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등소평) 16

등소평(邓小平)이 쫓아낸 15명의 "국가지도자"

글: 간중국(看中国)​'문혁'이 끝난 후, 등소평은 중공의 제2대지도자에 올랐다. 모택동의 옛측근, '자산계급자유화'에 반대하거나, '6.4'기간동안 전후로 15명의 중공 '국가지도자'를 중앙주석, 중앙군위주석, 국무원총리, 중앙총서기, 중앙부주석, 중앙정치국상위, 중앙정치국위원, 중앙서기처서기, 국무원부총리, 전인대부위원장등의 자리에서 쫓아냈다. 모두 면직, 사직, 퇴직등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화국봉(​华国锋): 중공중앙주석, 중앙군위주석, 국무원총리​화국봉은 중공 호남 상음현, 상담현위서기를 지냈고, 나중에 호남성위서기로 승진한다. 문혁때 승진을 거듭하여 전후로 중공9대중앙위원, 중공10대중앙정치국위원, 국무원부총리 겸 공안부장을 맡는다. 모택동이 죽기 전에 화국봉을 중공중앙제1부주..

임표(林彪)와 등소평(鄧小平)의 은원(恩怨)

글: 조대부(趙大夫) 임표, 등소평은 모택동의 득의문생(得意門生)으로 일찌기 모두 모택동의 후계자 반열에 올랐다. 한명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이름을 넣었던 모택동의 후계자이고, 다른 한명은 모택동의 사후 사실상의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렇다면, 등소평과 임표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미묘했다. 제1대영도집단의 핵심구성원으로서 어느 정도 유량(瑜亮, 주유와 제갈량)심리도 있었다. 그들은 일찌기 상하급관계였기도 했고, 일찌기 밀접한 협력관계이기도 했고, 또한 심각한 대립관계이기도 했다. 등소평과 임표는 일생동안 교류가 거의 없었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등소평의 딸 모모(毛毛)가 등소평을 회고하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등소평과 임표는 개인적인..

등소평 자손의 돈자랑

글: 원빈(袁斌) 최근에 등소평가족과 관련된 두 가지 소식이 있다. 하나는 덩푸팡(鄧朴方)의 후손에 관한 것이다. 해외의 여러 매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베이징의 14살짜리 소년 장스자(張師嘉)가 인터넷에 돈자랑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등푸팡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장스자의 틱톡배경사진은 등푸팡과 한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이로 보면, 여자는 장스자의 모친으로 보인다. 장스자는 2021년 옥천산(玉泉山)의 집을 공개했는데, 등푸팡의 쓴 글 "불구자다호(不求字多好), 단원심서창(但願心舒暢)"이었다. 거기에 붙여 쓴 글에는 "이것은 내가 받은 가장 의미있는 선물이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가 계속 노력하는 목표이자 방향입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네티즌이 공개한 캡쳐사진에 ..

등소평이 1954년에 쓴 모택동찬양시

주석께: 전날 깊은 밤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준의회의 이래 주석이 우리당을 이끌면서 얻은 거세무쌍의 휘황한 성취의 역사자료를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오랫동안 평정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시를 한 수 바쳐서 주석에 대한 무한한 숭배를 표시하고자 합니다: 주석이여! 당신은 나 등소평의 진정한 자애로운 부친입니다. 당신은 나를 탈태환골시켜 혁명에 투신하게 한 재생부모입니다. 당신은 세계의 모든 정의롭고 진보적인 인사의 북극성입니다. 당신은 세계의 자유민주를 갈망하는 인민의 대구성(大救星)입니다. 무량수의 복덕을 축적해야만 이런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치 대지의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같은! 주석이여! 당신의 영광과 사업은 인류역사상 일체의 통치자들을 초과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행복을 내려주..

덩샤오핑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글: 당문(唐文) 얼마전에 미국은 중국의 대외군사물자무역회사인 바오리(保利, Poly)집단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바오리집단은 중국공산당 원로인 왕전(王震), 덩샤오핑(鄧小平) 가족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구이다. 중공의 전원로 왕전과 덩샤오핑가족간의 정치 및 이익교환의 내막이 폭..

등소평 일생의 세 부인

장석원 김유영 등소평, 탁림의 결혼사진 등소평의 개인생활측면을 얘기하자면, 세번째로 연안에 돌아왔을 때가 가장 큰 수확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는 평생의 반려자인 탁림(卓琳)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은 58년간의 비바람을 함께 헤쳐나갔고, 함께 정치상의 제2차, 제3차 '추락'과..

등소평은 왜 두번이나 개명하였는가?

글: 하회굉(何懷宏) 이름을 짓는 일이나, 이름을 바꾸는 것은 모두 중대한 일이다. 특히 중국처럼 가족과 이름을 중시하는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하나의 시기에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가장 많이 사용했는지는 왕왕 당해시기 사람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문화대혁..

모택동과 등소평: 등소평 서거 10주년을 맞이하며

글: 왕울(王蔚) 내가 기억하기로 여러해 전에(아마도 지금도 있을 지도 모른다. 최근 2년동안 그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104번국도옆에 있는 산동시멘트공장의 양측에 두 줄의 거대한 표어판을 세웠다. 한줄은 "번신물망모택동(飜身不忘毛澤東, 번신에는 모택동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