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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나선(死亡螺旋, Death Spiral)"의 중국경제곤경... 글: 진홍달(陳鴻達) 대만금융연구훈련원 금융안정센터 주임2025년 7월 4일​세계공장으로서, 중국은 오랫동안 값싼 상품을 전세계 각지로 수출했다. 다만 현재 두 가지 원인으로 사람들은 중국의 디플레이션이라는 경제병이 다른 나라로 퍼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먼저, 중국의 많은 상품의 생산량은 전세계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다. 다음으로, 중국의 국내수요가 하락하면, 중국기업은 덤핑가격으로 해외시장을 쟁취하고자 할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각국의 소비자들은 물가가 싸짐에 따라 이익을 얻게 되겠지만, 이어서 현지산업이 차례로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그것은 악몽의 시작이 될 것이다.​중국수출흑자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배후​2018년 관세전이래,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최대수입국이 아니게 되었지만, 중국은 .. 2025. 7. 5.
지리학의 시각으로 본 "곤륜석각"에 대한 의문점 글: 왕내앙(王乃昻) 난주대학 자원환경학원 교수2025년 7월 4일 ​(이하 이라 함)라는 논문에서 이 석각의 내용과 그 지리적 위치는 중국인들이 오랫동안 논쟁해온 "곤륜", "하원"의 정확한 위치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 석각의 "진위확인"에 대하여 격렬한 논쟁이 오가고 있어, 학술상의 큰 이슈가 되고 있어, 본문에서는 지리학의 시각에서 개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역사지리의 시각에서 본 "하원(河源)"과 "곤륜(昆侖)"​고대에 "하원"과 "곤륜"에 대한 지리적 인식은 역사지리의 범주에 속한다. 그 해독은 자연히 선진(先秦)의 지리저작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전국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에는 "도하적석(導河積石)"이라는 기록이 있다. "적석(積石)"에 관하여, 일설에 따르면, 지금의 감숙성과 청해성의 .. 2025. 7. 4.
"곤륜석각(昆侖石刻)"의 진위에 관하여... 글: 단단결(段丹潔) 중국사회과학보 기자(2025년 7월 2일)​최근 들어,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원 동도(仝濤)는 는 글에서, 처음으로 이 황하원석각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남긴 유일하게 원래의 장소에 남아 있던 각석(刻石)이며, 동시에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역사학,고고학, 고문자학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주목했고, 열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7월 1일, 동도는 본보의 인터뷰에 응해, 학계에서 주목하는 석각의 발견과정, 내용해석 및 자연지리환경의 특수성등의 문제에 대해 대답했다.석각위치석각의 발견: 우연중의 필연​기자: 이번 진시황이 보낸 사람의 "채약곤륜"석각의 발견과정을 소개해주십시오​동도: 이번 석각의 발견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 2025. 7. 3.
양번지전(襄樊之戰)이후 관우(關羽)의 3가지 치명적인 실수... 글: 범인간사(凡人侃史)​양번지전이후, 관우는 3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이로 인하여 결국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관우는 도대체 어떤 3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을까?​219년, 관우는 군대를 이끌고 양번(襄樊)을 북벌한다. 처음에 전투는 매우 순조로웠고, 관우의 수만정예병사는 조인(曹仁)을 공격하여 성안에 웅크리고 방어만 하도록 만들었다. 다만 우금(于禁)과 서황(徐晃)이 차례로 전투에 가담하면서, 관우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특히 우금의 3만병졸이 항복해온 이후에 관우는 손권(孫權)이 상관(湘關)에 쌓아둔 양초를 빼앗기도 해서, 손권의 분노를 산다.​사료 의 기록에 따르면, "관우는 우금등 인마 수만을 얻은 후, 양식이 떨어져, 손권이 상관에 쌓아둔 쌀을 취했다; 손권은 그 말.. 2025. 7. 2.
정격안(梃擊案): 암살음모인가? 자작극인가? 글: 사마이(駟馬已)​오늘은 명나라말기 삼대사건을 파헤쳐보기로 하자. 명사(明史)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명나라말기의 정치환경은 파휼운궤(波譎雲詭), 착종복잡(錯綜復雜)했다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만력제는 조회에 나오지 않고, 황태자는 돈후하며 연약했고, 정귀비는 기세등등했으며, 대신들을 당쟁을 벌였다. 황제, 귀비, 동림당(東林黨), 제당(齊黨), 절당(浙黨), 초당(楚黨)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어서 만력제 말기에 이르러, 황위승계는 정치세력의 재편을 가져오게 되므로, 각방세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욱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된다. 이어서 역사상 유명한 명말 3대사건이 벌어진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정격안을 파헤쳐보기로 한다.​먼저 보아야 할 점은 이 이야기가 발생한 시점이다. 명나라 만력43년(161.. 2025. 7. 2.
왕지채(王之寀): 정격안(梃擊案)을 파고들어 끝까지 진상을 밝히려 했던 관리....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왕지채는 명나라 만력연간의 형부주사(刑部主事)였다. 사방팔방에 권력귀족이 가득한 경성에서 그는 보잘 것없는 인물이었다.천하를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으로 왕지채는 정치폭풍의 중심으로 말려들어갔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그보다 더더욱 보잘 것없는 소인물에게서 비롯되었다.​만력43년(1615년), 장차(張差)라는 하북사나이가 손애 대추나무로 만든 곤봉을 들고 황궁으로 쳐들어갔다.전국에서 경비가 가장 삼엄한 곳을 장차는 무인지경으로 쳐들어가 황태자 주상락(朱常洛)이 거주하는 자경궁(慈慶宮)으로 가서 궁문 앞에 있던 내시(內侍)를 때려서 부상입힌다. 내전까지는 단지 한걸음 떨어진 곳이었다.동화문의 수위지휘는 신속히 사람을 보내 범인을 체포하여, 그가 황태자까지 건드릴 수는 없었다.. 2025.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