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123

홍콩의 "삼권분립" 논쟁

글:BBC中BB 홍콩 교육국장 케빈 융(Keven Yeung Yun-hung, 楊潤雄)이 홍콩의 정치구조는 '삼권분립'이 없다고 한 후, 다시 홍콩행정장관 캐리람(Carrie Lam Cheng Yuet-ngor, 林鄭月娥)이 동조하면서 다시 번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캐리람은 9월 1일 매주 열리는 정례정부회의전에 기자를 만나 홍콩의 행정, 입법과 사법기관은 각자 자신의 직무를 하는 것이며, 3자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삼권분립은 없다고 말했다. 이 논쟁을 불러온 원인은 홍콩교육국이 현재 상식교과서를 심의하면서 '삼권분립'의 내용을 삭제하였기 때문이다. 8월 31일 교육국 국장 케빈 융은 홍콩에 삼권분립이 없으므로 이런 사실을 반드시 교과서에 분명히 써놓아야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량샹(梁湘): 천안문사태로 잊혀진 선전경제특구 최대공신

글: 관령(關嶺) 선전경제특구는 중국 개혁개방의 하나의 기적이다. 이 기적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전에서는 많은 개척정신을 지닌 관리들을 배출한다. 이들 관리들 중에서, 량샹은 기복과 곡절이 커서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량샹은 광둥 카이핑(開平) 사람으로, 1919년생이다. 광저우에서 학교를 다닐 대 급진적이고 활발했다. 1937년, 량샹은 모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보로 연안까지 간다. 그후 전투가 계속되는 세월 속에서 생사를 넘나든다. 신중국이 건립된 후, 량샹은 일찌기 광저우시 부시장, 샤오관지위 부서기, 광저우시위 부서기, 광저우시위 제2서기를 역임한다. 1981년 3월 량샹은 선전시위 제1서기 겸 시장이 된다. 그도 처음에는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당시 광둥성위 제1서기인 런중이(任仲夷)..

홍콩밀항의 역사

글: 관령(關嶺) 1977년 11월, 등소평이 광둥을 시찰했다. 광동성위에서 보고하던 중 홍콩밀항붐에 대하여 말하자, 등소평은 예리하게 지적했다: "그것은 우리의 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일은 군대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편전쟁후,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해야 했다. 그러나 홍공과 내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많은 내지인들에게 홍콩은 오랫동안 이상적인 피난처로 여겨졌다. 청말민초의 정권교체기에 많은 내지인들은 홍콩으로 이민간다.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무수한 내지인들이 홍콩으로 들어간다. 홍콩이 함락된 후, 음식부족으로 많은 홍콩주민은 내지로 도망친다. 일본이 투항한 후, 수십만이 홍콩으로 돌아갔다. 그후 국공내전으로, 많은 내지의 난민들이 다시 홍콩으로 간다. 홍콩에 ..

중국몽이 백일몽으로: 대미경제의존이 가져온 참사

글: 하청련(何淸漣) 중국의 우한폐렴이 세계로 확산될 때, 베이징이 꾼 당시의 달콤한 꿈은 자신은 바이러스를 통제하여 하루빨리 생산을 회복하고, 동시에 세계에 "우리는 이겼다"고 선언하면서, "세계는 중국에 빚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외시장이 삼각하게 위축되고, 주문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베이징은 비로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외시장이라는 녹엽(綠葉)이 받쳐주지 않으면, 중국경제라는 홍화(紅花)는 일지독수(一枝獨秀)할 수 없다. 지금 국내경제가 악화되자, 중국고위층은 경제의 내외쌍순환을 얘기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내외겸고(內外兼顧)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주로 본국시장에 의존하여 생산과 소비의 내순환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이는 그저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에 불과하다. 등..

임두두(林豆豆): 임표가 죽은 후 그녀는 어떻게 살았는가?

글: 왕우군(王友群) 1971년 9월 13일, 중국공산당 당장(黨章)에 "모택동의 친밀한 전우이며 후계자"로 기재되었던 임표(林彪)는 그의 처인 섭군(葉群), 아들 임입과(林立果)와 함께 탑승한 트라이던트비행기가 하북 산해관공항에서 이륙하여 몽골의 원두르칸에서 추락한다. 비행기에 탔던 9명은 전원 사망한다. 이것이 당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9.13사건"이다. 임표는 중공의 십대원수중 한명으로,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 임표는 국무원 부총리, 중공중앙부주석, 국방부장, 중앙군위제1부주석등의 직위에 오른다. 문혁때, 모택동의 다음가는 2인자가 된다. 임표가 죽은 후, 중공은 그를 '반당반국(叛黨叛國)'의 야심가, 음모가, 매국노로 매도되며, 모택동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민 원흉으로 규..

럼즈창(任志强): 발가벗고도 황제노릇하려고 고집하는 삐에로(전문)

글: 런즈창(任志强) 삼월 6, 2020 2월 18일 '기억과 반성'을 썼다. 원래 거기서 그만두려고 했다. 특히 다시 2월 19일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4년전의 2월 19일, 나는 '앙시성당(央視姓黨, CCTV의 성은 '당'이다)'라는 웨이보사진을 포워드하면서 "모든 메차가 성을 가지고, 인민의 이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