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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태창제(泰昌帝): 명나라의 최단명황제

by 중은우시 2018. 2. 15.

글: 정만군(程萬軍)





노황제자 죽자, 20년간 태자로 있던 주상락(朱常洛)은 마침내 황위를 승계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즉시 즉위한 후 연호를 "태창"츠로 고친다. 주상락이 바로 태창제 명광종(明光宗)이다.


우리는 한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주상락은 즉위초기, 위대한 군왕이 되고 싶어했다. 최소한 그럴 생각은 있었다. 무엇으로 이것을 알 수 있을까?


즉위한 첫째 주에 그는 3건의 멋진 일을 해낸다.


옛 말이 틀리지 않았다. 신관상임삼파화(新官上任三把火) 이 신황제는 즉위하자마자 바로 세 가지 불을 일으킨다. 주상락이 일으킨 세 가지 불은 무엇이었을까?


첫번째 일: 발향(發餉). 우리는 알고 있다. 주상락의 부친인 만력제(萬歷帝)는 비교적 인색한 황제였다는 것을. 그는 재물을 긁어모으는데 뛰어났고, 여러가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적지 않은 돈을 모으고 황궁안에 대량의 은량을 쌓아둔다. 다만 그는 돈을 잘 쓰지는 못했고, 그 돈을 부하에게 하사하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리하여 요동전선의 병사들은 자주 급여가 끊기는 고충이 있었다. 그리하여 전선의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진다. 주상락은 그의 부친과 달랐다. 그는 즉위초기 내탕(內帑) 160만냥을 내린다. 내탕은 무슨 돈인가? 황실의 돈이다. 즉 황제의 사적인 돈이다. 주상락은 황실금고의 160만냥을 꺼내서 전선의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령한 것이다. 밀린 임금과 보너스를 한꺼번에 지급한 것이다. 그래서 요동병사들의 사기는 크게 올라갔고, 군심이 고무된다. 이것이 첫번째 불이다.


두번째 일: 감부(減賦). 만력제의 통치 중후기에는 세금을 마구잡이로 징수했다. 그리하여 세금부담이 무척 컸다.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하여 만력제는 내궁에 많은 태감을 뽑아서 민간과 지방에 보내어 광감(礦監)과 세감(稅監)을 맡겼다. 이리하여 광산, 공장과 민간에 대한 착취역량을 강화한다. 그리하여 원성이 비등했고, 지방정부도 불만이 많았다. 그들과 서로 뺏어가려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 주상락은 즉위한 후에 모든 광감, 세감을 철수시킨다고 공표한다. 민간과 지방정부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세번째 일: 초현(招賢). 만력제 말기, 언관을 많이 처벌하였다. 특히 이전애 쟁국본(爭國本)때 많은 언관을 처벌한다. 이들 언관은 많은 경우 동림(東林)계 대신이다. 주상락은 즉위초기에 바로 선포한다. 이들 이전에 처벌받은 대신들을 속속 불러들여서 중임을 맡긴다. 그중에는 동림파의 노신 추원표(鄒元標), 고반룡(高攀龍), 조남성(趙南星)등도 포함된다. 그들이 속속 조정에 돌아오면서 권력중심으로 들어간다.


주상락의 이 세 가지 조치는 이미 250년간 살아서 늙은 대명왕조에 한때 정치의 봄날을 맞이하게 해준다. 어느 정도 혁신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하여 동림대신들은 주먹을 쥐고 이 명광종 주상락과 함께 참신한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의 진행은 사람의 생각을 벗어났다. 이 태창제가 즉위한지 1달만에 변고가 발생한다. 돌연 떠난 것이다.


어디로 떠났단 말인가? 북경명십삼릉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살게 된다. 즉, 돌연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주상락은 즉위할 때의 나이가 39살이었고, 죽었을 때도 같은 나이였다. 설사 고인의 연령으로 계산하더라도 39세는 자연사망할 연령은 아니다. 확실히 그는 젊은 나이로 죽은 것이고 그의 사망은 의외의 일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죽었는가? 왜 겨우 30일동안 황제로 있다가 그렇게 수종정침(壽終正寢)했는가?


이 건을 얘기하자면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을 얘기해야 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홍환안(紅丸案)"이다.


무엇이 "홍환"인가? 그 말 그대로 붉은 색의 환약이다. 즉 태창제 주상락의 사망은 두 알의 홍색 환약과 관련이 있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를 언급해야 한다. 중국황제의 편호(偏好)이다.


무슨 편호인가? 바로 약미(藥迷)이다. 약과 특별히 친하다. 이것은 무엇때문인가? 자고이래로 중국황제들은 자신의 몸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몸에 대하여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였따. 하나는 장생불로할 수 있느냐였다. 영원히 황제로 있으면서 죽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바램중 하나였다. 둘은 밤마다 여자들을 품으면서 피곤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매일 동방화촉을 보내면서 피로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자기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다. 마음은 있지만 힘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왕왕 외부의 물건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주로 받는 도움은 무엇인까? 그것은 바로 보약이다.


이 태창제 주상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보약을 아주 믿었다. 사료를 보면, 이 주상락은 약을 먹기를 특히 좋아하는 황제였다. 황태자로 등극했을 때부터 그는 약을 계속 먹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홍환안"은 어떤 사건인가?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주상락은 어려서 몸이 좋지 않았다. 빼빼마른 병자같은 모양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신체상황에 반비례하여, 주상락의 여인에 대한 흥미는 아주 왕성했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여건에 제한이 있었지만, 황제가 된 이후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어졌다. 주상락은 즉위하자마자 칠정육욕을 마음대로 풀고 여색에 탐닉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아무도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가 좋아하는 것을 더욱 부추기고, 그에게 여인을 찾아주고 춘약을 바치는 자들만 있을 뿐이었다. 특히 그 정귀비(鄭貴妃)는 주상락이 등극한 후, 그녀는 철저히 변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같았다. 이 새 황제에 특별히 잘한다. 어떻게 잘했는가?


청나라때 학자인 이손지(李遜之)는 <태창조기사>에서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황상의 신체는 원래 허약했다. 정귀비는 미인을 단장시켜 보냈다. 퇴조하면 연회를 열고, 여악사들이 흥을 돋군다. 밤이 되면 연속 여러명과 관계를 하니, 황상의 얼굴이 점점 초췌해졌다."


정귀비는 매일 7,8명의 미녀를 뽑아서 이 신황제 주상락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겹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상락은 너무 바빴다. 이전에 태자로 있을 때는 이렇게 많은 새로운 여인들을 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서 마음껏 즐겼다. 그러다보니 금방 쓰러지게 된다.


생각해보라. 한 사람이 아무리 쇠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쇠못을 몇 개나 박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 주상락은 마른 몸으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주상락의 이 병은 섹스중독이다. 이것은 고칠 수 없는 병도 아니고 반드시 죽는 병도 아니다. 만일 약간만 조리를 잘해서 천천히 조리하고 천천히 휴식하면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주상락의 곁에 있던 태의도 이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황제에게 약을 조제하여 바친다. 천천히 몸조리하는 약이다.


그러나, 그는 한번 하면 끝까지 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루빨리 아름다운 여인들 곁으로 가고 싶었다. 그는 태의의 약을 며칠동안 먹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태의가 준 약은 천천히 회복시키는 약이기 때문이다. 며칠만에 바로 좋아질 수는 없었다. 병이 올 때는 산사태같이 오지만, 병이 갈 때는 실을 뽑는 것같이 빠진다. 태창제는 이런 이치는 아예 무시하고,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태의가 준 약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수하에게 분부하여, 빨리 신의를 찾아서 효과가 빠른 약을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수하들은 미친듯이 의사를 찾고 약을 찾는다. 바로 이 때, 신의(神醫)가 주상락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이름이 최문승(崔文昇)이고, 어약방(御藥房)을 관장하는 태감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그도 정귀비의 사람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내시출신이다. 그렇다면 경력으로 볼 때, 이 최문승은 기껏해야 약제사이지 정규의사는 아니다. 약방을 처방할 자격이 없고, 병자를 진료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신경쓸 여지가 없다. 최문승은 황제가 신의의 좋은 약, 효과가 빠른 약을 찾는다는 말을 듣자, 스스로 나서서 황제에게 약을 바친다.


그렇다면, 최문승이 황제에게 바친 약은 무슨 약이고, 효과는 어떠했는가?


<명사기사본말>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최문승은 통리약(通利藥)을 바쳤다. 황상은 하룻 밤동안 3,4십번이나 설사를 하여, 침상이 엉망진창이 된다." 이 최문승이 황제에게 바친 것은 통리약인데, 통리약이라는 것은 현재의 속칭이 대황(大黃)으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설사약이다. 최문승이 처방한 것은 용량이 너무 많아서, 태창제는 그것을 먹고난 후에 하룻밤에 3,4십번이나 설사를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침상에 쓰러져 일어나질 못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이 주상락은 먼저 여색에 빠져서 몸을 망치고, 그 후에 강력한 춘약을 먹고, 다시 대용량의 설사약을 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몸이 견디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제가 병으로 쓰러지고, 철저히 조회에도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러자 동림대신들은 우려가 많았다.


이런 말이 있다. "새가 죽을 때가 되면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하다." 이때의 주상락은 이미 최문승이 바친 설사약으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다. 대신들에게 자식을 돌봐달라고 하면서 후사를 맡긴다. 다만, 이론적으로 보자면, 그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만일 이때부터라도 약을 함부로 먹지 않는다면 아마도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창제의 다음 거동은 다시 한번 그의 성격을 반영한다. 죽을 때까지 본성은 고치지 못한다. 그가 분명 입으로는 올바른 말을 하지만, 그러내 내심으로는 보약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갈방하는 것은 일반적인 보약이 아니라, 기사회생의 선약이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우리는 반드시 명나라황제들의 또 다른 편호를 얘기해야겠다. 그들은 보약을 편애하였을 뿐아니라, 보약가운데에서도 '선인선약(仙人仙藥)'을 미신했다. 명나라가 건국된 이래로, 황궁에서는 이런 기풍이 있었다. 신선을 찾아서 선약을 구한다. 명태조 주원장부터 가정제, 만력제까지 명나라황제들은 선단을 제련하는 '선인'들에게 큰 상을 내리곤 했다. 그중에는 민간의 엉터리의사, 약장수가 신선으로 분장한 것도 많았다. 자기가 아무렇게나 만든 약을 들고 신비한 선약이라고 황제에게 바쳤다. 일단 황제가 그 약을 먹고 기운이 좋아지기라도 하면, 그는 큰 상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관직이 오를 수도 있다.


이런 가풍의 영향에서 태창제 주상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약을 미신했다. 그는 병이 올 때는 산사태같고,병이 갈 때는 실을 뽑는 것같다는 것같은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는 정말 만병통치약인 영단묘약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숨이 간당간당하는 와중에도 수하들에게 선약을 찾아오라고 닥달한다.


하늘은 열심히 찾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태창제가 대신들에게 자식을 부탁한 후 3일째 되는 날인 팔월 이십구일. 선인의 선약이 나타난다.


홍려시승(鴻臚寺丞) 이가작(李可灼)이 두 알의 홍환(紅丸)을 바친다. 홍려시는 대명왕조에서 대외접대를 담당하는 예의기관이다. 이 이가작은 소십여세였고, 비록 정부관리이지만, 스스로를 도사나 신선처럼 꾸미고 다녔다. 대신들과 황제의 앞에서 그는 아주 신비스럽게 두 알의 홍환을 꺼낸다. 이 홍환은 바로 선약이라고 말하면서, 한 득도한 선인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계속 아끼면서 먹지 않고 있었는데, 이 약은 신부선경(神府仙境)에서 채취한 것이고, 백가지 병을 치료하며,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가작의 이런 말에 곁에 있던 대신들은 믿지 않았다. 황제에게 함부로 약을 먹지 말라고 권한다. 이 약은 내력이 불명한데 어찌 그냥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태창제는 달랐다. 이미 최문승이 지어준 약으로 목숨이 간당간당하고, 후사까지 부탁을 했지만 그는 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한다.


황제는 뭐든지 먹겠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우선 한 알만 먹어보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태창제는 홍환을 한 알 먹는다. 처음에는 비교적 조심스러웠다. 두 알 중에서 한 알만 먹은 것이다. 먹고난 후에 바로 기운이 돌아왔다. 태창제는 극도로흥분하여, 연신 이가작을 칭찬한다. 충신이다. 큰 충신이다. 그 이가작은 황제의 칭찬 앞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황상. 이 약은 약기운이 매우 세기 때문에 두번째 약은 삼일 후에 드십시오.


그러나 태창제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에 그는 다시 한 알을 먹는다.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따. 다음 날 새벽 즉 구월초하루 오경, 내시태감은 황제가 일어났는지 보는데, 황제는 이미 죽어 있었다. 영원히 잠든 것이다. 주상락의 온몸은 차가웠고, 이미 하늘나라로 간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황제가 복용한 이가작의 그 홍환은 도대체 무슨 성분이었을까?


나중에 <명실록>의 기재를 보면, 이가작의 이 두 개의 홍환은 그다지 신비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여자아이가 처음 월경할 때의 경수(經水)이고, 거기에 약간의 보약을 더해서 만든 것이다. 바로 황실의 춘약이었던 것이다. 가정연간에 대량으로 생산한 바 있다. 일반인이 먹었다면 열이 오르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설사약을 먹은 후에 다시 이 약을 먹은 것이니 이는 금기를 어긴 것이다. 생각해보라 한편으로 열을 오르게 하면서 한편으로 설사로 빠져나갸게 한다면 몸이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황제가 약을 먹고 죽었다. 이게 누구의 책임인가?


조정은 의견이 엇갈린다. 수보(首輔) 방종철(方從哲)을 우두머리로 하는 절당(浙黨)등 대신들은 아무도 고의로 황제를 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이 건에 대하여 깊이 추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모두 좋은 뜻에서 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림대신들은 최문승, 이가작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벌인 일이니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들 동림대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가작 너는 의원도 아니지 않은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황제에게 약을 먹게 한단 말인가. 네가 황제를 모해하려 한 것이 아니냐. 그 죄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림의 대신이자 예부상서인 손신행(孫愼行)은 심지어 창끝을 수보 방종철에게로 향했다.


이때의 손신행은 조당에서 이미 원로급 인물이고, 발언권이 있었다. 그는 방종철의 방식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방종철에게는 황제를 시해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황제를 시해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보았다.  방종철은 수보의 신분으로 이 모든 일이 그의 면전에서 발생했다. 설사 군주를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죽었으니 그 죄는 회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홍환안"에 대하여 필자가 생각하는 관건요소는 역시 주상락 본인이라고 본다. 그 어떤 사료에서도 누군가 억지로 약을 항제의 입에 밀어넣지 않았다. 이 약을 먹은 것은 주상락이 스스로 원해서이다. 황제가 울며불며 약을 먹겠다고 우기는데, 누가 그것을 말리겠는가. 결국 태창제 주상락은 제대로된 지도자는 못된다. 명군이라고 할 수가 없다. 동림인들이 그를 명군이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인 생각이다. 자고이래로 위대한 정치가는 모두 자제할 줄 알았다.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할 줄 알았다. 주색에 탐닉하지 않는다. 완물상지(玩物喪志)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두 알의 홍환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두 알의 홍환은 주상락이라는 이미 말라깽이인 주상락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마지막 두 개의 지푸라기였다. 이렇게 보는 것이 비교적 객관적일 것이다.