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환공(齊桓公): 살아서는 웅패천하(雄覇天下), 죽어서는 무인수시(無人收屍)
글: 중국국가역사(中國國家歷史)1주(周)가 상(商)을 멸한 후, 주무왕(周武王)은 강태공 강상(姜尙)을 영구(營丘)에 봉하니, 제(齊)나라이다.강태공이 죽은 후, 14대를 내려오니 제양공(齊襄公)이다.제양공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당형(堂兄)인 공손무지(公孫无知)와 왕위쟁탈전을 벌인다. 즉위후에는 보복조치로 공손무지의 봉록(俸祿)과 거마(車馬)의 등급을 낮추어버리고, 꼼짝 못하게 만든다.제양공4년, 노환공(魯桓公)이 부인을 데리고 제나라를 방문한다. 노부인은 제양공의 누나이고, 일찌기 시집가기 전에 제양공과 사통한 바 있다.모국에 돌아오니, 두 사람간의 옛날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노환공이 발견하고, 크게 화를 내며 노부인을 욕한다.노부인은 울면서 동생 제양공에게 호소한..
2025. 1. 17.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군왕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신하가 임신한 소첩을 바치다.
글: 역사대미감(歷史大微鑒)옛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후사를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不孝有三, 無後爲大)" 이를 보면, 옛사람들은 가족혈맥의 전승을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백성도 마찬가지이니, 왕실은 더욱 신경썼다. 황제가 만일 생육능력이 없다면, 이는 단순히 효 불효의 문제가 아니라, 황위를 노리는 자들이 기회를 노릴 수 있어, 통치지위에 위기가 미치고, 국가가 동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전종접대(傳宗接代)'는 황제의 가장 중요한 직책중 하나가 된다.역사상 후사를 두지 못한 군주는 많다. 한소제 유불릉, 한애제 유흔, 명무종 주후조, 광서제 재첨, 선통제 부의가 모두 일국지군으로 후사를 두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춘추전국시기에 한 초나라..
2024.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