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1393

누르하치의 아들 16명의 서로 다른 삶...

글: 한래독사서(閑來讀史書)​누르하치는 후금정권의 건립자이고, 청왕조의 창업자이다. 그는 일생동안 16명의 아들을 두었다(기록상). 황팔자 홍타이시(皇太極)가 황제에 오른 외에 3명은 철모자왕(鐵帽子王)이 되었고, 4명은 선종(善終)하지 못했다.​황장자(皇長子) 추잉(褚英, 1580-1615)​원비(元妃) 퉁자씨(佟佳氏) 소생이며, 19살때, "홍바투루(洪巴圖魯)"의 칭호를 얻고, 패륵(貝勒)에 봉해진다. 나중에 다시 "아르하투투먼(阿爾哈圖土門)"에 봉해지고, 명을 받아 국정을 관장한다.​그는 일찌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즉위후, 나와 사이가 나쁜 동생들과 대신들을 주살해버리겠다." 그리하여 형제와 "개국오대신(開國五大臣)"으로부터 원한을 산다.​1613년 향을 사르고 대신과 형제를 저주했다고 ..

당현종(唐玄宗)의 말년은 얼마나 비참했는가?

글: 연곽(煙郭)​757년, 안록산(安祿山)은 대당제국의 장안을 점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안경서(安慶緖)에게 피살당한다; 반군내에 내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당숙종(唐肅宗) 이형(李亨)은 병력을 모아 일거에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다.​이는 이형에 있어서 당연히 아주 큰 기쁜 일이다. 양경을 수복하였으므로 대당중흥의 혁혁한 공로는 '임의로' 칭제한 황제인 그에게 무상의 위망을 수립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외병변(馬嵬兵變)이후 이형이 이융기를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무(靈武)에서 황제에 오른 것이다. 당현종 이융기는 '퇴위당하여' 태상황이 된다.​비록 사후 이융기가 이형이 '임의로 칭제한' 위법행위를 따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이형의 황제승계의 합법성을 인정해주었지만, 이..

원세개(袁世凱) 칭제(稱帝) 막후의 몇몇 추동자들...

글: 소전유(蘇全有)​1915년 12월 12일, 원세개는 소위 민중권진서(民衆勸進書)를 받아들여, 등극을 선포한다. 역사에서 홍헌황제(洪憲皇帝)라고 불리게 된다. 1916년 3월 22일, 원세개는 어쩔 수 없이 하야한다. 이렇게 83일간의 황제생활은 끝이 난다. 그리고 6월 6일 요독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원세개는 모략이 비범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왜 그가 천하의 금기를 어기고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황제에 올랐을까? 여기에는 원세개 본인의 원인외에 나머지 몇 사람이 막후에서 부추긴 것도 있었다. 그 요소를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원세개는 임종전에 힘들여 네 글자를 내뱉는다: "그가 나를 해쳤다(他害了我)". 그렇다면 여기의 "그(他)"는 도대체 누구일까?​원씨가족들은 원세개가 죽기 전에 말한 "그가 ..

원세개(袁世凱)의 장례식: 국장으로 서태후에 못지 않았다.

글: 성도일보(星島日報)​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봉건황제제도를 무너뜨린 후, 원세개는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 제2대 임시대총통을 지냈다. 그는 북양정부의 최고지도자였으며, 북양군의 창시자겸 영도자였다. ​그의 장례식은 호화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규모도 엄청났고, 그 규격은 청나라황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1915년말, 원세게는 황제에 오르고, 연호를 홍헌(洪憲)이라 한다. 그러나, 사회각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저항한다. 특히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계요(唐繼堯), 채악(蔡鍔), 이열균(李烈鈞)등 실력자들이 호국군(護國軍)을 조직하여 무력으로 원세개를 토벌하고자 한다. 금방 원세개의 황제꿈은 "토원(討袁)"의 소리에 사라지게 된다. 그때 그의 사람들은 거의 떠나갔으며,..

임표의 마지막 7일...

글: 서염(徐焰)(서염이 쓴 , 중앙문헌출판사에서 발췌)​북대하(北戴河)의 서쪽 바닷가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 연봉산(聯峰山) 연화석(蓮花石) 옆에, 청회색의 공(工)자형 2층건물이 한동 숨겨져 있다. 이곳은 북대하 중직관리처(中直管理處)의 별장건물들 중에서 96호이어서, 96호루라고도 불렀다(모택동이 거주하는 별장은 95호이다).​1971년 9월 12일 깊은 밤, 임표(林彪), 섭군(葉群), 임입과(林立果), 유패풍(劉沛豊)은 이곳에서, 황급히 산해관공항으로 가는 자동차에 올라탔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 청회색의 공자형 2층건물은 이로 인해 임표의 생애에서 마지막을 보낸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1969년 북대하 96호루를 건축할 때, 임표는 떠오르는 해와 같았다. 그는 햇빛을 겁내고, 바람을..

임표도주사건 관련자 퉁옥춘(佟玉春)의 진술

퉁옥춘(佟玉春) 구술, 서운(舒雲) 정리​1​1971년 9월 12일 18.30분, 산해관공항(山海關機場)의 운항당직 이만향(李萬香)이 보고했다: 북경에서 전용기 1대가 오고 있다. 나는 비행장의 참모장이고, 전용기의 안전보장을 책임지고 있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지휘했다. 그러나 전용기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20시 10분이 되어서야 전용기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20시 15분, 트라이던트 전용기 1대가 산해관공항에 착륙했다. 나는 전용기로 나아가 영접했다. 이건 관례이다. 수장(首長)이 비행기에 타거나 내릴 때는 공항총책임자가 송영을 해야 했다. 나는 임표(林彪)의 아들 임입과(林立果)가 전용기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뒤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이 따라나왔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공군사령부..

홍수전(洪秀全)의 기독교로 보는 "중국특색"

글: 제과(齊戈)​소위 "중국특색"은 최근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중국특색의 시장경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중국특색의 사법제도등등. 여기에는 한가지 기본적인 규율이 있다: 무릇 무엇이라고 말하기 불명확하고, 폐단이 연이어 발생하여 계속 비난받고, 온 천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도나 주의에 대하여 '중국특색'이라는 네 글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게 되고, 잘 모르게 되다보면 결국 흐지부지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를 보자. 모택동이 행한 것은 기실 스탈린주의이다. 심지어 스탈린보다 더욱 극단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공산당20대이후, 스탈린의 폭정은 전세계에 폭로되었고, 악명을 떨치게 되고, 불명예스러운 것이 되어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

장태염(章太炎): 민국시기의 정치광인

글: 장명(張鳴)​장태염(章太炎)은 지금 국학대사(國學大師)로 유명하지만, 청말민초때 그는 혁명가, 정치가로 유명했다. 단지 그의 정치가로서의 인생은 옛날의 책무더기에서 억지로 기어나온 것이다보니, 제대로 할 때는 그럴 듯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엉망진창이었다. 그의 제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은 학자인데, 학문을 얘기할 때는 졸다가도 정치를 얘기하면 바로 기운이 살아난다. 단지 그렇게 기운이 살아날 때 너무나 자기마음대로였기 때문에 어떤 때는 동지들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고, 또 어떤 때는 상대방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든다.​장태염은 동맹회(同盟會)의 초기 핵심인원이었다. 도쿄에서 민보(民報)를 간행할 때 그가 크게 싸웠다. 만일 마구잡이로 욕해대는 글재주를 지닌 그가 없었더라면,..

서태후(西太后) 인생의 마지막 하루

글: 사설신어(史說新語)​서태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그녀를 그다지 좋게 보고 있지 않다.​그녀를 얘기하면 모두가 떠올리게 되는 건 폐관쇄국(閉關鎖國), 각종 굴욕적인 불평등조약, 서방열강에 대해 부득이 무릎꿇는 것, 그리고 수렴청정(垂簾聽政)등등 별로 좋지 않은 단어들이다.​서태후는 17살에 후궁으로 입궁하여, 평생동언 정변도 일으키고, 3차례 수렴청정하면서 48년간 청나라정권을 좌지우지해왔다.​당시 서방은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었고, 문명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였는데, 서태후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도피하는 방법으로 왕조의 꿈만 꾸었다.​그녀는 대권을 독점하면서, 주위의 열강이 노려보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같았다.​만성독약을 먹은 것처럼 방대한 청왕조는 점점 사..

당현종(唐玄宗): 천고반제(千古半帝)의 황당한 말년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역사는 다시 한번 증명했다: 털빠진 봉황은 정말 닭보다 못하다는 것을​상원원년(760년) 칠월, 오랫동안 흥경궁(興慶宮)에 거주해오던 당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가 태극궁(太極宮)으로 놀러갔을 때, 돌연 500명의 부대가 돌아가는 길을 막는다. 사병들은 칼과 검을 꺼내들었고, 빛이 반사되어 눈부셨다. 우두머리는 태상황(太上皇)에게 태극궁으로 옮겨서 거주할 것을 '요청'하였다. 확실히 이건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는 것이다.​이전에 두 차례의 정변을 일으키고, 혈우성풍 속에 살아온 태상황은 이때 등에서 식은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린 당현종은 타협을 선택한다. 한번 여행한 것이 이사가 되어버렸다. 이들 병졸들의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