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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영락제)15

정난지역(靖難之役)후 주체(朱棣)는 왜 5번이나 몽골정벌에 직접 나섰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정난지역이후, 주체는 성공적으로 조카인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으로부터 황제위를 빼앗는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한 일에 대하여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영락대제(永樂大帝)'로 칭송한다. 주체의 주요 공적을 나열해 보자면, 북경천도, 영락대전편수, 정화하서양, 안남수복, 오정막북(五征漠北)이 있다. 특히 5차례에 걸쳐 막북을 친정(親征)한 것은, 후세의 찬양을 받는다. 자고이래 제왕이 직접 정벌에 나서는 일도 많지 않지만, 주체는 역사상 최초로 직접 장성이북을 친정한 황제이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주원장이 원왕조를 쫓아낸 후, 몽골통치자의 잔여세력은 완전시 소멸되지 않고, 새외(塞外)로 도망쳐 '북원(北元)'을 건립한다.. 2020. 10. 31.
명성조 주체(朱棣)의 정난지역(靖難之役)때 주원장(朱元璋)의 다른 아들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글: 묘불쾌락(猫不快樂) 주원장은 중국황제사상 할 얘기거리가 아주 많은 황제이다. 그의 출신이든, 아니면 경력이든 아니면 건국후의 각종제도책략이건간에. 당연히, 이런 위인은 일반적으로 생육능력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그가 20여명의 아들을 두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 2020. 1. 17.
영락제(永樂帝)에 배향(配享)된 네 명의 공신 글: 역사상적나점사아(歷史上的那點事兒) 명나라 영락22년(1424) 명성조 주체는 북정에서 회군하는 도중에 유목천(楡木川, 지금의 내몽고 우주무친)에서 사망하고, 장릉(長陵)에 묻히며 묘호를 태종(太宗)이라 한다. 영락제 주체가 22년간 재위하는 동안, 명왕조는 경제가 번성했고, 국력이 .. 2018. 10. 16.
주체(朱棣)와 주고후(朱高煦): 닮은꼴 부자의 서로 다른 운명 글: 두문자(杜文子) 주고치(朱高熾)는 주체의 적장자(嫡長子)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 무예에는 능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주체의 마음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후계자는 아니었다. 반대로, 주체는 정난지역때 많은 공을 세우고, 여러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차남 주고후를 높이 평가하고.. 2018.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