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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116

왕양명(王陽明): 삼불후(三不朽) 글: 고성(高成) 중국고대에 어떤 사람이 불후의 인물이었을까?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숙손표(叔孫豹)는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중 하나도 하기 힘들다. 위청, 설인귀, 이정, 반초등등의 선현도 겨우 그중 한두개만을 완성했을 뿐.. 2015. 3. 5.
석형(石亨): 탈문지변의 공신 글: 두문자(杜文子) '탈문지변(奪門之變)'을 일으켜 명영종 주기진(朱祁鎭)은 '태상황'에서 다시 '황상'이 되었다. 여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석형이다. 석형은 무장으로 전공이 혁혁했다. 명영종을 옹립하여 복위히킨 후, 자신의 권력과 부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내.. 2014. 10. 2.
왕양명: 용장오도(龍場悟道) 글: 두문자(杜文子) 왕양명은 명나라의 저명한 철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그는 심학(心學)의 집대성자이다. 그의 위대한 학설로 그는 공자, 맹자, 주희와 나란히 '공맹주왕(孔孟朱王)'이라 불린다. 왕양명 학설의 핵심은 3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심즉리(心卽理)". 그 뜻은 천하만물의 근원은.. 2014. 8. 27.
태감 왕진(王振)은 어떻게 국가대권을 장악했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명나라에는 수많은 태감이 있었지만, 명성을 날린 태감들은 모두 한가지씩 재주가 있었다. 저명한 태감 왕진이 바로 그러하다. 그는 원래 하북(河北)의 한 현성에서 놀던 불량배였다. 젊었을 때는 책도 조금 읽었고, 몇번 과거에 참가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처를 얻고 .. 2014. 8. 27.
황위계승전: 주고치(朱高熾) vs. 주고후(朱高煦) 글: 두문자(杜文子) 누가 황위를 계승하느냐는 문제는 영락제 주체(朱棣)에게 처음부터 골치거리였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큰아들 주고치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아들 주고후이다. 이치대로라면 장유유서의 관념이 강했던 고대에 큰아들이 원래 합법적인 법정승계.. 2014. 8. 27.
잔회팔염 유여시(柳如是): 가장 기개있는 진회명기(秦淮名妓) 글: 이신강(李新剛)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유여시는 진회팔염(秦淮八艶)의 하나로, 글재주가 있는 기녀일 뿐이다. 그러나 일대의 국학대가이며 두 눈이 거의 실명할 정도였던 진인각(陳寅恪)은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서, 10여년의 시간을 들여 그의 구술을 조수가 .. 2014. 8. 27.
주대전(朱大典): 탐관오리에서 애국순국으로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주대전(1581-1646)은 자가 연지(延之), 호는 미해(未孩)이며, 금화(金華) 사람이다. 명나라 만력44년(1616년) 진사로 완대성(阮大鋮)의 동학(같은 해 진사합격한 사람)이다. 항전의 깃발을 내든 애국자 주대전의 명성은 기실 그냥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탐관오.. 2014. 4. 4.
광시형(光時亨): 명나라말기 남천을 저지한 인물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송나라에 이어, 명나라도 또 하나의 '망천하(亡天下)'의 왕조가 되었다. 다만, 송나라와 명나라를 비교하면, 남송은 한세기반동안 연속되었는데, 소위 '남명'은 겨우 십여년간 잔존했을 뿐이다. 한, 당과 비교하더라도, 명나라에는 '삼국' 혹은 '남북조'의 국면이 나.. 2014. 4. 4.
좌량옥: 명나라말기 내부투쟁의 고수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홍광조(弘光朝)의 "남도삼안(南渡三案)"중에서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은 "북래태자안(北來太子案)"이다. 1644년말, 홍려시(鴻臚寺) 고몽기(高夢箕)에게 목호(穆虎)라는 종이 있었다. 그는 북방에서 남방으로 도망쳐 오다가 도중에 한 젊은이를 만나서 두 사람이 동.. 2014. 4. 4.
가정제(嘉靖帝)와 그의 황후들 글: 두문자(杜文子) 가정제(명세종 주후총)는 명나라의 16번째 황제이고, 재위기간이 두번째로 길다(가장 재위기간이 긴 황제는 그의 손자인 만력제이다). 가정제는 전후로 3명의 황후를 두었는데, 이 세 명의 황후는 최후가 모두 비참했다. 세번째 황후인 방황후(方皇后)는 일찌기 가정제..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