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73

양각애(羊角哀)와 좌백도(左伯桃): 결의형제(結義兄弟)이야기의 원조

글: 자귤(紫橘)​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를 배울지언정, 와강일주향(瓦崗一炷香)은 배우지 말라. 유비, 관우, 장비가 결의형제를 맺은 후,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는 형제가 된다. 그들이 결의를 맺은 이야기는 후대에까지 칭송받고 있다. 이후 형제결배(結拜)이건 아니면 흑방결배이건 모두 도원결의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유관장의 도원결의 이야기는 명(明)나라때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명나라이전에 형제간의 결의를 맺을 때는 양각애와 좌백도를 따랐다. 이 두 사람 간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별로 유명하지 않은 형제정의​양각애, 좌백도의 이야기는 정사(正史)에 실려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이야기의 출처는 서한시대 유향(劉向)의 이다. 아쉽게도 원문은 송나라때 이미 유실되었고, 오늘날 볼..

상탕(商湯)은 기우제를 지낼 때 왜 분신해야 했을까?

글: 마라(摩羅)​고대의 중국에서 백성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 비를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무사(巫師)의 주요직책중 하나였다. 만일 그가 오랫동안 기우제를 지내도 효과가 없으면, 그는 반드시 직접 하늘로 올라가서 하느님과 교섭해야 했다. 즉, 그는 스스로를 기우제의식의 제물로 바쳐,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 제사지내는 것이다. 하상주(夏商周) 삼대 및 그 이전부터 춘추시대까지, 모두 조정 혹은 부락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무사(혹은 국왕)은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하늘로 올라갔다. 춘추이후에는 점점 제물로 바치는 자를 지위가 비교적 낮은 무사 혹은 장애인으로 바꾸게 된다.​상탕(商湯)의 집권초기, 중원지구에는 5년간 연속하여 큰 가뭄이 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상탕이 하(夏)족을 무너뜨리고 천하에 사람을..

이윤(伊尹)의 수수께끼: 상왕태갑(商王太甲)을 쫓아낸 후 스스로 다시 권력을 돌려주었을까?

글: 자귤(紫橘)​고대 권신(權臣)의 찬위탈권(纂位奪權)을 얘기하면 모두 상(商)나라때의 이윤(伊尹), 한(漢)나라때의 곽광(霍光)을 떠올린다.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것은 군왕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윤, 곽광은 군왕의 권력을 침탈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만, 곽광의 사적은 비교적 구체적이나, 이윤의 사적은 비교적 모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윤이 현신(賢臣)이라 여기고, 탕(湯)을 보좌하여 천하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윤은 권신이다. 직접 상왕태갑을 쫓아냈다. 이런 권신의 최후가 좋을 수 있을까?​1 이씨부락(伊氏部落)​오늘 얘기할 상나라때의 저명한 대신 이윤은 사마천이 에서 "이윤의 이름은 아형(阿衡)이다"라고 하였다. 에서는 "이름이 지(摯)이다"라고 하였다. 한나라때의..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군왕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신하가 임신한 소첩을 바치다.

글: 역사대미감(歷史大微鑒)​옛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후사를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不孝有三, 無後爲大)" 이를 보면, 옛사람들은 가족혈맥의 전승을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백성도 마찬가지이니, 왕실은 더욱 신경썼다. 황제가 만일 생육능력이 없다면, 이는 단순히 효 불효의 문제가 아니라, 황위를 노리는 자들이 기회를 노릴 수 있어, 통치지위에 위기가 미치고, 국가가 동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전종접대(傳宗接代)'는 황제의 가장 중요한 직책중 하나가 된다.​역사상 후사를 두지 못한 군주는 많다. 한소제 유불릉, 한애제 유흔, 명무종 주후조, 광서제 재첨, 선통제 부의가 모두 일국지군으로 후사를 두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춘추전국시기에 한 초나라..

구야자(欧冶子)의 검제작과 관련한 어두운 생각......

글: 산학(散鹤) ​ 구야자는 춘추시대 월(越)나라사람으로, 검을 주조하는데 뛰어나서, 후세인들은 그를 "검조( 剑祖)"로 칭한다. 월왕 구천(勾践)은 그에게 5자루의 검을 만들어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 검들의 명칭은 각각 담로(​湛庐), 순균(纯钧), 승사(胜邪), 어장(鱼肠), 거궐(巨阙)인데, 모두 쇠를 벨 수 있는 희세의 보검이었다. ​ 그러나, 그의 뛰어난 기술은 후세에 전승되지 못했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구야자 주검(铸剑)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 ​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병기대가 구야자는 나이가 들어서 곤륜현철(昆仑玄铁)을 한덩어리 얻는다. 원래 이미 노년에 접어든 그는 이런 특수한 재료를 사용하여 인생최후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임종때까지 ..

"봉화희제후(烽火戱諸侯)"의 역사진상

글: 양광요(楊光耀) "봉화희제후"라는 고사는 2천여년간 전해져 내려왔다.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과 이다. 나중에 명나라때의 소설가 풍몽룡(馮夢龍)이 쓴 에서 이를 윤색하여 소설에 넣는다. 그리하여 이 고사는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고, 후인들이 주유왕(周幽王)의 호색혼용(好色昏庸)을 비웃는 근거가 된다. 의 기재에 따르면, 포사(褒姒)는 아름다움으로 주유왕의 총애를 얻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포사는 아름답지만 웃지를 않았다. 주유왕은 미인의 웃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것이 '제후들을 놀리는' 것이었다. 그는 포사를 데리고 봉화대에 올라가서 봉화를 피워 제후들에게 병사를 이끌고 와서 왕을 보호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제후들은 봉화가 오른 것을 보자 천자가 위..

당금의 국제정세와 춘추전국시대

글: 이중천(易中天)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당금의 국제정세와 춘추전국시대간에 어떤 상이점이 있습니까. 서로 비교할만합니까? 나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비교할 수 없다. 왜 그런가? 먼저 두 가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춘추와 전국은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시대이다 당금의 국제사회는 춘추전국시대와 다르다. 춘추와 전국 춘추전국시대에 국제사회가 있었는가? 있었다. 주, 제, 진, 초는 모두 나라이다. 외교라는 말도 있었다.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나, 춘추와 전국은 나라의 성격이 달랐다. 춘추시대의 나라는 반독립주권을 가졌을 뿐이고,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주나라천자의 분봉국이었다. 혹은 주나라연맹의 구성국이었다. 전국칠웅은 그러나 완전한 주권국가들이었다. 그러므로, 춘추와 전국은 시대가 다르다. 춘추는 '..

상주왕(商紂王): 3천년만에 억울하게 덧씌워진 오명을 벗다.

글: 대랑도사(大浪淘沙) 주왕(紂王)은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제신(帝辛)이다. 그는 지금까지 혼군(昏君), 폭군(暴君)의 대명사였다. 달기(妲己)를 총애하고, 충신을 해치고, 주지육림(酒池肉林), 포락혹형(炮烙酷刑)을 쓰고, 처와 자식을 해치고 배를 갈라서 태아를 꺼내는 등...그가 저질렀다는 이런 것들은 모두 오랫동안 사람들이 제왕으로서의 반면교사로 거론하는 사례였다. 특히 라는 영향력이 아주 큰 통속소설로 인하여 주왕의 이런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진실한 역사는 어떠했을까? 그럼 최초의 역사문헌을 살펴보기로 하자. 무왕벌주(武王伐紂). 즉 주무왕이 주왕을 토벌할 때, 주왕을 공격하는 두 편의 격문이 있다. 와 . 여기에서 주왕에게 붙여진 죄상은 이러하다: 후주(酗..

미월(羋月)이 중국최초의 여황(女皇)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글: 산화해진인(山和海眞人) 진경원(陳景元)은 미월이 중국 최초의 여황이라고 주장했다. 진선생이 무지한건지 아니면 사람을 속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고대에 황(皇)과 왕(王)은 등급이 다르다.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황(皇)은 천자(天子)라 칭할 수 있지만, 왕(王)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진나라말기 중국을 통일할 때, 진(秦)의 국왕은 단지 왕(王)을 칭했을 뿐이다. 그때 황제라는 칭호도 없었다. 진나라는 주(周)나라의 아래에 있는 여러 제후국중 하나였다. 비록 주왕조는 이미 명존실망(名存實亡)했지만, 각 제후국들 사이에 아직 강히 황제(천자)를 칭하는 국가는 없었다. 주왕조의 천자도 왕(王)이라 칭했다. 그는 여러 제후왕들을 봉한다. 그리고 등급도 다르..

진(秦)나라가 육국(六國)을 멸한 후, 육국의 군주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원시인(原始人) 순망치한의 상황이 많은 경우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일이라고 여겨서 다른 사람이 우리 주변의 사람을 괴롭힐 때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도발할 때, 그것이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여기지만, 결국은 자신도 주변사람과 똑같이 당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역사상 이런 경험과 교훈은 많다. 진나라가 육국을 멸망시킬 때가 바로 전형적인 경우이다. 처음에 일부 국가는 모두 진나라가 주변의 약소국을 멸망시켜도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어버린다. 그렇다면, 진나라는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육국을 멸망시켰고, 그 군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한(韓) 진나라는 육국을 통일하겠다는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