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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1411

사서(史書)가 숨긴 사실: "조조는 원소의 개였다!" 글: 유삼해(劉三解)​"조조(曹操)가 굴기할 때, 손조롭게 일들이 진행된다. 기실 이건 모두 그가 원소(袁紹)의 부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사서(史書)의 행간에서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많은 일들은 해석이 되지 않고, 심지어 사람을 오도하게 된다. 조위(曹魏)의 사관(史官)이 숨긴 점들을 찾아내보면, 확연히 깨닫는 점이 있게 될 것이다."​는 조조의 본전(本傳)이다. 그러나 조조의 초기 경력에 대한 기재는 극히 간략하다.​초평원년(190년), 조조는 형양(滎陽)의 변수(汴水)에서 서영(徐榮)에게 격패당한 후, 양주(揚州)로 가서 병력을 모집한다. 그후 병사들의 반란을 당하고, 하내(河內)로 들어가 주둔하는데 구체적인 시간을 기록해놓지 않았다. 그후에 그는 유우(劉虞)가 칭제(稱帝)하는 것을 거절하고, .. 2025. 6. 6.
건륭제(乾隆帝) 생모의 역사문제 글: 최애역사(最愛歷史)​건륭42년(1777년), 86세의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가 사망했다.​건륭제의 생모로서, 그녀의 일생은 부귀영화를 모두 누렸다고 말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옹정제(雍正帝)의 시첩(侍妾)이었으나, 나중에 모빙자귀(母凴子貴)로 자녕궁(慈寧宮)을 차지하여 황태후로 42년간 지냈다. 건륭제는 즉위한 날로부터 천하에 생모에 효를 다하겠다고 맹세했고, 매번 강남(江南), 오대산(五臺山)으로 순행(巡行)을 가거나, 혹은 요동으로 조상의 제사를 지내러 가거나, 목란추선(木蘭秋獮)에 나설 때도 항상 황태후를 모시고 함께 갔다. 이는 숭경황태후를 중국역사상 출순횟수가 가장 많은 황태후로 만들었다.​모친이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들은 후, 당시 나이 67세의 건륭제는 비통해 마지 않았다. 사서의 기록.. 2025. 6. 6.
만주국(滿洲國) 멸망전 마지막 1주일... 글: 근대사표차(近代史飆車)​부의가 황궁을 떠나기 전의 준비​1945년 8월 9일 오전, 마지막황제 부의(溥儀)는 신경(新京, 지금의 長春)의 황궁 동덕전(同德殿)에서 소련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그를 "알현"하며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관동군사령관(關東軍司令官) 야마다 오토조(山田乙三) 대장, 참모장 하타 히토사부로(秦彦三郞) 중장과 "황제어용괘(皇帝御用掛)" 요시오카 야스나오(吉岡安直) 중장이었다. 3명은 직접 부의에게 북만주를 지켜낼 수 없다고 알리고, 그에게 즉시 통화(通化) 임강(臨江)에 있는 대율자구(大栗子溝)로 가서 산속에서 계속 만주국을 "통치"해야한다고 말한다. 신경의 궁전, 관아는 모두 불태워버릴 예정이었다.​이때의 부의는 이미 나이가 불혹(40)에 이르렀고, 경험도 많았으며,.. 2025. 5. 28.
시진핑은 "인사권(人事權)"을 상실했는가? 글: 두정(杜政)​중국지도자 시진핑은 취임이후 지금까지 스트롱맹(Strong Man)의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권력이 축소되고, 실권을 점차 상실해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실로 적지 않다.​일찌기 체제내의 일원으로서 필자는 시진핑의 시정이 국제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별론으로 하고, 또한 경제가 하락하고 사회민생이 나빠진 영향도 별론으로 하고, 단순히 당내의 인사권을 놓고 보더라도, 시진핑은 약점을 드러냈고, 아마도 치명적인 실패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여기에서 중공20대이래, 시진핑의 권력국면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시자쥔(習家軍)의 대붕괴​시진핑은 중공20대이전에 반부패를 명목으로 장쩌민파(江澤民派)와 공청단파(共靑團派).. 2025. 5. 26.
유비(劉備)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글: 중경만보(重慶晩報)​사천(四川) 팽산(彭山)이 유비묘(劉備墓)가 현지의 연화촌(蓮花村)에 있다고 주장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그럼, 유비묘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성도설(成都說), 봉절설(奉節說)과 팽산설(彭山說)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봉절유비묘의 10가지 증거​봉절에서 성도까지는 과거에 걸어갈 때 1달 6일이 걸렸다. 유비는 사월 이십사일에 사망하였는데, 봉절에서 성도까지 데려가려면 방부처리를 해야 한다. 오월에 관을 성도까지 옮기려면 산길을 통해서 가야하는데,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봉절에 감부인묘(甘夫人墓)가 있다. 이는 유비묘가 봉절에 있다는 증거이다. 제갈량의 상소문에 따르면, "소열황후(유비의 감부인을 가리킴)는 대행황제(大行皇帝, 사망한 전임황제라는 의미임)와 합장하는 것이 마땅하.. 2025. 5. 23.
육군경시: 시진핑이 군권을 상실한 중요원인 글: 진가량자(陳家梁子)​시진핑은 이미 군대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했다. 이는 국내외 관찰가들의 비교적 일치된 판단이다. 주요표지는 그의 중앙군사위원회의 두 심복이 낙마한 것이다. 한명은 군사위위원 먀오화(苗華)로 이미 공식적으로 조사받고 있다고 공표되었고, 전인대 대표자격도 박탈당했다. 다른 한명은 군사위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으로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역시 조사받고 있을 것인데,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외에 약간의 고위장군들도 조사받고 있는데, 대부분 먀오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시진핑이 군권을 상실하게 된 주요한 원인은 그의 국내외정책이 인심을 얻지 못하였다는데 있다. 그는 대내적으로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민영경제를 탄압하고, 반부패를 통해.. 2025.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