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123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노선으로 복귀할 것인가?

글: 안순구(颜纯钩)​왕젠(王剑) 선생이 대륙에서 나도는 내부문건 하나를 보도했는데, 중공 3중전회에서 아마도 개혁개방노선을 다시 채택할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왕젠 선생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시진핑의 정치지혜, 그 개인의 인식상의 한계로 인하여 그는 아마도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것이다. 바로 팬데믹때의 봉쇄조치와 무질서한 해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주 잘못된 방향에서 다시 한번 더욱 큰 잘못을 저지른다.​등소평을 시작으로 개혁개방(改革开放) 도광양회(韬光养晦)를 시작했다. 그리고 4개항 기본원칙을 정하여 중공통치에는 위기가 초래되지 않도록 했다. 시장경제는 결국 중공을 무너뜨릴 것이므로, 경제발전이 일..

중공 제20기 3중전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심층적인 원인은....?

글: 여홍래(呂洪來) ​ 중공중앙전체회의는 관례대로라면 매년 1회씩 개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개략 10월경에 개최되어 왔었다. 중공의 당장규정에 따르면, "중앙전체회의"의 통상적인 의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중앙정치국의 공작보고를 듣고, 당의 중대문제를 토론 및 결정한다. 2023년은 제20기 3중전회가 개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3중전회는 지금까지도 개최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하여 외부에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3중전회가 개최되지 못하고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일까? ​ 첫번째 견해는 시진핑이 취임한 후 일처리를 규정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열고 싶지 않으면 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3중전회를 개최하는데 아무런 곤란도 없고, 아무..

리커창(李克强)은 왜 반드시 죽어야만 했을까?

글: 호도도(弧度度) 어떤 사람은 중공당내에 좋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말한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왜 리펑(李鵬), 장쩌민(江澤民)이 죽었을 때는 그렇게 많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길거리로 나와서 꽃을 바치면서 추모하지 않았을까? 인터넷이 날로 보급되고 발전하면서 중국에는 깨달은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민심의 향방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이 꽃을 바치고, 어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폭죽을 쏜다. 어떤 사람은 리커창이 아무런 업적도 내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시진핑이 헌법을 고치고 연임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그건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다만,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이 대거 개혁을 진행할 수..

모택동(毛澤東)과 유소기(劉少奇)가 내부투쟁을 벌인 진정한 원인은...?

글: 무덕산(武德山) 중국정부가 공식적으로 공개한 글에서 모택동과 유소기간의 갈등에 관하여 대부분 "사청(四淸)"운동때의 "심각한 의견차이"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이데올로기 층면에서 고도로 일치했고, 모택동이 유소기를 비판한 관점과 방법은 기실 모두 모택동의 인가를 받아 대거 제창한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이 유소기와 "중대한 이론상의 의견차이"때문이 아니라, 유소기에 대한 불만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택동은 유소기에 대한불만때문에 "중대한 이론상의 의견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간의 갈등은 더욱 실질적인 원인이 있다.... 모택동 71세생일때의 식사자리 12월 26일, 모택동의 71세 생일이었다. 그날 저녁 모택동은 인민대회당 노북경청(老北京廳)에서 일부 사람들을 불러 ..

근대중국이 쇠약했던 근본원인

글: 시화(施化) 2023년 8월에 발표된 중국경제의 각종 통계지표를 보면, 10여억의 중국인들이 자신만만해 했던 고속경제성장은 돌연 감속하여 저속차선으로 접어들었는데, 원인은 불명하고 전도는 불투명하다. 비록 누군가 나타나서 계속하여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예를 들어 전쟁, 팬데믹, 국제금융위기등등, 들어보아도 믿을만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경제수치통계에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허수가 있었다. 좋은 것만 발표하고 나쁜 것은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돌연 자세를 바꾸어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있다; 혹은, 수치를 고쳐보아도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어 부득이 남부끄러운 수치를 그냥 발표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치는 아예 발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률등. ..

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아직도 대만무력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글: 시화(施化) 한동안 중문여론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화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대만'이다. 인상 속에서 인기검색어 1위가 아니더라도면 2위에는 올라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서방은 어떻게 대만을 핑계로 삼아 중국을 포위탄압하는지, 대만독립분자들이 어떻게 창궐하며, 미국아버지의 군사역량을 빌어 호가호위하는지, 대만의 신생대(新生代)는 대륙과 점점 멀러지고 있는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대만을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든지, 시진핑 신정권이 손을 쓸 것인지 아닌지, 대만해협전쟁은 언제 시작할 것인지. 등등.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현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청년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수십년동안, 중국대륙에서 대만 이슈의 열기는 식은 적이 없었다. 초..

중국은 "대만카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글: 진숙함(陳叔涵) 2022년 11월 7일 해협양안의 분치(分治)라는 정권국면은 2차대전이래 국제정치질서의 불가분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만카드"라는 말은 바로 이 사실이 기인한다. 미국은 수시로 "대만카드"를 꺼내든다. 중국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진정 "대만카드"를 즐겨 쓰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만카드"를 써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는 중공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8.23포격전은 중국이 "대만카드"를 쓰는 서막을 열었다. 전면적인 국공내전은 1945년부터 시작하여, 1958년까지 지속된다. 중국은 대만본섬으로 진격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륙과 지척지..

김용(金庸)의 부친이 총살당한 경위는...?

글: 창산잡담(蒼山雜談) 1. "당송이래거족(唐宋以來巨族), 강남유수인가(江南有數人家)" 2000년초, 김용은 자신의 자전체 산문 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산동에서 내려온 군대가 의관(宜官)의 고향으로 쳐들어왔고, 의관의 부친은 지주로 판정되어 농민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의관은 홍콩에서 삼일밤낮을 통곡했고, 반년동안 상심해 있었다. 그러나 나의 부친을 죽인 군대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전중국에서 처형당한 지주는 수천수만에 이르고, 이는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대변화였디 때문이다." "의관"은 김용의 아명이고, 그의 부친 사수훈(査樹勛, 일설에는 사추경(査樞卿), 사하상(査荷祥), 사무충(査懋忠)이라 함)이 붙여준 것이다. 김용은 성이 김(金)이 아니고, 사(査)이며, 본명은 사량..

중국의 대외군사원조 규모는...?

글: 임휘(林輝) 외국신문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신임 외교부장 친강(秦剛)이 얼마전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방문하는 나라마다 채무를 하나씩 탕감해주었다고 한다. 현재 중국은 신종코로나로 고통을 겪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의약품부족에 시달리는 상황하에서 중국당국은 중국인의 피와 땀으로 번 돈을 뿌리면서 외국의 정계요인을 매수하고, '우방'과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겉모습을 만드는데 치중하고 있다. 이는 다시 한번 중국당국의 "생명지상, 인민지상"이 철두철미한 거짓말, 헛소리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사실상 중국당국이 대외적으로 돈을 뿌리는 것은 유래가 오래되었다. 중국 외교부의 비밀해제문건과 중국외교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1949년부터 1976년까지 모택동,주은래가 집권하고 있을 때, 특히 문혁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