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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112

"삼가분진(三家分晋)"후 진(晋)의 국군(國君)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세월유흔(歲月有痕)​중국고대역서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진(晋)나라는 중요한 제후국이었다. 일찌기 춘추시기에 초(楚)나라와 쟁패해서 패주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진나라는 '삼가분진'이라는 역사사건을 거치면서 한(韓), 위(魏), 조(趙)의 삼가열경(三家列卿)이 나누어갖고, 진나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난다.그렇다면, "삼가분진"후 진나라의 국군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진(晋)의 휘황과 쇠락​진나라는 주(周)의 제후국중 하나이고, 최초의 국군인 당숙우(唐叔虞)는 주무왕(周武王) 희발(姬發)의 아들이고, 주성왕(周成王) 희송(姬誦)의 동생으로, "희성진씨(姬姓晋氏)"이다. 춘추시기 진은 초와 천하를 두고 쟁패했고, 당시 역사의 메인스트림이 된다.​.. 2024. 12. 19.
주무왕(周武王)은 왜 한창 나이에 돌연 사망했을까? 글: 비정상역사연구실(非正常歷史硏究室)​상(商)을 멸망시킨지 세번째 되는 해(기원전1043년)에 주왕조의 개국군주 주무왕이 다시 병으로 쓰러진다. 이건 그가 처음 병으로 쓰러진 것도 아니다. 상을 멸망시킨 다음 해에 주무왕은 병에 들었고, 한때 조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병세는 심각했고, 결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사서에는 주무왕의 생졸년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는 주무왕의 진실한 나이를 알 수가 없다. 비록 전설에 따르면 주무왕이 93세까지 살았다고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다.​주무왕이 93세까지 살았을 것같지는 않고, 태자 희송(姬誦)의 나이가 어렸던 것을 감안하면, 주무왕이 사망했을때, 분명 한창 나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사인은 우울증이었을 것이다.​한창 나이의 개국군주.. 2024. 12. 11.
"전씨대제(田氏代齊)": 300년의 시간을 들여 한 나라를 빼앗은 정치가족... 글: 온백령(溫伯陵)​1​춘추전국시대에 중국에는 아주 특이한 정치가족이 출현했다.​그들은 조상이 황음하여 제나라로 망명했고, 제나라의 건국에는 거의 공을 세우지 못했지만, 약간의 공을 쌓은 후, 제나라의 정치적갈등을 이용하여, 계속하여 고위층에서 정면을 일으키고, 하층에서는 인심을 매수하여, 결국 몇대에 걸쳐 제나라를 빈털털이로 만들고, 구점작소(鳩占鵲巢)를 실현한다. 그들은 춘추버전의 사마의(司馬懿)라고 할 수 있다.​이 가족이 바로 제나라의 전씨(田氏)이다. 그들이 한 일은 바로 "전씨대제(田氏代齊)"이다.​전씨는 진(陳)나라에서 나왔으니, 진나라부터 얘기하기로 하자.​상고시대 요(堯)임금이 나이가 들어 선양원칙에 따라 순(舜)임금에게 제위를 넘긴다. 순임금은 수십년간 천자로 있다가 다시 우(禹)임금.. 2024. 12. 9.
삼성퇴문명(三星堆文明): 너무나 신비한...... 글: 노장건강론(老張健康論)​서론​과거 20년간 중국의 고고발굴팀은 삼성퇴문화유적지에 대한 장기간의 개발을 진행했다.그러나, 현재 보면, 개발의 추진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같다.이는 주로 삼성퇴유적지를 발굴했을 때, 너무나 전문가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명확히 해석하기가 어렵다.어떤 사람은 중국사학계에서 삼성퇴문명에 대해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궤이한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심지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삼성퇴문명과 중원문명간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삼성퇴문명의 신비한 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삼성퇴문명은 아주 특이하다.역사학자에 있어서, 삼성퇴문명에 대하여 도대체 어.. 2024. 11. 18.
비참했던 동주"(東周)": 삼주병존(三周幷存)에서 이주분치(二周分治)까지... 글: 조작적초광인(造作的楚狂人)​기원전770년, 주유왕(周幽王)이 신국(申國)과 견융(犬戎)의 협공하에, 여산(驪山)에서 사망한다. 제후들은 태자 의구(宜臼)를 주평왕(周平王)으로 세우고, 낙읍(洛邑)으로 천도한다. 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평왕지시(平王之時), 주실쇠미(周室衰微), 제후강병약(諸侯强幷弱), 제(齊), 초(楚), 진(秦), 진시대(晋始大), 정유방백(政由方伯)"주평왕때, 주의 왕실이 쇠약해진다. 제후들은 강국이 약국을 병합하고, 제, 초, 진, 진의 세력이 커지고, 정치권력은 이들이 차지한다.​이 때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동주(東周)"시대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주(周)"는 오직 하나이다. 동, 서의 구분은 없었다. 동주(東周), 서주(西周)는 단지 .. 2024. 11. 17.
대우전위(大禹傳位): 익(益)과 계(啓)의 왕위계승다툼 작자: 미상​대우(大禹)의 왕위승계에 대하여 기록에 따르면, 대우의 아들인 사계(姒啓)의 승계는 선양제(禪讓制)를 타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 과연 어떤 권력투쟁이 있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대우가 사계에게 왕위를 승계시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당시 대우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죽어버린 고요(皋陶)외에 치수에 공이 있는 익(益)이 있었다. 사계와 익의 관계에 관하여는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익계읍양(益啓揖讓)"설.​ , 등 문헌이 대표적이다. 대우는 영명한 지도자라고 주장하면서, 계와 익은 모두 대현(大賢)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선양제가 폐지된 것은 대세의 흐름이고 사람이 이를 되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선양이 요순(堯舜)때는 합리적.. 202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