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원) 44

원나라때 이슬람과의 천문학 교류와 접촉

글: 강효원(江曉原) 징기스칸이 남정북전(南征北戰)하면서,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뒤에는 중국을 차지한 원(元)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칸국이 병립하고 있었다. 원나라는 명목상 종주국이고, 각국간의 문화와 교류가 아주 활발했다. 이 시기의 중국천문학과 이슬람천문학간의 접촉에 관하여 국내외의 학자들이 모두 기술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이런 접촉이 존재한 것은 확실하지만, 적지 않은 구체적인 이슈는 아직 명확한 단서나 결론이 없다. 본문에서는 대체로 연대순서에 따라, 비교적 중요한 6가지 이슈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 시기의 중국과 이슬람천문학간의 교류와 접촉에 대하여 더욱 전면적이고 분명한 인식을 얻고자 한다. 1. 야율초재(耶律楚..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없다.

글: 살사(薩沙) 대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도대체 중국에 왔던 것일까? 1298년 9월 7일 마르코폴로는 감옥에 갇히고, 루스티첼로와 합작으로 를 쓴다. 마르코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있을까? 쿠빌라이를 만난 적이 있을까? 지금 보면,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와서 쿠빌라이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없다.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나라때의 모든 역사기록에서 마르코폴로를 찾아볼 수 없다. 몽골인들이 원나라를 건립한 후에는 더 이상 유목민족이 아니고, 계통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그가 여러번 원나라의 대칸 쿠빌라이를 배알했다고 적었다. 1275년 여름, 23살의 마르코폴로는 처음 쿠빌라이를 만났고, 동행한 사람은 그의 부친과 숙부였다. 마르코폴로의 기술에 따르면, 대칸은 젊고 ..

몽금십년전쟁(蒙金十年戰爭): 초원제국과 삼림제국의 결전

글: 문재봉(文裁縫) 1209년, 몽골제국은 건립된지 이미 3년이 지났다. 징기스칸은 정예병을 양성해서 군사력이 강성해진다. 그는 초원의 백성들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거두어 들였다. 점점 세력이 커진 징기스칸은 다음 확장목표로 금나라를 겨냥한다. 이전까지 몽골은 금나라의 속국이었다. 다만 현재 몽골은 이미 옛날의 몽골이 아니다. 징기스칸은 이제 몽골은 그 어느 나라와도 일전을 벌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징기스칸은 금나라가 이전에 목려(木驢)의 혹형으로 안바하이칸을 처형한 원한을 잊지 않았다. 이 해에 금장종(金章宗)이 붕어하고, 완안영제(完顔永濟)가 황위를 승계한다. 그는 문약한 서생이고, 징기스칸은 이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를 무시했다. 다음 해, 완안영제는 사신을 몽골로 파견해서,..

고대의 유목민족 중에서 몽골족만이 세계정복자가 된 이유는?

글: 격격미(格格米) 징기스칸 휘하의 몽골철기(蒙古鐵騎)는 '세계정복자'라는 위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는다: 만일 몽골인들이 유목민족의 마쾌궁강(馬快弓强)의 장점을 이용하여 세계를 정복하였다면, 왜 그렇게 많은 유목제국들 예를 들어, 흉노, 유연, ..

코케테무르(擴廓帖木兒): 주원장이 칭찬한 기남자(奇男子)

글: 백과두조(百科頭條) 역사상 기인은 수도 없이 많다. 이 글에서 소개할 사람은 주원장이 '기남자'라고 칭찬했던 인물이다. 그는 왕보보(王保保)이다. 만일 이 이름이 낯설다면, 이렇게 말해보겠다. 조민(趙敏)이 오빠이다. 그러면 아마도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김용의 <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