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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청)13

강청(江靑)이 남긴 20자의 유언 글: 섭영렬(葉英烈) 중국관영매체 신화사는 1991년 6월 4일 강청의 자살소식을 전달했다. 기실 강청의 자살시간은 1991년 5월 14일이다. 미국작가 로스 테릴은 3시 30분이라고 적었다. 한 간호사가 들어왔다가 그녀가 이미 욕조위에 목을 맨 것을 발견한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도 황급히 달려왔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이 배우, 정치가, 문화여황이며 모택동의 처였던 '백골정(白骨精)'은 77세의 나이로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저명한 진성감옥(秦城監獄)은 베이징 창핑현 동북의 친청향(秦城鄕)에 위치하고 있다. 감옥의 동원(東院)은 외부와 완전히 폐쇄되어 있었다. 강청이 거주한 곳은 독립주택으로 몇 개의 초소가 있었다. 그녀는 신문을 볼 수도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고, TV를 볼 수도 있었다. 그.. 2022. 1. 11.
강청(江靑)의 법정 변론에서 드러난 몇 가지 진상 글: 임휘(林輝) 강청은 중국공산당의 전최고지도자 모택동의 네번째 부인이다. 모주석이 일으킨 문혁때 중요한 지도자중 한 사람이다. 1976년 모주석이 사망한 후, 화국봉(華國鋒), 섭검영(葉劍廉)등은 정변을 일으켜, "사인방"을 체포한다. 강청은 "사인방"의 우두머리로 지목된다. 1981년, .. 2018. 1. 31.
강청의 출생연도는? 글: 복녕객(福寧客) 강청의 연령에 관하여 현재 최소한 3가지 판본이 있다. 첫째는 강청 본인이 1944년 연안에서 표를 작성할 때 써넣은 것으로 1914년이고; 둘째는 미국의 저명한 기자 스노우의 <서행만기>에 쓰여 있는 1912년이며; 근 6백만의 클릭수를 자랑하는 바이두백과에서는 강청.. 2014. 6. 23.
당납(唐納): 강청(江靑) 전남편 신분의 수수께끼. 2012년 8월 23일, 이 날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24주년이 되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의 몰락과 더불어 나라를 떠난지 여러해 되고, 거의 이름없이 지내던 당납이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이 마음대로 .. 2014. 4. 4.
강청(江靑)의 자살원인 글: 섭영렬(葉英烈) 강청은 마지막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것은 약간 의외이다. 강청이 자살한 소식은 신화사에서 발표했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신화사(1991년) 6월 4일전 본보 기자가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임표,강청반혁명집단의 주범 강청이 보외취의(保外就醫, 우리나라의 "병보.. 2013. 11. 10.
강청의 입당문제고증 글: 섭영렬(葉永烈) 여러가지 원인으로, 강청이라는 인물은 진위를 구분하기 어렵다. 필자는 <강청전>을 쓸 때 수시로 진위판별업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청이 입당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강청의 입당경위에 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모택동의 위사장인 이은교(李銀橋).. 2013. 10. 1.
강청(江靑)은 왜 자살했는가? 글: 양은록(楊銀祿) '문혁' 역사를 연구해본 사람이라면, 강청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국내외에 어떤 신문잡지는 그녀에 대하여 계속 보도를 하고 있다. '문혁'기간동안 강청은 모택동의 권위와 자신의 지위를 가지고 호풍환우하며 권력이 아주 강했고, 영향이 아주 깊었다. 이.. 2012. 9. 19.
공개재판의 강청(江靑) 발언록 1980년 11월 20일, 격리조사를 받은지 4년만에,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은 강청에 대한 공개재판을 진행했다. 12월 24일 오전 강청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변호했는데, 아래의 내용을 특별법정 정장인 강화가 기소장을 읽은 후, 강청이 스스로를 변호한 발언록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대하여, 즉 금방 말.. 2010. 12. 27.
강청(江靑)은 어디에 묻혔는가? 글: 호가항(胡佳恒) 북경의 서쪽에 있는 복전공묘(福田公墓)의 남쪽 귀퉁이에, 제대(祭臺)앞에는 청백석의 비석이 있고, 생화로 둘러쌓여 있다. 비문은 간결하다. "1914년 - 1991년, 선모이운학지묘(先母李雲鶴之墓), 여아여서외손경립(女兒女&#23167;外孫敬立). 2002년 3월." 다 타버린 합덕문(哈德門) 담배.. 2009. 12. 31.
장옥봉(張玉鳳)의 눈으로 본 강청(江靑) 글: 섭영렬(葉永烈) 1972년, 모택동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은 수간호사(護士長) 오욱군(吳旭君)을 제외하고는 바로 장옥봉이었다. 장옥봉은 원래 모택동 전용열차의 승무원이었다. 1968년, 24살된 그녀는 철도부에서 일하던 유애민(劉愛民)과 결혼하고, 얼마후, 딸을 낳는다. 홍.. 2009.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