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가원수(袍哥元帥) 하룡(賀龍)
글: 조대부화실(趙大夫話室)하룡(賀龍)을 얘기하자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십대원수(十大元帥)는 밀리터리덕에게 오랫동안 인기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밀리터리덕들 사이에서는 그가 전투에서 비교적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임총(林總, 임표), 속대장(粟大將, 속유)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밀리터리덕들은 어쨌든 여러 사람들 중에서 일부분이다. 전체 국민들 사이에서 임총과 속대장의 인기는 하노총(賀老總, 하룡)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1930년대의 북방은 홍군(紅軍)과 관련이 없었다. 절대다수의 백성들은 홍군을 몰랐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군(軍)"이 너무 많았고,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으며, 백성들은 수천리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
2025. 2. 16.
필원(畢沅): 입비광인(立碑狂人)
글: 마약학교수(魔藥學敎授)필원(1730-1797), 지금의 강소(江蘇) 태창(太倉)에서 태어났고, 청나라 건륭, 가경제때의 관리, 학자이다. 필원은 섬서순무(陝西巡撫)로 10년간 재직했는데, 문화고적들을 고찰하고, 고대제왕의 능묘를 보보하고, 비림(碑林)을 정비했다. 그는 이들 문화유적과 능침에 비문을 썼는데, 완전하지 않은 통계에 따르면, 섬서 경내에 남아 있는 필원의 비문은 65개에 달한다.필원비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중간에 큰 글자로 능묘의 연대, 묘주인의 명칭과 신분을 썼고, 양측에는 "사진사급제병부시랑섬서순무겸도찰원우도어사필원서(賜進士及第兵部侍郞陝西巡撫兼都察院右副都御史畢沅書)"와 "대청건륭세차XX(大淸乾隆歲次XX)"등 작은 글자 및 비를 세우는 장소의 지방관리의 신분과 이름을 적었다.주..
2025.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