종적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진 과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저 소수의 사서에서만 드물게 그의 그림자가 보일 뿐이다.
한착의 최후는 그가 여러해동안 행한 철혈통치와 냉혹무정한 정치의 필연적 결과이다. 악유악보(惡有惡報)라는 마링 있듯이 그의 일생은 휘황했으나, 결국 음모와 살륙의 순환 속에서 말로를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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