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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67

승상(丞相)과 재상(宰相): 어떻게 다른가? 글: 두두역사미(兜兜歷史迷)​고대에 명칭이 아주 비슷한 관직이 있다. 하나는 승상(丞相)이고 다른 하나는 재상(宰相)이다.​사람들의 느낌으로 말하자면 이 두 개의 관직은 아주 유사하다. 이름이 비슷한 것뿐 아니라, 지위도 유사하고, 심지어 하는 일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승상과 재상은 하나의 직위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명칭인 것일까?​기실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재상과 승상은 한 사람이 가질 수도 있다.​중국의 상기(象棋, 우리나라의 장기)에 있는 말중에 "상(相)"이 있다. 여기의 "상(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승상과 재상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그들중 누가 권력이 더 큰가?​오래전에 승상이라는 관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관직이 아.. 2024. 11. 21.
"촉(蜀)": 중국역사상 사천(四川)이외의 지방에도 있었다. 글: 제사(諸史)​현대한어에서 "촉(蜀)"은 일반적으로 주(周)나라때의 파촉국(巴蜀國), 유비의 촉한(蜀漢)정권, 사천(四川)의 별칭으로 쓰인다. 이 셋은 모두 현재의 사천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사료에 분명히 기록된 것을 보면, 사천이외에도 대량의 "촉지(蜀地)"가 있었가. 그리고 상(商)나라때도 촉국(蜀國)이 있었다.​예를 들어, 에는 "신황벌촉(新荒伐蜀)"이 기록되어 있다: 목야(牧野)전투이후, 주무왕은 수하에게 명령하여 여전히 저항하고 있는 상왕조의 촉국을 공격하도록 한다. 거기에는 "경자벌촉(庚子伐蜀), 을사자촉지(乙巳自蜀地)"라고 쓰여 있다. '경자일'에서 '을사일'까지는 겨우 6일이다. 주무왕의 군대가 하북북부에서 사천까지 6일만에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주무왕이 공격한 '촉국'은 분명.. 2024. 10. 2.
고대전쟁에 사용된 진법(陣法)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글: 자귤(紫橘)​의 전쟁장면을 보면 정말 사람의 피가 끓는다. 극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제후간의 전쟁에서 모두 먼저 진(陣)을 펼치고 다시 돌진하는 것이다.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전군을 지휘하여 바로 공격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왜 고대의 전투에서 항상 먼저 진을 펼치고, 상대방의 화살이 하늘에서 비오듯이 쏟아지는데, 우리측 병사들은 그냥 서서 그것을 맞았을까? 이는 고대전쟁사상의 가장 재미있는 주제와 관련된다. 열진(列陣). 전투는 집단간의 싸움이다. 진법과 대형은 전쟁의 결과에 극히 중요한 작용을 했다. ​최초의 대방진(大方陣)​합리적인 제도는 반드시 당시의 생산력수준과 과학기술수준에 적합해야 한다. 전투에는 반드시 진을 펼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런 관계를 보여준다. 석기시대에 모두 나뭇잎.. 2024. 10. 1.
<청사(清史)>는 왜 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글: 운향객(云乡客)​역사는 하나의 학문으로 그 목적은 인류활동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학문의 요구사항중 하나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사실을 쓰는 것(写实)"이다. 통치계급이 자신을 미화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전통적으로 "격대수사(隔代修史)" 혹은 "역대수사(易代修史)"를 제창했다. 격대수사의 장점은 시간간격이 비교적 가깝고, 각종 참고비교할 자료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정이 감독하는 역사편찬은 마찬가지로 통치계급의 입김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절대로 단지 어느 왕조의 사서만 읽지 않고, 반드시 주변 다른 나라의 사서를 참조하여 비교한다.​​원나라의 원혜종(元惠宗) 지정3년(1343년) 삼월, 조.. 2024. 6. 3.
<이십사사(二十四史)>중 왜 뒤의 20사는 유명하지 않을까? 글: 하목역사군(夏目历史君) ​ 정사(正史)를 얘기하자면 우리는 아마도 모두 공인된 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를 묻는다면 완벽하게 답안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언급하는 것은 개략 혹은 일 것이다. ​ 이 4사는 중에서 "전사사(前四史)"라고 불린다. 모두 개인적으로 편찬한 사서이다. 이런 상황은 기이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모든 시기의 역사는 다 중요한데, 왜 이후의 사서들은 이들 전사서에 비하여 명성이 높지 못한 것일까? ​ 와 의 큰 차이점 ​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얘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 처음에 는 ""로 불렸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 , 이다. 당나라에 이르러, 는 점차 유실되고, 는 로 .. 2024. 4. 18.
<죽서기년(竹書紀年)> vs <사기(史記)> : 어느 기록이 더 믿을만할까? 글: 독서문사(讀書文史) 중국역사상 이런 기서(奇書)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고, 그리하여 봉건정통완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의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책인가? 이 책을 얘기하자면, 먼저 전설적인 사건부터 시작해야 한다. 1. 의 출토: 도굴꾼과 관련이 있다. 태강2년(281년) 하내군(河內郡) 급현(汲縣, 지금의 하남성 위휘시)에서 중국역사상 중요한 영향이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준(不準)이라는 도굴꾼이 교외지역의 한 고묘를 도굴했다. 아마도 그는 묘를 파헤친 후 새카만 묘실에서 가지고 온 횃불이 금방 다 타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묘실에는 대량의 죽간(竹簡)이 쌓여 .. 2022.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